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269)
평생 한 남자만을 기다려온 여인에의 헌사 협죽도 그늘 아래/성석제/1998년 협죽도. 얼핏 들으면 무협소설에 나오는 명검 중의 하나인가 싶을 것이다. 잘 어울릴 것 같지는 않지만 협죽도는 협죽도과의 상록관목이란다. 시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최근 협죽도 관련 뉴스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협죽도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공해에 강하기 때문에 몇몇 지자체에서 가로수로 조경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협죽도 특성상 가로수로는 제격일지 모르지만 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협죽도는 아주 미량만 사용해도 치사율이 높아 과거 독화살이나 사약으로 이용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관상용으로 심어온 지자체들이 협죽도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가로수로 조경된 협죽도 관련 피해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지만 안전을 위해 점차 제거해 나가야 한다고 시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
봄밤, 분수를 아는 사랑 봄밤/권여선/2013년 두 수의 비의 값을 분수라고 한다. a/b라는 식으로 표현하며 a를 분자, b를 분모라고 한다. 분자가 분모보다 작은 분수를 진분수, 분자가 분모보다 큰 분수를 가분수라고 한다. 파고 들어가면 더 골치가 아플터, 분수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아니 적용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 물론 장점이 많은 사람이면 그 값은 1보다 큰 가분수가 될 것이고, 지나치게 단점만 많은 사람이라면 진분수가 될 것이다. 톨스토이의 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톨스토이는 왜 혁명가 노보드보로프를 하위 수준의 혁명가로 간주했을까? 노보드보로프는 혁명가들 사이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또 훌륭한 학자..
미세스 오, 아내가 하룻만에 가정도우미를 바꾼 이유 미세스 오/윤선영(1972~)/2014년 명품 토트백에 수천 만원 짜리 정장을 입고, 믹스커피보다는 원두커피를 즐기고, 일하는 내내 클래식을 듣는 가정도우미가 있다면 당시는 기꺼이 고용하겠는가? 가정도우미라고 그렇게 입고, 그렇게 먹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나친 편견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아내는 이런 가정도우미를 들이고는 하룻만에 직업소개소에 전화해 조선족 도우미로 바꾸고 말았다. 아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윤선영의 단편소설 에는 범상치 않은 가정도우미가 등장한다. 바로 ‘미세스 오’가 그녀다. 반면 아내(소설 속에서는 ‘여자’로 등장하지만 내용상 ‘아내’로 통일함)는 최근 아소 일본 부총리가 사회비용 증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 요즘 젊은 여성이다. 육아와 가사는 물론 직장까지 어느 것 하나..
세월호는 레테의 강을 건너지 않는다. 입동/김애란(1980~)/2014년 그리스 신화에는 죽음의 신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등장한다. 인간이 죽으면 아케론, 코키토스, 플레게톤, 스틱스, 레테라는 이름의 다섯 강을 건너 영혼의 세계에 안착하게 되는데 각각의 강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케론을 건너면서 망자는 죽음의 고통을 씻어낸다. 뱃사공 카론의 배로 아케론을 건너면 코키토스라는 통곡의 강을 건너야 한다. 이승에서의 시름과 비통함을 내려놓기 위해서다. 망자가 건너야 할 세 번째 강은 불의 강 플레게톤이다. 망자는 플레게톤을 건너면서 아직도 남아있을 이승에서의 감정들을 불에 태워버릴 수 있다. 플레게톤을 건너면 무시무시한 스틱스가 기다리고 있다. 스틱스는 신들도 무서워할 정도로 위엄을 갖추고 있다. 신들..
아버지는 왜 불효청구소송까지 불사했을까 돌다리/이태준(1904~?)/1943년 대들보 위의 제비 한 쌍/암수가 사이 좋게 들락날락//진흙 물어다 서까래 틈에 동아리 트니/한 둥지에 새끼가 넷이어라//새끼 네 마리 밤낮없이 무럭무럭 자라니/먹이 달라 우는 소리 시끄럽기도 하는구나//푸른 벌레 잡기 쉽지 않아/어린 새끼 배부를 겨를이 없네//어미 제비 부리 발톱 해질망정/마음만은 지출 줄을 몰라라//순식간에 천 번을 오가건만/둥지 속 새끼들 배 곯을까 걱정이네//모진 고생 다하고 달포를 지내니/어미는 야위어 가고 새끼는 살이 찌는구나//지지배배 말 가르치고/한올 한올 깃털 다듬어 고이 단장해 주니//마침내 깃과 날개 다 자라/뜨락 나뭇가지에 올라 앉아//날개를 쫙 펼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바람 따라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 버리네//어미..
예술을 위해 딸을 실명시킨 아버지의 행위는 정당했나 선학동 나그네/이청준(1939~2008)/1979년 우리나라 엄마들의 교육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난이 대물림 되던 시절 그나마 교육은 신분 상승의 몇 안되는 기회였으니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근대화와 산업화는 물론 정치 민주화를 서구 사회보다 짧은 시간 안에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불타는 교육열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분간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도 여전히 교육은 한 가닥 희망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교육열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 부모들에게 교육열은 자식 사랑에 대한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학교 교육 외에도 다른 부모들이 시키는 각종 과외 교습은 나도 똑같이..
놀부를 위한 변명, 흥부는 게으른 가난뱅이었다? 놀부뎐/최인훈(1936~)/1995년 수절 과부 욕 보이기, 여승 보면 겁탈하기, 길가에 허방 놓기, 제비 다리 부러뜨리기, 열녀 보고 험담하기, 이장하는 데 뼈 감추기, 배앓이 하는 놈 살구 주기, 오 대 독자 불알 까기, 만경창파에 배 밑 뚫기, 제주 병에 오줌 싸기, 우물 밑에 똥 누기, 오려논에 물 터놓기, 갓난 아기 똥 먹이기, 남의 노적에 불지르기, 초상 난 데 춤추기, 불 붙는 데 부채질하기, 똥 싸는 놈 주저앉히기, 늙은 영감 덜미 잡기, 아기 밴 계집 배 치기, 곱사 엎어놓고 발꿈치로 치기……. 우리가 아는 놀부의 만행은 요즘으로 치면 거의 범죄 수준이었다. 조선 시대 살았기 망정이지 21세기 대한민국 시민이었다면 전과 수십 범은 됐을 놀부가 그 동안 우리가 읽었던 의 내용이 잘못 알려졌..
아들이 어머니 몰래 눈물을 흘린 이유 눈길/이청준(1939~2008)/1977년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조직이나 모임에서건 꽉 차 있을 때는 개인의 존재감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이가 빠진 듯 한쪽 구석이 횡 하니 비어 있을 때는 비로소 개인의 부재가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스포츠에서 '난 자리'는 전력 누수로 이어지고 여타 조직이나 모임에서도 '난 자리'의 등장은 효율이 비효율로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되곤 한다. 부재란 그렇게 현실로 다가올 때만 느낄 수 있는 인간 감각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든 자리'와 '난 자리'의 결정적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 자리'의 존재가 간절해 지고 때로는 죄책감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그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머니에게 빚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