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화와 전설/로마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 되었을 열병의 여신, 페브리스

반응형

로마 판테온에서 페브리스(Febris)는 열병의 여신으로 병을 가져오거나 쫓아낼 수도 있다. 그녀는 열병을 의인화한 신으로 그 이름 자체로 ‘열병’ 또는 ‘열병의 공격’을 의미한다. 그녀는 고대 이탈리아 특히 모기가 질병을 옮기기 때문에 늪지대에서 유행했던 말라리아의 여신이었을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치유를 기원하며 그녀에게 제물을 바쳤다. 말라리아에 감염되면 보통 4시간에서 6시간 정도 열이 발생하는데 발열 증상은 심하면 2일에서 3일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이것은 페브리스가 의미하는 ‘열병의 공격’에 대한 설명이다. 즉 페브리스가 열병 특히 말라리아를 유발할 수도, 치유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열병의 여신 페브리스. 출처>구글 검색

 

어쨌든 말라리아는 고대 로마에서 매우 흔한 질병이었고 로마인들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 말라리아의 원인과 그것을 피하는 또는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고대 로마의 작가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BC 116~BC 27)는 집이나 농장은 건강에 좋은 바람에 노출된 숲이 우거진 언덕 기슭에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생물들이 번식할 수 있는 늪 근처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작은 생물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며 사람의 입고 코에 들어가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가 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은 1700년이 지나서야 박테리아로 밝혀졌는데 네덜란드 과학자 안토니 반 리우벤호크(Antony van Leeuwenhoek, 1632~1723)가 초기 현미경으로 처음 발견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올바른 위생 습관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었고 도시계획과 공공사업 프로젝트에 그것들을 반영했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훌륭한 하수 시설을 건설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늪의 물을 빼내기도 하고 많은 목욕 시설을 건설했다.

 

어쨌든 말라리아는 로마와 그녀(페브리스)의 백성들에게 심각한 위협이었다. 최근에는 치명적인 말라리아가 로마 제국붕괴의 한 원인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오늘날에도 말라리아는 결핵 다음으로 전염성 질병의 가장 큰 사망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말라리아는 특히 임산부와 어린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며 사산과 유산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한 아이를 갖는 것은 부모들 뿐만 아니라 국가의 특별한 관심사였으며 이것은 페브리스가 로마에 신전을 세 개나 갖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페브리스 신전에서는 병에서 회복한 사람들이 착용하는 레메디아(‘치료’를 의미함)라고 불리는 부적을 제공했다고 한다.

 

페브리스를 모신 가장 중요한 신전은 팔라티노 언덕(고대 로마의 일곱 개 언덕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로마 건국 신화가 전해져 온다) 어딘가에 있었다. 페브리스 신전 흔적은 남아있지 않고 정확한 위치도 알려져 있지 않다. 페브리스의 또 다른 작은 신전은 퀴리날리스 언덕에 위치해 있는데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306년 로마 제45대 황제 가이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세운 목욕탕)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 페브리스의 세 번째 신전은 포럼(광장)과 팔라티노 언덕을 연결하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인 ‘성스러운 길’ 사크라 비아에 있었다.

 

페브리스 숭배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열병과 질병이 인간만큼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말라리아가 인간의 진화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페브리스 관련 자료가 제국의 다른 지역 비문에서 알려진 것으로 보아 페브리스 숭배는 로마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때때로 삼일열 여신 데아 테르티아나와 사일열 여신 데아 쿠아르티아나를 동반했는데 이는 말라리아가 3일이나 4일 간격으로 발열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데아 테르티아나와 관련된 비문이 영국 북부에 있는 고대 로마 요새인 하비탄쿰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더 추운 기후에서도 말라리아가 흔하고 두려운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