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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태석이 빨갱이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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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도야지』/「문장」27호(1948.10)/창비사 펴냄

“1940
년대의 남부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천,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XXX XXXX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그리고 차경석의 보천교나 전해룡의 백백교도 혹은 거기에 편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도야지』 중에서-

 

잘 생각해 보라! 불의를 싫어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대한민국을 사랑하지만 당신도 어느 날  빨갱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방법은 있다. 당신이 아무리 부정한 사람이고 참되지 못하며 대한민국을 경멸하더라도 XXXX당에만 가입하면 빨갱이라는 덫은 피해갈 수 있다.

 

채만식의 소설 『도야지』에서 정의하는 빨갱이란 이렇단다. 아무리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라지만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릴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빨갱이란 낙인찍기를 이렇게 쉽게 사용할 수 있다니 살 떨리는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빨갱이가 되는 과정이 너무도 쉽고 단순하다. 나와 정치노선이 다르면 그만이다. 이쯤 되면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채만식이 『도야지』에서 풍자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대충은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 정치요 정치집단이다. 그렇다고 채만식의 풍자대상이 정치집단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 또한 기억하자.

 

주인공 문태석은 자신을 공산주의자로 생각지도 않지만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게 자못 유쾌하다. 통행금지에 걸려 순경과 마주쳐도 당당히 자신은 빨갱이라고 대답한다. 당돌하다 못해 당당한 문태석.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식이 빨갱이인 것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불명예롭고 손실인 것을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고소하고 유쾌하다. 문태석의 아버지 문영환도 그렇게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자신의 정치노선에 대한 순수성과 열정을 확인받기 위해 아들 태석을 빨갱이로 만들어버린 비정한 아버지다.

 

소설 『도야지』의 배경은 해방공간,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미군정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세워지는 1948년 제헌의회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탐욕과 허영을 풍자하고 있다. 아버지 문영환을 둘러싼 인물들은 문영환이 국회의원이라는 감투만 쓰는 날이면 한 자리 해먹기 위해 모인 마치 썩은 생선대가리를 찾아 몰려든 파리떼들과도 같다. 그 뿐인가! 평소 테러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애국적인 청년단체의 멤버들도 문영환의 신변보호는 물론 선거 관련 잡일을 위해 동원되었다.

 

교회의 전도부인과 여자 교인으로 조직된 문영환의 선거선전대를 이끌고 있는 어머니 최씨부인은 어떤 인물인가! 남편못지 않은 교만과 위선과 가식으로 똘똘 뭉친 우둔하고 무지한 여자다. 그러면서도 세상일은 혼자서 다 아는 체 하는 여자다. 어머니 최씨부인을 꼭 닮은 이가 한 명 더 있으니 출가한 둘째 누이 명자다. 재력가인 남편을 등에 업고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명자의 남편 황종택이 돈을 모으는 방법도 가관이다. 그는 토목정부업자다. 1천만 원짜리 토목공사를 청부를 받아 5백만 원쯤 들여서 어름어름 공사를 하는 방식으로 돈을 모으는 파렴치한이다.

 

이러니 아들 태석은 자신이 빨갱이가 되어서라도 아버지를 낙선시킬 수밖에 없다.

 

이런 부친 문영환, 이런 모친 최씨부인, 이런 누이 명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드나드는 온갖 종류의 인물들, 그 누구 한 사람에서도 구역이 나도록 불쾌한 반감을 느끼지 아니하는 인물이 없었다. 항차 그들이 그들답게 빚어내는 분위기란 정히 견디기 어려울 만큼 탁하고 추하고 불순스럽고 한 것이었다. -『도야지』 중에서-

 

앞서도 언급했듯이 채만식이 풍자한 것은 비단 정치뿐이 아니었다. 교내 웅변대회에 참석한 문태석의 입을 빌어 당시의 사회모순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돈벌이에 급급해 일제잔재의 노예교육과 파쇼교육으로 일관하고 있는 교육의 현실과 만연한 부정 부패, 소작농민과 월급쟁이, 소상인들의 처참한 생활상에도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이제 소설의 제목 도야지가 내포한 의미는 충분히 짐작되었으리라 믿는다. 잔치를 할라치면 빠지지 않는 게 돼지다. 아버지 문영환도 당선을 기정사실화하고 당선축하에 쓸 돼지를 미리 사놓는다. 그러나 아들 태석의 예상대로 문영환은 보기좋게 낙선하고 만다. 소위 도야지 낙방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채만식에게 혼탁한 정치판과 당시의 사회 현실은 돼지 우리, 꼭 그 판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참 오후에 경채나 또 찾아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문태석은 가방을 집어들고이슬이 함빡 머금은 울창한 정원수가 5월의 아침 공기로 더불어 상쾌하기 다시없는 정원 사이의 통로를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도야지』 중에서-

 

올 한 해는 어느 때보다 편히 쉬어야 한다. 내년이면 일년 내내 대한민국이 온통 도야지 울이 될 것이니 말이다.

*집은 책으로 채우고 화원은 꽃으로 메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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