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

(822)
함박눈 쏟아지는 날 다사히 볼이라도 부벼줄 한 모금의 볼따귀도 시간마다 가슴 아모려 기다려질 한 올의 바래움도 당장 육신채 마음채 내어던져 바치고 싶은 우러러볼 아무것도 없이 남의 집 뒷골방에 누워 다 사위어가는 냉화로를 뒤적이며 있노라면, 눈송이는 펑펑히 상흔을 두드리며 쏟아져오고 대지는 만 근같이 침묵하여 사람 소리조차 낯이 설었다 가는 곳마다 걸레쪽처럼 누데기가 된 생활은 낡은 횃대에 걸려 나부끼고, 세기말의 마지막 행렬은 안간힘 쓰며 눈물겨운 갈등을 저지르는 구슬픈 만가 소리 무엇이 무엇을 잡아먹고 무역이 백성을 팔아먹고 아가씨들이 사태를 이뤄 매음을 흉내내고······. 함박눈은 펄펄이 쏟아져오고 송이마다 피묻은 기억들이 되살아 매자근한 체온 위에 말없이 쌓여가도 발자욱 소리 하나 매혹스런 노랫가락 하나 들려오질 ..
말의 사기사님네께 한 천년 졸아나보시지요 일제히 고개들을 끄덕대며 무슨 싸롱이라든가에 들어앉아 별들이 왜 별입니까 그것은 땅덩이지요. 아 그 유명한 설계사 피카소씨라시죠 아니, 저, 뭣이냐 그 입체파 가수들이라시던가요 멋쟁이시던데요 새파란 제자들을 대장처럼 데리구 앉아. 농사나 지시면 한 백석직은. 품도 한창 아쉴 땐데. 염체 좋은 사람들 그래, 멀쩡한 정신들 가지구서 병신 노릇 하기가 그렇게나 장한가요 마음껏 흉물 쓰구 뒤나 자주 드나드시죠 양식은, 피땀 흘려 철마다 꼭 꼭 보내올릴께요 뽕먹는 누에처럼 그 괴상한 소리나 부지런히 뽑아서 봄에 자꾸 감아보세요 「어떻게 되나」 참 훌륭도 하시던데요 어쩌면 그렇게도 꼭 같을까 미국사람을 참 훌륭히도 닮으셨어 조끔만 더 있으면 우리말 같은 건······. 「원체 일등국언자는 양..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문자폭탄에 항의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추천합니다 어릴 적 살던 마을에는 공동우물이 몇 개 있었다. 나름 부유한 집은 개인 우물도 있긴 했다. 우물가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물 긷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폴짝 뛰어 들여다 본 우물 안에는 온 우주가 다 들어 있었다. 하늘도 있고, 해도 있고, 달도 있고, 별도 있었다. 그리고 나도 있었다. 나에게 소리라도 지르면 우물은 더 큰 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우물 속 나를 보고 웃어보기도 하고, 찡그려 보기도 했다. 바람이라도 지나가면 내가 웃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목이 말라 두레박을 던지면 우물 밖 나와 우물 속 나는 같은 줄을 잡고 서로 당기는 듯 했다. 혼자 있는 우물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동네 우물마다 무서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
문재인 대통령의 새로운 길 연일 파격이다. 불과 이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낯선 길에 들어선 느낌이다. 그것도 새가 울고 꽃이 핀 봄햇살 가득한 길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치뤄진 장미 대선의 승자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그동안 보아도 못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살아서일까 새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봄날 새벽 공기처럼 신선하기 그지 없다. 격이 없이 시민들을 만날 때면 딱 이웃집 아저씨나 할아버지다. 부창부수일까 영부인은 '유쾌한 정숙씨'라는 별명처럼 근엄함 대신 친근함으로 시민들과 포옹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낡은 구두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함이 느껴지고 독도 강치가 그려진 넥타이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급기야 대통령을 쪼그려 앉아 기다리게 한 간 큰(?) 초딩까지 출연했다. 어..
윤동주의 '봄' 그리고 우리의 '봄' 저녁 출근길 촉촉이 젖은 길가에 흐드러진 벚꽃이 터널을 만들었다. 벚나무 허리 아래로는 개나리가 질세라 노란 빛깔을 연신 뿜어내고 있다. 저만치 목련은 이미 작별 인사를 할 모양인지 고개를 숙인다. 멋없는 자동차들은 벚꽃 터널을 무심하게 씽씽 내달리고 있다. 연신 하늘만 쳐다보며 걷다보니 목이 다 아프다. 이런 나를 노란 달이 벚꽃 사이로 빼꼼이 엿보며 웃고 있다. 아! 드디어 봄이 왔나 보다. 유난히 길었던 올 겨울도 끝내는 봄빛에 길을 내주고 마는구나.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자연의 봄은 왔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았을 뿐이다. 4년이 그랬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마음의 봄은 늘 잿빛 꽃으로 물들었다. 봄놀이 간 아이들은 겨울에 갇혔고 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4..
세월호 7시간, 박근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7시간 추적자들/박주민 외 씀/북콤마 펴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이 있던 날 이정미 권한 대행이 탄핵 선고 결정 요지문을 읽는 동안 20분이 20년처럼 느껴지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특히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이 파면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발표에 허탈하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법적으로는 그렇다 치지만 국민 법감정으로는 가장 큰 탄핵 사유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민간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는 중대한 사유로 인해 헌법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이 확정되긴 했지만 많은 국민들에게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은 가장 중대한 탄핵 사유로 인식하고 있다.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헌법 재판소는 의미있는 보충의견을 남겼다.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이 생명권 보호의무..
오이디푸스 왕과 박근혜 오이디푸스 왕/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B.C 406, 그리스) 지음/황문수 옮김/범우사 펴냄 2017년 3월10일은 현재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결코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이 말한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되었다. 촛불 민심의 승리라고들 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박근혜 탄핵은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이었다. 대통령도 헌법을 지키지 않으면 탄핵될 수 있다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정사의 치욕적인 사건임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대다수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사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