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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6.06 인류 최초의 마취 수술 대상이 된 영웅 필록테테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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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단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리스 전설의 영웅 필록테테스(Philoctetes)는 장례식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 대가로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물려받았다. 물론 헤라클레스가 누워있던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 이는 그의 아버지였으며 필록테테스의 활과 화살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는 설도 있다. 필록테테스는 트로이로 가던 중 뱀에 물려 의식을 잃었고 렘노스 섬에 남겨졌다. 선견자가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만이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후 그리스 전사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 또는 네오프톨레무스는 필록테테스에게 가서 트로이까지 동행해 달라고 설득했다. 그곳에서 그는 상처를 치료받고 트로이 왕자 파리스를 죽였으며 이는 트로이 함락의 서막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중에 식민지 개척자로서 이탈리아 남부를 떠돌다가 결국 전투에서 사망했다.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는 이를 주제로 <필록테테스>를 썼다.

 

렘노스 섬에 홀로 남겨진 필록테테스. 출처>구글 검색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필록테테스는 테살리아 멜리보이아의 왕 포이아스와 데모나사 또는 메토네의 아들이었다. 그는 궁수로 유명한 그리스 영웅으로 트로이 전쟁에도 참전했다. 필록테테스는 3명의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가 쓴 4편의 희곡의 주제였다. 4편의 희곡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이다. 소포클레스의 <트로이의 필록테테스>, 아이스킬로스의 <필록테테스>, 에우리피데스의 <필록테테스> 등은 일부 단편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 필록테테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도 언급되는데 이 책에서는 필록테테스가 렘노스 섬으로 유배된 일과 뱀에게 물려 부상을 입은 일 그리고 결국 그리스인들에 의해 다시 소환되는 일 등을 묘사하고 있다. 필록테테스 소환은 소실된 서사시 <리틀 일리아드>에 나와 있으며 디오메데스가 그를 데려왔다. 필록테테스는 트로이에서 세 사람을 죽였다.

 

필록테테스는 네소소의 옷으로 고통받고 있던 영웅(헤라클레스)을 도운 후 그 보상으로 활과 화살을 받았다. 또 다른 신화에서는 필록테테스의 아버지 즉 포이아스가 헤라클레스가 자신을 제물로 바친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이로써 헤라클레스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필록테테스는 신이 된 헤라클레스의 총애를 받았다. 필록테테스는 스파르타 공주 헬렌(또는 헬레네)의 여러 구혼자 중 한 명이었다. 따라서 그는 메넬라오스의 헬렌을 되찾기 위한 트로이 전쟁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러나 트로이로 가는 도중에 펠록테테스는 렘노스 섬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는데 이 원인에 대해서는 몇 개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모든 이야기에서 그는 발이 곪아 터지고 끔찍한 냄새가 나는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뱀에 물린 상처로 고통받는 필록테테스. 출처>구글 검색

 

한 이야기에서 필록테테스는 헤라클레스에게 바친 봉사에 대한 처벌로 헤라가 보낸 뱀에 물렸다. 헤라에게 남편의 혼외 자식인 헤라클레스는 적이나 다름 없었다. 필록테테스가 뱀에 물린 이야기는 아카이아인들이 트로이로 가는 도중에, 테네도스 섬으로 오는 판본에서 반복되는데 그곳에서 아킬레우스는 신의 아들이라고 알려진 테네스 왕을 죽임으로써 아폴론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아카이아인들이 아폴론에게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을 때 뱀이 제단에서 나와 필록테테스를 물었다. 또 다른 전통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필록테테스에게 화장된 헤라클레스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보여달라고 강요했다. 필록테테스는 말로는 헤라클레스와의 맹세를 어기지 않는 방법으로 그 자리로 가서 발을 딛었다. 이 때 헤라클레스가 묻힌 곳을 가르킨 발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 필록테테스는 크리세 섬에서 자신도 모르게 섬의 이름을 딴 님페의 신전에 무단 침입해 끔직한 상처를 입었다. 이 이야기는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희곡에 전해지고 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이 상처는 독화살에 긁혀 생겼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독화살은 화살촉에 발효된 독사 독이나 피, 배설물 등을 묻혀 만들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곪아터진 상처를 가지게 되지만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상처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필록테테스는 그리스인들에게 고립되었고 아트레우스의 후손 즉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충고한 오디세우스에게 원한을 품었다. 메돈은 필록테테스의 병력을 장악했고 필록테테스 자신은 트로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렘노스에 혼자 머물었다.

