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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장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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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칠된 벽 안에는 그 흔하디 흔한 에어컨 한 대 없다. 땀은 흐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줄 샌다. 더위를 이기는 갖가지 묘안을 생각해 내지만 사실은 뾰족한 수가 없다. 책이라도 읽어볼까? 말이 좋아 독서삼매경이지 당장 불이라도 붙일 태세로 달려드는 태양에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습한 기운은 그나마 남아있는 삶의 열정마저 깊은 무기력의 수렁 속으로 한없이 침전시킨다. 어제 읽었던 자리에 꽂혀있는 책갈피는 오늘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내일도 어쩌면 당분간 쪽과 쪽 사이에서 곰팡이가 슬지도 모른다. 그래도 와야 할 책이 오지 않는 오늘,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애써 참아낸다. 아, 짜증의 원인이 그뿐이었던가! 그렇다. 나는 장마 한복판에 서 있다.

 

 

장마는 늘 음침하고 음울하다. 내 느낌만은 아니지싶다. 옛 사람들이 장마를 표현했던 한자만 봐도 그렇다. 림우(霖雨), 음우(淫雨, 陰雨).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 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윤흥길의 소설 <장마> 중에서-

 

소설은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로 끝을 맺는다. 비를 좋아하는 탓일까. 비 내리지 않는 장마가 주는 짜증으로 나는 연신 무기력의 세계를 방황한다.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다지만, 땅은 데워질대로 데워졌고 그 땅에 남아있던 물기는 구름과의 랑데뷰를 꿈꾸며 나를 한번 감싼 뒤 대기 중으로 상승을 계속한다. 내 몸 구석구석은 이미 끈적끈적한 풀칠을 한 듯 한발짝 발을 떼는 것도 고역이다.

 

이 상황에서 문득 장마를 한자어로 어떻게 쓸지 궁금해진다.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호기심을 발동시키고 보니 이내 짧았던 지식을 폭로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길다'는 의미의 '장(長)'는 알겠는데 '마'는 뭐지? 오랜 비가 마귀처럼 무섭다[魔]는 말일까? 아니면 손발을 저리게 할만큼 지루하다[痲]는 말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더 이상 떠오르는 '마'자가 없다. 대왕님께서 한글을 반포(1446년)하신지 6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한자를 먼저 떠올리는 건 내안에 숨겨온 문화 사대주의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옛 사람들의 장마를 의미하는 '림우(霖雨)'에 주석을 달아놓은 걸 보면 '댱마 림(霖)'이란다. '맣'가 물의 옛말이라니 장마 에는 한글이 정착되어가는 과정의 혼란이 배어있는 듯 하다. 그냥 '오랜비'라고 하면 더 좋았을 걸....

 

무의미하게 켜놓은 TV에서는 알 수 없는 언어들이 소음이 되어 내 귀에 도달하고 노트북에서 쏟아내는 열기는 장마의 짜증을 한층 더 증폭시킨다. 쇼파에 누워 생각없이 바라보는 천정엔 먹구름이 가득하다. 서쪽으로 난 창문에 붉은 노을이 아로새겨지고 그 틈새로 가느다란 바람이 담아둔 한낮의 열기 속으로 들어온다. 오랫만에 찾아온 이 여유로운 장맛날 저녁, 눅눅해졌을 책갈피에게 나도 바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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