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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윤창중과 박근혜 그리고 오만에 찬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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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 가서 '나 한국사람이오.' 말할 수도 없게 생겼다. 남과 이 급격하게 대결 모드로 빠져들고 있는 현 시국에 남북관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과의 정상회담도 세인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국민들은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언제 귀국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외신도 한미 정상회담보다는 특별한 사건 하나에만 관심이 쏠려있다.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성추행 사건 때문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을 수행해 정상회담에 참석한 고위관료가 상대국에서 성추행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듯 귀국했다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그야말로 멘붕이다.

 

이 희대의 성추행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임명한 '1호 인사'가 바로 윤창중이다. 인수위 대변인에서 청와대 대변인까지 그리고 갑작스런 낙마까지 온통 언론과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인물이 바로 윤창중이다. 미국에서 성추행 사건을 저지르고 도망치듯 귀국해서는 어딘가에 잠적해 있던 그가 어제 느닷없이 해명기자회견을 열어 성추행 사건은 없었으며 귀국도 청와대 수석의 종용에 따른 것이었다며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궁색한 그의 변명은 국민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허리를 툭툭 쳤을 뿐 성추행은 없었고 미국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본 여자의 허리를 툭툭 쳐도 된다는 것인지 그의 해명은 구차스런 변명에 불과했다. 

 

힌두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지도자들로부터 참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는 성직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무하이야딘(M. R. Bawa Muhaiyaddeen)으로 스리랑카 정글 속에서 정규교육도 받지 못하고 살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성지 순례자들에게 발견됨으로써 지혜의 스승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무하이야딘이라는 이름은 '진정한 믿음의 삶을 주는 자'라는 의미로 그는 1986년 생을 마치는 그날까지 삶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풍요로움을 주는데 온 정열을 다 바쳤다고 한다. 윤창중 사태를 보면서 문득 무하이야딘이 쓴 책의 한토막이 떠올랐다. 무하이야딘의 <오만에 찬 개구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물 속의 세균과 박테리아, 벌레를 먹고 살기 때문에 그 물을 더 깨끗하게 만든다는 개구리들이 우물 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개구리들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져 서로를 잡아뜯기까지 했다. 개구리들은 먹이 때문에 싸우고 있었을까? 아니다. 큰 개구리 두 마리는 서로 우물 속의 지도자가 되겠다며 싸웠던 것이다. 크기가 똑같은 두 개구리는 서로 자기가 더 크다며 오만과 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개구리가 다른 개구리의 앞다리 둘을 삼켜 버렸다. 다리를 빼앗긴 개구리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상대 개구리의 뒷다리를 모두 삼켜버린 것이다. 두 다리를 서로에게 빼앗겨버린 개구리 두 마리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개구리들은 서로 상대방의 반을 삼켜버려 숨을 제대로 쉴 수도 뛰어오를 수도 없었다. 결국 두 마리의 개구리는 서로 남은 몸뚱아리마저 삼켜버리기 위해 싸우다 숨이 막혀 죽고 말았다.

 

작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박근혜 당선자는 윤창중을 인수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까지도 그의 임명을 두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찮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극단적인 극우주의자로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죄다 좌파니 종북으로 몰아세웠던 윤창중이 박근혜 당선자가 유세기간 그토록 외쳤던 통합의 정치와는 맞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자는 여론의 반대를 무시하고 대통령으로 취임하고는 그를 청와대 대변인으로까지 임명하고 말았다. 지난 정권에서 지도자의 오만과 독선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던 국민들로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장관 인선에서도 함량미달 인사들을 추천함으로써 장관없는 정부 출범이라는 악수까지 자초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부적격자인 후보자들을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새정부 출범 초기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혹자는 이번 윤창중 사태가 미리 예견된 참사라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윤창중은 인수위 대변인 시절부터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이 아니었다면 그의 청와대 대변인 입성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장관 후보자 청문회 과정에서 몇몇 후보자들이 낙마해 새정부 출범이 지연된 사태가 대통령 '오기 인사'의 신호탄이었다면 이번 윤창중 성추행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 '오만, 오기, 독선 인사'의 결정판으로 한 지도자의 오만과 독선이  국가에 얼마나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이 얼마나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사태를 자초한 장본인이 대통령 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이같은 사태가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무하이야딘은 말했다. 오만을 보거든 대항하지 말라고. 때가 오면 그들은 스스로 파멸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지도자의 오만과 독선을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국민들이 겪을 고통이 너무도 크다는 것은 지난 정권에서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생각이 꼭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다수의 여론을 무시했을 때 찾아오는 후폭풍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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