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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로마

로마 민족주의의 구심점이 된 가정의 신, 디 페나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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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신화에서 디페나테스(Di Penates 또는 Penates. 항상 복수형으로 소환된다)는 가정 의식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가정의 신 중 하나였다. 그들은 그리스 신화에 대응하는 신이 없는 철저한 로마 고유의 신이었다. 가족이 식사를 한 후 그들은 페나테스를 위해 화로에 있는 불에 약간의 뭔가를 던졌다. 그들은 베스타(화로의 여신), 라레스(가정의 신), 도무스(로마 상류층의 집)의 작은 우주에 있는 파테르 파밀리아(로마 가족의 가장)의 게니우스(모든 사람이나 사물에 존재하는 신성한 본성)와 관련이 있었다. 다른 로마 신들과 마찬가지로 공적인 상대가 있었다.

 

페나테스는 고대 로마의 가정의 신이었다. 출처>구글 검색

 

페나테스의 어원적 해석에 따르면 그들은 원래 집의 가장 안쪽 부분인 창고의 수호신 페누스(Penus)로 집안 내의 음식, 포두주, 기름 그 밖의 물품 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원래 그들은 식량의 원천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가족의 지속적인 삶을 상징하게 되었다. 로마의 정치인이자 작가인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년~BC 43년)는 그들이 시인들에 의해 페네트랄(Penetral. 집의 가장 깊숙한 곳)이라고 불리는 곳에 거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세기에 활동한 로마의 문법학자 페스투스(Sextus Pompeius Festus)는 페누스를 베스타 신전의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로 커튼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정의했다. 후기 로마 제국의 철학자 마크로비우스(Macrobius Ambrosius Theodosius. 370년~430년)는 진리를 더욱 부지런히 파헤치는 사람들은 페나테스를 우리가 가장 깊숙한 곳인 페니투스(Penitus)로 숨쉬는 곳, 이성적인 마음을 소유하는 곳이라는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BC 116년~BC 27년. 고대 로마의 학자)의 이론적 견해를 인용했다.

 

로마의 페나테스는 팔라티노 근처의 벨리아 강 근처에 신전을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후에 활동한 그리스이 역사가이자 수사학자인 할리카르나수스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of Halicarnassus)는 이곳에 고대 양식의 두 젊은이 동상이 보관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로마 사람들의 조상 또는 가정 신들에 대한 숭배는 라비니움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베스타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한 전통은 공적인 페나테스를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에서 구출해 이탈리아로 가져온 신성한 물건이라고 확인했다. 페나테스의 동상은 베스타 신전에 보관되었다. 따라서 페나테스는 현지화된 라레스와 달리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는 신이었다.

 

요컨대 페나테스 또는 디 페나테스는 로마 민족의 가정 신이었다. 좁은 의미의 페나테스는 가정의 비축물이었지만 더 넒은 의미로는 가족의 수호신이었다. 그들은 화로의 여신 베스타 등 가정과 관련된 신들과 연관되어 있었으며 그 이름은 때때로 다양한 수호신 중 하나인 라레스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실 페나테스에 대한 정확한 정체성은 고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페나테스는 개인적으로는 가정의 신이었지만 공적으로는 로마의 수호신이었다. 로마의 각 가정에는 페나테스 동상과 함께 작은 신전이 있었다. 페나테스에게 바치는 제물은 과자, 포도주, 꿀, 향 등 다양했다. 국가 전체로는 페나테스 푸블리치(Penates Publici)로 숭배되었다. 이러한 국가 숭배는 로마의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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