 

필록테테스의 생존을 위한 투쟁. 출처>구글 검색

 

트로이 프리아모스 왕의 예언자 아들인 헬레노스는 그리스인들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이 있어야 한다고 예언했다. 이 말을 들은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헤라클레스의 무기를 되찾기 위해 렘노스 섬으로 달려갔다.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에서 오디세우스는 피로스라고도 알려진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와 동행했다. 필록테테스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고 놀란 그리스인들은 고민에 빠졌다. 오디세우스는 필록테테스에게서 무기를 빼앗았지만 디오메데스(또는 네오프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를 남겨둔 채 활과 화살만 가져가는 것에 반대했다. 신이 된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에서 내려와 필록테테스에게 아스클레오피스의 아들에게 치료를 받고 아카이아 군대의 영웅으로서 큰 영예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로이 외곽 그리스 군 막사로 돌아온 그들은 불멸의 의사 아스클레오피스의 아들 마카온 또는 포달리리오스를 불러 필록테테스의 상처를 치료하게 했다. 마카온은 아폴론의 도움으로 필록테테스를 깊은 잠에 빠뜨린 뒤 상처 부위를 절개하여 썩은 살을 도려낸 다음 아스클레피오스가 케이론에게서 배운 비방에 따라 제조한 약초를 환부에 붙여 상처를 치료했다고 한다. 이를 인류의 최초의 마취 수술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필록테테스는 참전했고 단일 전투에서 프리아모스 왕의 아들 파리스를 죽였다. 그는 화살 네 발을 날렸다. 첫 번째 화살은 빗나갔고 두 번째 화살은 파리스의 손을 스쳤다. 세 번째는 그의 오른쪽 눈에 적중했고 마지막 네 번째 화살이 파리스의 발꿈치를 맞았다.

 

필록테테스는 계속해서 도시(트로이)를 습격하려는 시도에 대해 네오프톨레모스의 편을 들었다.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전쟁에 지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유일한 두 사람이었다. 그 후 필록테테스는 트로이 목마 안에 숨은 선택된 전사 중 한 명이었으며 도시를 약탈하는 동안 그는 많은 유명한 트로이 영웅들을 죽였다. 또 다른 신화에 따르면 헤파이스토스의 아들 필리오스가 렘노스 섬에서 필록테테스의 질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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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코퍼스>의 저자에 따르면 전쟁에서 돌아온 필록테테스는 마칼라(이탈리아 남부의 칼라브리아 지역에 위치한 고대 도시)에서 살았으며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아폴론 신전에 보관했지만 크로톤(지금의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이 그 활과 화살을 자신들이 사는 곳의 아폴론 신전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더불어 필록테테스는 시바리스(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타란토 만 해안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적었다. 기원전 4세기경 헬레니즘 시대에 활동한 그리스 비극 시인 리코프론에 따르면 마칼라 사람들은 그의 무덤 주위에 거대한 신전을 짓고 황소를 제물로 바치며 그를 신으로 모셨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역사학자 유스티누스는 사람들이 말하길 투리(이탈리아 남부 해안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 도시)는 필록테테스가 건설했으며 그곳에 그의 기념비가 있었으며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도 볼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솔리누스, 스트라보, 베르길리우스 등은 이탈리아 남부의 페틸리아도 필록테테스가 건설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로마 제국 시절 그리스 지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스트라보는 크리미사와 코네도 필록테테스가 건설했으며 필록테테스의 동료 중 일부가 시칠리아 섬의 아게스타를 요새화했다고 기록했다. 렘노스 섬 근처의 척박한 섬에는 영웅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해 놋쇠로 만든 뱀, 활 그리고 띠로 묶인 흉갑이 있는 필록테테스 제단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필록테테스가 헬렌의 구혼자 중 한 명이었는다는 이유로 트로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틴다레우스의 맹세 때문이었다. 헬렌은 그의 아름다운 미모로 그리스의 수많은 영웅들로부터 구혼을 받았다. 헬렌의 양아버지인 틴다레우스 왕은 많은 구혼자들 중에 한 명을 선택했을 때 선택 받지 못한 나머지 구혼자들이 분노하여 전쟁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헬렌이 누구를 선택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이에 순응하고 선택 받은 자의 명예를 목숨 걸고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도록 했다. 결국 헬렌은 미케네 왕자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었고 나머지 구혼자들은 그 맹세에 묶이게 되었다. 헬렌이 파리스와 함께 트로이로 도망갔을 때 나머지 구혼자들은 틴다레우스의 맹세로 인해 아내를 찾기 위한 메넬라오스의 트로이 원정에 참여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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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