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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서 멜리케르테스(Melicertes)는 보이오티아의 아타마스 왕과 테베 왕 카드모스의 딸 이오의 아들이었다. 그는 레아르코스와 형제지간이었다. 아타마스와 이노는 조카 디오니소스를 돌봐 준 죄(?)로 헤라의 저주를 받아 광기에 사로잡혀 두 아들을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다. 훗날 신들은 이 부부를 바다의 신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멜리케르테스도 바다의 신이 되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이노는 레우코테아(Leucothea)라는 바다의 여신이 되었고 멜리케르테스는 팔라이몬(Palaemon)이라는 바다의 신이 되었다. 멜리케르테스 시신은 돌고래에 의해 코린토스 지협으로 옮겨져 소나무 아래에 묻혔다. 나중에 코린토스를 다스리고 있던 시시포스가 발견해 장례를 치러 주었다. 코린토스에서는 매년 바다의 님페 네레이데스의 명령으로 그를 기리는 이스트미아 제전이 개최되었다.

 

광기에 사로잡혀 자식들을 죽이고 있는 아타마스와 이노

 

신화에 따르면 헤라는 제우스가 세멜레와 바람을 피워 낳은 디오니소스를 길러준 이노와 아타마스를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리기로 작정하였다. 그녀는 지하세계로 내려가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 중 하나인 티시포네에게 그 일을 맡겼다. 티시포네는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 두 개를 뽑아 이노와 아타마스에게 던져서 깨물게 하였다. 그런 다음 케르베로스의 침과 에키드나의 독을 신선한 피와 섞어서 만든 독약을 두 사람의 가슴에 뿌렸다. 이 독약은 환각과 광란과 살육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액체였다.

 

광기에 사로잡힌 아타마스는 아들 레아르코스를 사슴으로 착각해 창을 던져서 죽였다. 뿐만 아니라 이노는 막내아들 멜리케르테스를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던져 버렸다.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온 이노는 아들의 시체를 끌어안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또 다른 신화에서 헤라에 의해 광기에 사로잡힌 이노는 집을 나와 파르나소스 산에서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마이나데스가 되어 살았다고 한다. 이노가 죽었다고 생각한 아타마스는 힙세우스의 딸 테미스토와 결혼해 아들 오르코메노스와 스핑기오스를 낳았다. 하지만 얼마 후 이노는 광기에서 획복해 다시 아타마스 궁으로 돌아왔다.


불안해진 테미스토는 이노의 아들 레아르코스와 멜리케르테스를 죽이고자 했다. 그녀는 유모에게 명하여 자기 자식들에게는 흰 옷을 입히고 이노의 자식들에게는 검은 옷을 입히게 하였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을 죽일 때 혼동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노는 테미스토의 음모를 알아채고 아이들의 옷을 바꿔치기 하여 테미스토로 하여금 자기 자식들을 죽이게 만들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테미스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분노한 아타마스는 레아르코스를 죽이고 이노와 멜리케르테스는 바다에 던져버렸다.

 

바다의 신 팔라이몬이 된 멜리케르테스

 

하늘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프로디테는 모자의 운명을 불쌍히 여겨 포세이돈에게 이들을 바다의 신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노의 어머니 하르모니아는 아프로디테 여신이 군신 아레스와 정을 통해서 낳은 딸이었던 것이다. 포세이돈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그리하여 이노는 하얀 물보라의 여신 레우코테아가 되었고 어린 아들 멜리케르테스는 돌고래를 타고 다니는 어린 바다의 신 팔라이몬이 되었다. 레우코테아와 팔라이몬은 폭풍 속을 항해하는 배를 인도하는 선원들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 팔라이몬은 로마 신화의 포르투누스(Portunus)와 동일시되었다.

팔라이몬은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미 ‘배의 수호신’이다. 아우구스투스 시대(기원전 27년~기원후 14년)의 로마 시인 특히 베르길리우스가 그의 저서 <게오르기스>에서 노래한 항구의 신 포르투누스가 바로 팔라이몬 즉 멜리케르테스이다. 오비디우스는도 이노가 아들 멜리케르테스를 안고 바다에 뛰어든 이야기를 두 번 언급했다. 오비드는 멜리케테스를 안고 이노의 바다에 뛰어들었던 이야기를 두 번이나 했습니다. 오비디우스는 또 그의 시 <파스티>에서 돌고래들이 멜리케르테스 시신을 옮겨 놓은 코린토스 지협을 최초로 언급했다. 후기 로마 시인들은 팔라이몬과 지협의 성역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아우구스투스 이전의 숭배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히기누스는 이노가 아들 멜리케르테스와 함께 바다에 몸을 던져서 여신이 되었다고 말하고 또 이노가 아타마스로부터 도망치다가 아들 멜리케르테스를 죽였다고 말했다. 그리스-로마 관점에서 팔라이몬은 돌고래를 타는 소년 또는 트리톤 꼬리를 가진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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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라이몬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팔라이몬은 ‘레슬러’를 의미하며 헤라클레스의 별칭이기도 하다. 인테르프레타티오 그라이카(Interpretatio graeca. 고대 그리스인들이 다른 민족들의 종교와 신화를 자신들의 신화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 신들을 그리스의 신들로 번안 기록한 것)에 따르면 페니키아 티레(지금의 레바논)의 수호신 멜카르트와 동일시되며 ‘티레의 헤라클레스’로 언급되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와 팔라이몬 사이의 전통적인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멜리케르테스는 페니키아인이고 신이 된 멜리케르테스 즉 팔라이몬은 ‘불타는 군주’ 바알-하몬으로 설명되었지만 바다의 신과 불의 신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로마인들은 팔라이몬을 항구의 신 포르투누스와 동일시했고 일부는 ‘꿀을 먹는 자’라는 의미로 팔라이몬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2세기 후반 그리스의 지리학자인 파우사니아스는 이스트미아에 있는 포세이돈 성역 안에서 팔라이몬 신전을 보았다. 거기에는 포세이돈, 레우코테아(이노의 신적 이름), 팔라이몬(멜리케르테스의 신적 이름)의 동상이 있었다. 소위 그의 성스러운 곳 지하로 내려가면 팔라이몬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코린토스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여기에서 거짓 맹세를 하면 결코 그의 맹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 거기에는 키클로페스의 제단이라고 불리는 고대 성역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레우코테아와 함께 팔라이몬도 바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숭배했다.

 

멜리케르테스 숭배가 페니키아에서 기원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으며 에게해와 지중해 해안과 섬을 오갔던 페니키아 항해자들에 의해 소개되었을 것이다. 그는 페니키아의 영향력이 강한 보이오티아 출신이었다. 테네도스에서는 신으로서의 멜리케르테스를 달래기 위해 아이들을 제물로 바쳤다. 여기에서 멜리케르테스는 멜카르트와 동일시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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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