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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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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다의 죽음과 황금주의 비판의 불편한 진실 계용묵 /1935년 언젠가 노래방에서 일행 중에 한 명이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때'로 시작하는 애절한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마지막에는 '말하라 바다 물결 보았는가 갈매기 떼, 간 곳이 어데메뇨 대답 없는 아다다야'로 끝나는데 그 친구가 노래를 잘 불러서인지 아니면 가사 때문인지 광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던 노래방이 일순간 숙연해 졌다. 계용묵의 소설 를 소재로 만든 대중가요였다. 그때까지 에 관한 교과서적 지식 정도는 갖고 있었다.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한 소설이라는...애절한 노래의 여운이 오래 남아서였을까? 며칠 후 서점에 들렀다 구석에 쪼그려앉아 읽었던 책이 다. 이런 이유로도 책을 읽나보다. 작가 계용묵은 를 비롯해 , 등에서 보는 것처럼 신체 불구자의 내면의식을 주제로 한 소설들을 ..
소설로 읽는 영화 서편제의 또다른 감동 이청준의 /1976년 영화 '서편제'의 압권은 송화(오정해)와 동호(김규철)가 어느 이름없는 주막에서 해후해 판소리로 대화하는 장면이다. 앞을 보지 못했던 송화는 아버지 유봉(김명곤)을 꼭 빼다닮은 북장단에 오라비 동호라는 사실을 눈치채지만 아랑곳없이 계속되는 그들의 판소리 대화는 온 극장 안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애달픈 소리가 정적을 만드는 순간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한(恨)의 실체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시나브로 분출되고 있음은 극장 안 누구나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 시대'를 연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말이 100만이지 1993년 당시 관객수 집계가 체계화되지 못해 개봉관에 한정된 통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요즘 1,000만 영화를 훌쩍 뛰어넘..
새까맣게 탄 예수만 있을 뿐 기적은 없었다 송상옥(1938~2010)의 /「현대문학」128호(1965.8) 작가 송상옥이 궁금했다. 라는 파격적인 제목만큼이나 분열된 현대인의 심리묘사가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송상옥', '흑색 그리스도'를 몇번이고 조합해서 검색창에 입력해 봤지만 언론인 출신에 재미작가라는 이력 외엔 눈에 띌만한 작가 소개글을 찾기가 어려웠다. 작가 송상옥은 195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로 입선한 후 이 사상계의 추천을 받으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69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송상옥은 , , 등 단편소설과 , , 등의 장편소설을 집필했는데 그 중에서도 는 작가 송상옥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는 종교색 짙은 제목과 달리 주제는 자신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산업..
판타지로 읽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꿈 신채호(1880~1936)의 /1928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씨가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땅 찾기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하고 있는 현실과 반대로 남편은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신채호 선생의 아들임을 밝히기 위해 기나긴 법정투쟁을 벌여야만 했던 현실을 개탄하며 한 말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국이 광복된 지 64년이나 지난 2009년에야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다. 앞서 1986년 호적을 취득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부심에 살았어야 할 신채호 선생 후손이 자부심 대신 사치를 얘기한 현실에 가슴 아플 뿐이다. 20세기 초 1,2차 세계대전..
누가 쿨리(coolie)의 친구일까요? 백신애의 /1934년 19~20세기 초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과 인디아 노동자들을 쿨리(苦力, coolie)라고 불렀다. 이들은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을 받는 아시아 출신 노예 정도로 여겨졌다. 쿨리의 어원이 힌두어 큘리(Quli, 노예)라고 하니 아직도 미국에서는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단다. 연관성은 확실치 않으나 아랍어에도 쿨리와 비슷한 발음의 쿠리(kuuri, 풀무질하는 사람)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제국주의 시절 아시아인들의 이민역사는 지독한 가난에서 비롯되었고 눈물과 차별의 상징이 되었다. 중국과 인디아의 이민사에 쿨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러시아 및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한 까레이스키, 남미로 건너간 애니깽으로 대표되는 슬픈 이민역사가 있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을 이 ..
추악한 세상을 허우적대는 우리의 자화상 다자이 오사무(1909~1948)의 여기 세 장의 사진이 있다. 귀엽게 생긴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의 사진이지만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뜯어보면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불길한 것이 느껴진다. 또 하나의 사진은 어엿한 청년이 된 그 아이의 사진이나 어쩐지 괴담같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마지막 사진은 어른이 된 그 아이가 분명한데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화로에 손을 쬐고 있는데 그대로 죽어버린 듯한 음산하고 불길한 인상을 풍기는 사진이다. 전후 일본문학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1909~1948)가 본 이 세 장의 사진 주인공은 다름아닌 '요조'라는 사람이다. 은 이 세 장의 사진에 얽힌 요조의 에피소드를 모은 액자소설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친절하게도 후기를 통해 이 수기를 쓴 광..
성공적인 귀농을 위한 제1과 제1장 이무영(1908~1960)의 /「인문평론」1호(1939.10) 사람은 누구나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꼭 그래야만 되는 필연적 이유도 이론도 없다. 가장 자연스런 인간의 성정이다. 굳이 얘기한다면 흙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 빼고는 달리 인간의 회귀본능을 설명할 길이 없다. 특히 석회 반죽을 사이에 두고 흙과 결별해 사는 도시인들에게 보드라운 흙의 감촉은 그야말로 삶의 청량제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주말이면 맨발로 황톳길을 걷기도 하고 주말농장을 찾아 잊혀져 가는 흙내음을 되살리려 한다. 급기야 ‘귀농 열풍’이라는 현대판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직면해 있다. 이무영의 은 카프 계열의 농민문학과 이광수, 심훈 등의 계몽적 농민문학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다. 또 이무영 자신의 체험적 소설이기도 하다. 그..
그에게 결혼보다 더 절박했던 문제는... 박화성의 /1932년 목포는 항구다. 대중가요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목포의 이미지는 항구다. 한편 목포는 예향이다. 목포 앞바다에 그림처럼 자리잡은 삼학도를 바라보고 영산강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일명 '예술의 거리'라는 문화벨트가 형성되어 있다. 각종 박물관과 전시관, 기념관 등이 드넗은 바다를 향해 펼쳐져 있다. 이 건축물 중 목포문학관에는 한국문학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4명의 목포 출신 문학인 기념관이 있다. 사실주의 연극을 완성한 차범석, 근대극을 최초로 도입한 김우진, 계간 ‘문학과 지성’을 창간한 평론가 김현, 우리나라 여류소설가 최초로 장편소설을 집필한 박화성. 아이들과 함께 목포여행 계획이 있다면 '예술의 거리'를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될거라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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