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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5.20 파우누스는 뿔 달린 신으로 묘사되면서 판과 동일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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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종교와 신화에서 파우누스(Faunus)는 숲, 평원, 들판 및 삼림, 농업, 가축, 목축 등을 관장한 목신으로 가축을 번식시켰을 때 고대인들은 그를 이누스(Inuus)라고 불렀다. 그는 문학에서 그리스의 신 판(Pan)과 동일시되었고 이후 로마인들은 그를 뿔 달린 신으로 묘사했다. 파우누스는 디 인디게테스(Di Indigetes)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로마 신 중 하나였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Publius Maro Vergilius. 기원전 70년~기원전 19년)에 따르면 파우누스는 전설적인 왕이었다. 그의 유령은 파투우스(Fatuus)라는 이름으로 예언의 신으로 여겨졌으며 고대 로마의 아벤티누스 언덕에 있는 알부니아 샘 근처 티부르의 신성한 숲에서 신탁을 받았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기원전 116년~기원전 27년)는 그의 저서에서 파우누스의 신탁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파우누스는 자신의 신탁소에 봉헌된 양털 위에 누워 자고 있는 사람들의 꿈을 통해 미래를 드러냈다고 한다. 고대 로마 종교에 관한 저서로 유명한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조류학자인 파울러(William Warde Fowler. 1847년~1921년)는 파우누스가 고대 로마 바람의 신 중 하나인 파보니우스(Favonius)라고 주장했다.

 

목축의 신 파우누스. 출처>구글 검색

 

파우누스는 인도-유럽어족 신에서 유래했으며 베다 신 루드라와 관련이 있었다. 그는 자연의 신이 되기 전에 전통적인 로마 농부들의 숭배를 받았다. 우화에서 파우누스는 피쿠스(라티움의 초대 왕)의 아들이자 사투르누스(그리스의 크로노스)의 손자였으며 님프 마리카(때로는 파우누스의 어머니이기도 함)와 결합해 라티누스(라티움의 왕)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 파우누스는 농업과 가축 사육에 대한 많은 업적으로 땅의 수호신 지위에 올랐다. 파누아(Fanua)와 파투아(Fatua)라고 불리는 비슷한 속성을 지닌 여신이 파우누스 숭배와 관련이 되었다. 파누아는 파우누스의 여동생이자 아내로 간주되었다. 고대 로마의 다산과 치유의 여신 보나 데아(Bona Dea)가 파누아와 동일시되었다. 판이 파니스코이 즉 판의 수행신들과 동행했기 때문에 우두머리 파우누스 외에 많은 파우니가 존재한다고 인식되었다. 목신은 길들여지지 않은 숲의 정령이다. 고대 로마의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목신 파우누스를 디오니소스의 추종자였던 그리스의 목신 사티로스와 연결시켰다.

 

파우누스는 아르카디아에 산다고 전해지는 그리스 신 판과 자연스럽게 융합되었다. 기원전 3세기와 2세기에 로마 신화에 대한 그리스 신화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로마인들은 인테르프레타티오 로마나(Interpretatio Romana. 로마식 해석)라고 불리는 방식에서 자신들의 신을 그리스 신과 동일시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두 신을 별개의 신으로 인식했다. 예를 들어 베르길리우스는 그의 저서 <아이네이스>에서 파우누스와 판을 독립적으로 언급했다. 판은 항상 뿔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파우누스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로마에서도 파우누스를 뿔이 달린 신으로 묘사하기 시작하면서 두 신이 융합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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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역사가인 유스티누스(Marcus Junianus Justinus)에 따르면 파우누스는 농부와 야생동물의 수호신 루페르쿠스와 동일시되었다. 한편 리비우스(Titus Livius. 기원전 59년~기원후 17년. 고대 로마의 역사가)는 매년 2월 15일에 열리는 고대 로마의 목회 축제인 루페르칼리아에서 숭배했던 신으로 이누스를 명명했다. 루페르칼리아에서는 루페르쿠스의 사제들인 루페르키가 염소 가죽을 뒤집어 쓰고 행인들에게 염소가죽 채찍을 휘두르며 거리를 뛰어 다녔다. 파우날리아라고 불리는 두 개의 축제가 그를 기리기 위해 거행되었는데 하나는 2월 13일에 테베레 섬에 있는 파우누스 신전에서 열렸고 다른 하나는 12월 5일에 농부들이 그에게 소박한 제물을 바치고 춤을 추며 즐겼다. 에우헤메로스설(신화가 실제 역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한 가설)에 따르면 파우누스는 피쿠스와 카넨스의 아들인 라티움의 왕이었다. 그는 죽은 후 파우투스 신으로 숭배되었고 현재의 티볼리 외곽의 신성한 숲에서 숭배를 받았다. 그의 신성한 존재는 화관이나 포도주잔과 함께 늑대 가죽으로 인식되었다. 고대 로마의 그리스 시인 논노스(Nonnos. 5세기경)에 따르면 파우누스는 디오니소스가 인도에서 행진을 벌일 때 그와 동행했다고 한다.

 

파우누스는 수세기 동안 로마 제국 전역에서 숭배되었다. 1979년 영국 테트포드 근처에서 발견된 32개의 4세기 숟가락 세트에는 ‘파우누스’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숟가락 각각은 신의 이름을 따서 다른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상징도 새겨져 있었는데 처음에는 기독교 상징이었으나 나중에 이교도들이 가져가서 파우누스에게 바쳤다고 한다. 4세기는 기독교화의 시대였으며 이 발견은 전통적인 로마 종교가 쇠퇴하는 동안에도 파우누스 숭배가 여전히 존재했다는 증거이다. 갈리아에서 파우누스는 켈트 신 두시오스(Dusios)와 동일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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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