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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책 사재기 파문과 좋은 책 고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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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습성이란 참 무섭다. 이성적으로는 부정한 행위인 것을 알면서도 육체는 어느덧 이성의 통제 밖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걸 두고 관행이라고 하나보다. 잊을 만 하면 터지는 사재기 의혹이 유명 작가들의 절판 선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어 이번 사건의 파문이 쉽게 사그러들 것 같지 않다. 지난 7 SBS 시사 프로그램 '현장21'은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황석영 작가가 등단 50주년 기념으로 낸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와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백영옥 작가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이 사재기를 통해 베스트셀러로 조작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의혹은 사실로 밝혀지면서 그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황석영 작가는 이번 사재기 의혹은 작가에 대한 모독이라며 의혹에 휩싸인 자신의 책을 절판시키고 출판권 회수는 물론 출판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대한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황석영 작가에 이어 김연수 작가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향후 문제가 된 소설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황석영 작가야 굳이 사재기가 아니더라도 내놓은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될만큼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니 이번 파문을 작가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한편 의혹의 한복판에 섰던 자음과 모음 출판사 대표는 보도자료를 내고 대표직 사임과 사옥 매각 등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며 자성의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번 파문이 쉽게 사그러들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해왔고 사재기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사태를 키웠다는 여론이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사재기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 서점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위주로 판매되기 때문이다. 사재기를 해서라도 자사가 출판한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기만 하면 판매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특히 독자에게 베스트셀러는 사회적 담론에서 소외되지 않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베스트셀러만은 꼭 챙겨보는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이다.

 

사재기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또 하나의 원인은 솜방망이 처벌이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는 사재기를 하는 출판사나 저자에 대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처벌로는 베스트셀러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사재기를 해서라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 과태료를 벌충하고도 남을 매출을 올릴 수 있는데 말이다. 사재기를 출판계와 독자에 대한 명백한 범죄행위로 규정한 한국출판인회의가 사재기 행위에 대해 기존의 과태료 대신 벌금형으로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솜방망이 처벌로는 근절되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또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의 기능을 강화해 사재기 행위를 철저히 감시하고, 사재기를 한 출판사와 서점은 명단을 공개할 방침이라고 약속했다. 이 정도의 대책으로 사재기 관행이 없어질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지만 황석영 작가의 절판 선언으로 그 어느 때보다 사재기 파문이 공론화되고 있는만큼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사재기 의혹에 휩싸인 작가들의 절판 선언으로 모처럼 건전한 출판 시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지만 정작 그동안 사재기 관행으로 우롱당했던 독자들을 대변해주는 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독자도 사재기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 제공자라는 판단 때문일까. 물론 독자들이 베스트셀러 위주로 찾는 구매심리와 출판업계의 욕심이 서로 상승 작용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좋은 책 즉 양서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는 양서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어제는 음원차트까지 조작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결국 이런 잘못된 관행들은 문화 소비자의 약점을 파고든 범죄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독자들은 베스트셀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좋은 책을 어떻게 고를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우선 독자들은 사재기 관행이 없어지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객관적인 시장조사에 의해 베스트셀러가 선정되더라도 이를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좋은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베스트셀러가 꼭 좋은 책은 아니다.  

 

 

 그렇다면 좋은 책의 기준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쉽게 고를 수 있을까. 책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열렬한 독서광도 아닌 필자가 그저 취미삼아 책을 읽고 책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종종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읽고 싶은 책을 읽으라고 한다. 필자로서는 최선의 대답이다. 좋은 책, 양서의 기준을 독자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의 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책을 업으로 삼고있지 않는 이상 모든 분야의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리고 딱히 양서의 기준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마음을 살찌우는 책? 이러이러한 책이다 라고 딱히 정의할 수 없다. 내 관심 분야의 지식을 쌓아가면 그게 바로 마음을 살찌게 하는 책이 아닐까. 양서는 독자 스스로의 기준이고 선택이다. 오히려 각자의 기준에 맞는 좋은 책을 어떻게 고를지가 더 고민일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좋은 책을 고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직접 서점을 찾는 것이다. 요즘 서점들은 독자들이 편하게 책을 고르고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어떤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관심 분야, 관심 주제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간혹 비닐포장된 책도 있는데 이럴 때는 인터넷 서점을 활용하면 된다. 온·오프 서점에서 발품과 눈품을 많이 파는 만큼 좋은 책을 고를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특히 서점에 오래 앉아있다보면 아이는 특정 책을 사달라고 조르고 엄마는 자신이 선택한 책을 고집하느라 실갱이를 벌이는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이럴 때는 아이가 원하는 책을 골라주는 게 현명한 엄마이지 싶다. 아직 글자를 읽지 못하는 아이에게 그림은 그 자체로 독서다. 엄마는 잘 정리된 텍스트가 있는 책을 고르고 싶겠지만 아이의 눈에 띄는 책을 골라주고 텍스트는 그림에 맞게 엄마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게 좋다. 아이가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책은 아무리 엄마가 좋은 책이라고 강조해도 아이에게는 결코 좋은 책이 될 수 없다.

 

같은 주제의 다양한 책들이 있다면 가장 쉬운 책을 고르기를 권장하고 싶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현학적인 독서에 매몰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자는 유교문화의 전통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역사 속 많은 학자들이 딱딱한 중국의 유교 경전들을 쉽게 해석해서 가르치기 같은 주제의 다양한 책들을 집필했다는 것을 상기해 볼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책이나 독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느끼는 자격지심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만화도 좋고 동화도 좋다. 술술 읽혀지는 책이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하다.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꽉 찬 책을 구입해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덮어버리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고 싶다면 신문의 책 섹션이나 서평 사이트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필자가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한겨레 신문의 책 섹션 때문이었다. 몇 년 전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들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꼭지가 있었는데 교과서 속 딱딱한 고전을 우리 일상의 풍경처럼 쉽게 풀이돼 있어서 고전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완화됐고 고전읽기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신문의 책 섹션을 이용할 때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해당 신문의 논조나 가치와 부합되는 책 위주로 선정된다는 것이다. 한편 서평 사이트나 인터넷상의 서평들을 이용할 때도 맹신보다는 독자 스스로의 재해석을 통한 책 구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종종 그런 적이 있지만 의뢰받은 책의 경우 안 좋은 내용을 언급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다양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은 독자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참, 도서전문잡지도 있으니 정기구독하는 것도 좋은 책 고르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좋은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베스트셀러가 꼭 좋은 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 한가지만 명심해도 내 주변에 무수히 많은 좋은 책이 눈에 보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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