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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판타지로 읽는 어느 아나키스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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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1880~1936)의 <용과 용의 대격전>/1928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씨가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땅 찾기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하고 있는 현실과 반대로 남편은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신채호 선생의 아들임을 밝히기 위해 기나긴 법정투쟁을 벌여야만 했던 현실을 개탄하며 한 말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국이 광복된 지 64년이나 지난 2009년에야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다. 앞서 1986년 호적을 취득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부심에 살았어야 할 신채호 선생 후손이 자부심 대신 사치를 얘기한 현실에 가슴 아플 뿐이다. 20세기 초 1,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인 프랑스 뿐만 아니라 패전국인 독일마저도 나치에 부역한 전범 색출에 아직까지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과거청산도 이루지 못했고 뒤늦게나마 일고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마저 일부 세력의 조직적인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특히 이 일부 세력과 친일파 후손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더더욱 부끄러운 현실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개화∙계몽주의자에서 민족주의자로 말년에는 무정부주의자(Anarchist)로 여순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추구했던 표면적 이데올로기는 세월의 흐름 속에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가 잊지 않았던 조국의 독립과 민중 해방의 믿음만큼은 시대를 뛰어넘어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용과 용의 대격전』은 그가 말년에 무정부주의에 심취했던 때에 쓴 판타지 단편소설이다. 신채호에게 조직적인 계급투쟁 뿐만 아니라 정치적 조직, 규율, 권위를 거부하고 국가권력의 강제수단을 철폐함으로써 자유와 평등,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무정부주의는 식민지 조국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조선 민중들을 해방시킬 유일한 대안이었을 것이다. 그의 무정부주의적 사상은 천사들이 제안하는 인민들의 반역을 진압시킬 방책에 대한 상제의 반론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하하 딱한 사람, 우리가 만든 정치 법률이 코두레보다 더 잔악하지 않으냐? 윤리 도덕이 굴레보다 더 흉참하지 않으냐? 군대의 총과 경찰의 칼이 채찍보다 몇만 배나 더 전율할 무기가 아니냐?”

“공자놈을 시키어 명분설을 지어 ‘빈자, 천자는 빈천의 천분을 안수하여 세력자의 명령을 잘 받아 충신, 열사의 명예를 후세에 끼치라’고 속이며, 석가놈과 예수놈을 시켜 ‘너희들이 남에게 고통을 받을지라도 이것을 반항없이 안과하면 죽어서 너희의 영혼이 천국으로, 연화대로 가리라’고 속이었다. 이러한 마취약들이 또 어디 있겠느냐? 이천 년 동안이나 크게 그 약효를 보았더니, 지금에는 그 약의 효력도 다하여 고놈들이 점점 자각하여 반역이니 혁명이니 하고 떠드는구나.”

『용과 용의 대격전』에 등장하는 두 마리의 용인 미리와 드래곤은 신채호가 타파하고자 했던 현실과 이 현실을 타파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즉 미리는 동양의 ‘종복사상’, 드래곤은 서양의 ‘혁명사상’을 대변한다. 윌리엄 고드윈이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아 저술한 『도덕과 행복에 대한 정치 정의의 영향에 대한 연구, 1793년』가 무정부주의 이데올로기의 기원으로 보는 관점에서 드래곤이라는 영문명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채호가 바라는 세상은 드래곤으로 대표되는 혁명이 민중의 자각을 통해 민중을 억압하고있던 식민지 시대의 정치제도와 국가권력 및 민중들의 현실안주를 부추겼던 종교 등을 타파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었다.

“수학상의 ‘0’은 자리만 있고 실물은 없지만 드래곤의 ‘0’은 총, 칼도, 불도, 벼락도, 기타 모든 ‘테러’가 될 수 있다. 금일에는 드래곤이 ‘0’으로 표현되지만, 명일에는 드래곤의 대상의 적이 ‘0’으로 소멸되어 제국도 ‘0’, 천국도 ‘0’, 자본가도 ‘0’, 기타 모든 지배세력이 ‘0’이 될 것이다. 모든 지배 세력이 ‘0’으로 되는 때에는 드래곤의 정체적 건설이 우리의 눈에 보일 것이다.”

결국 드래곤의 공격으로 미리는 토우상(土偶像)이 되고 상제는 쥐구멍으로 숨는 것으로 소설은 끝맺음을 한다. 그러나 정작 신채호 자신은 그가 소설을 통해 염원했던 세상을 뒤로 한 채 감옥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올해는 신채호 선생 탄생 130주년이 된다. 너무도 긴 세월 동안 우리는 신채호를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사책에서 독립운동가였다는 몇 줄의 서술로 그를 폄하해 왔던 게 현실이다. 수십 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레드 콤플렉스가 신채호에 대한 평가를 애써 소홀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구상에 완전한 이데올로기는 없다.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지만 이들 이데올로기는 생물처럼 진화를 거듭한다. 역사는 민중적 관점에서 민중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보한다. 신채호 선생이 민족주의자였건 공산주의자였건 그는 조국의 독립과 민중해방을 위해 일생을 바쳤고 우리는 그 열매를 토대로 살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일본 제국주의의 호적제도를 거부하면서까지 죽은 후에도 수십 년 간 무국적자로 남아 있어야만 했던 신채호 선생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작업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목과 대결을 아우를 수 있는 근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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