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스칸디나비아) 창조 신화에 따르면 모든 것은 긴눙가가프라고 불리는 하품하는 심연(태초의 커다란 구멍 또는 빈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한쪽 끝에는 얼음 평야와 얼음 강이 공허로 흐르는 니플하임이 있었고 다른 한쪽 끝 즉 니플하임의 반대편에는 불의 영역인 무스펠하임이 있어 무스펠하임에 가까워질수록 얼음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이 불과 얼음의 세계에서 최초의 에시르 신인 부리(Buri)가 나타났다. 고대 노르웨이어로 부리는 ‘생산하는 자’ 또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부리는 보르(Borr)라는 아들을 낳았고 보르는 또 오딘(Odin), 빌리(Vili), 베(Ve)라는 세 아들을 낳았다. 고대 노르웨이어로 보르는 ‘태어나는 자’ 또는 ‘아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에시르 신들은 부리의 후손이다. 이런 의미에서 태초의 신 부리와 그의 아들 보르는 북유럽 판테온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북유럽 신화에서 부리 이야기는 니플하임의 얼음에서 부리가 창조되면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부리가 얼음 평원에 살았던 최초의 존재는 아니었다. 그는 최초의 요툰(서리 거인족. 복수형은 요트나르) 이미르와 태초의 암소 아우둠라에 이어 나타났다. 더욱이 부리는 아우둠라가 생존을 위해 핥는 얼음이 녹으면서 나타났다. 이런 방식으로 먼저 나타난 이미르는 아우둠라의 젖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태초에 얼음에서 나타난 이미르와 부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두 종족은 우호적이었을까? 아니면 갈등이 존재했을까? 아이슬란드의 시인 스토리 스툴루손(Snorri Sturluson. 1179년~1241년)이 쓴 ‘길피의 속임수’(<신에다>의 두 번째 부분으로 우주의 창조에 관한 내용)에 따르면 역사를 공유한 두 종족 사이에는 당면한 즉각적인 긴장이 있었을 것이다. 부리는 북유럽 신들의 조상이자 오딘, 빌리, 베를 포함한 신성한 혈통의 조상이라는 지위로 인해 북유럽 신화에서 중추적인 인물이 되었다. 니플하임의 얼음에서 나온 부리의 출현은 다음 세대의 신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서로 얽혀 북유럽 신화의 복잡한 태피스트리를 형성했다.
부리와 보르는 <신에다> 속 ‘길피의 속임수’의 4장에서 언급되었다. 참고로 스노리 스툴루손의 <신에다>는 부분적으로 <고에다>에 기초를 두고 있다. ‘길피의 속임수’에서 스웨덴 왕 길피는 강글레리로 변장해 아스가르드의 세 왕으로 변장한 Odin에게 신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묻는다. 대화는 북유럽 신화의 종말 라그나로크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 때 강글레리가 물었다. 암소는 무엇으로 살아갑니까? 하르(오딘의 별칭 중 하나)가 대답했다: 그녀는 수빙으로 덮인 소금 돌을 핥았는데 첫 날 저녁에 그녀가 거기서 돌을 핥은 돌에서 남자의 머리카락이 나왔고 둘째 날에는 남자의 머리가 나왔고 셋째 날에는 온전한 남자가 나왔다. 이 남자의 이름은 부리였다. 그는 용모가 아름답고 힘이 셌으며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은 보르였다. 보르는 거인 뵐소른의 딸 베스틀라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그들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키가 큰 오딘과 빌리, 베였다.”
보르는 베스틀라와 함께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렇다면 부리의 배우자는 누구였을까? 부리는 처녀생식을 통해 아들 보르를 낳았다. 그러나 ‘길피의 속임수’에서는 이미르가 거인의 아버지가 된 방법은 설명하지만 보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보르는 에시르 신으로 성장할 2세대이며 따라서 그는 북유럽 판테온의 지속과 우주의 지속적인 발전의 중심이었다. 보르 이야기는 그의 아버지 및 북유럽 신화의 더 많은 이야기와 깊이 얽혀 있었다. 보르가 탄생할 때 여러 세대의 요툰도 나타났다. 이미르의 후손 중 하나가 보르의 아내 베스틀라였다. 베스틀라는 베르겔미르의 아들 뵐소른의 딸이자 이미르의 증손녀였다.
보르는 서리 거인 이미르의 후손인 거인 베스틀라 결합해 오딘, 빌리, 베라는 세 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중에 이미르를 죽이고 그의 사체로 미드가르드(세계나무 위그드라실 가운데에 위치한 인간 세상)를 창조했다. 에시르 신과 거인의 혈통에서 태어난 이 자손은 반쪽 요툰으로 신과 거인 사이의 격차를 메워줬다. 신과 거인 모두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보르의 혈통은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북유럽 신화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신성하고 거대한 혈통을 통해 형성된 복잡한 관계는 신화의 핵심인 이야기의 풍부한 태피스트리를 만들냈다. 이것은 북유럽 신화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 중 하나일 것이다. 에시르 신들과 요툰족은 최대의 적이지만 그들은 모두 태초의 요툰 이미르의 증손녀 베스틀라의 후손이었다. 실제로 오딘은 수많은 거인과 관계를 맺었다. 또 스카디, 토르, 프레이르 등도 모두 거인족과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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