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현대판 장발장,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반응형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유정의 『만무방』/「조선일보」(1935.7.17~31)/창비사 펴냄

당뇨병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물건을 훔친 아들
, 아이들 분유값 때문에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남성들에게 성관계 쪽지를 보낸 뒤 차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낸 엄마, 간암 투병 중에 약값이 없어 배포용 무가지를 훔친 독거노인, 빈 건물에서 건축자재를 훔치다 붙잡힌 무직자까지 국민소득 2만불 시대 대한민국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정부고 언론이고 내일 당장이라도 선진국 반열에 오를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그 뒤안길에서는 현대판 장발장이 빵 한 개 훔치려다 철창 신세로 전락하는 생계형 범죄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범죄는 범죄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냉혹한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기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이미 거대한 공룡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위정자들이 복지를 들먹거리지만 그들의 입 어디에도 진정성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흔하디 흔한 정치구호요, 선거용 립서비스일 뿐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만 요란하게 나뒹굴고 있다. 경제성장의 단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독차지한 그들만의 리그에 우매한 백성들은 관중석 한 켠에서 밑도 끝도 없는 환호성만 강요당하고 있다.

 

생계형 범죄, ‘현대판 장발장은 누가 만들었고 누구의 책임일까?

 

여기 이해할 수 없는(?) 생계형 범죄가 있다. 응오란 놈은 자기 논의 벼를 훔쳤단다. 먹고 살기 힘들어 그랬다지만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는 제 똥도 못 가리는 병든 아내가 있다. 돈만 있으면야 그까짓 병이 대수겠냐마는 응오 부부가 사는 집은 굴속마냥 거미줄이 얼키고 성킨 그런 곳이라니 할말 다 했다. 가을걷이나 제대로 해서 아내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나 먹일 노릇이지 자기 논 벼를 훔치다니, 그는 정말 막되 먹은 놈 만무방이었을까?

 

김유정이 『동백꽃』, 『봄봄』에서는 배꼽을 빼앗아 가더니 이번 소설『만무방』에서는 눈물을 훔치고 만다. 해학과 유머를 자랑하는 그도 차마 조선민중의 처참한 생활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응칠과 응오 형제는 궁핍한 조선민중들 중에서도 가장 극빈층에 속한다. 형 응칠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아내와 이혼하고 어디든 베개 삼을 땅만 있으면 모두 제집이다. 게다가 전과 4범이다. 그나마 동생 응오는 진실한 농군이다. 비록 병든 아내 치료비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생활이지만 동네에서는 모범 청년으로 통한다. 굳이 따지자면 만무방은 형 응칠에게 더 잘 어울린다. 아주 상팔자다. 상팔자 중에 상팔자, 그래서 그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더욱 애처롭고 비참하다.

 

그는 버젓이 게트림으로 길을 걸어야 걸릴 것은 하나도 없다. 논 맬 걱정도, 호포 바칠 걱정도, 빚 갚을 걱정, 아내 걱정, 또는 굶을 걱정도, 회동그라니 털고 나서니 팔자 중에는 아주 상팔자다. 먹고만 싶으면 도야지고, 닭이고, 개고, 언제나 옆을 떠날 새 없겠지. 그리고 돈, 돈도… -『만무방』 중에서-

 

그런데 동생 응오는 왜 자기 논 벼를 훔치는 만무방이 되어야만 했을까? 응오에게는 나름대로 계산된 절도였다. 애써 일 년 농사 수확해 봐야 지주에게 소작료 주고 장리쌀 제하고, 색조(세곡이나 환곡을 받을 때나 타작할 때에 정부나 지주가 곡식의 질을 보려고 더 받던 곡식)를 제하다 보면 남는 건 등줄기에 흐르는 땀뿐이다. 게다가 올해는 흉작이다. 수확해봐야 아내와 둘이 먹을 것도 남지 않으려니와 빚도 다 갚지 못할 게 뻔하다. 수확한다는 소문이라도 들리면 빚쟁이들이 몰려들 테고 응오는 차라리 가을걷이를 포기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자기 논 벼를 훔칠 수밖에 없었다.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생계형 범죄가 있을까?

 

도둑은 언젠가 범죄 현장을 다시 찾는다는 게 범죄수사의 기본이라더니 막되 먹은 이놈 응칠이도 이런 상식은 있었던지 동생의 논 근처에서 잠복한 끝에 범인을 잡았으나 그 범인이 동생이었으니 얼마나 착잡했을고, 더욱이 응칠이는 동생이 제 논 벼를 훔쳐야만 했던 사연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개버릇 남 못 준다고 응칠이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제안한다. 그러나 응오는 단박에 거절하고 응칠이는 자존심이 상했던지 아니면 병든 아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동생이 한심스러웠던지 응오가 체면 불구하고 땅에 엎드려 엉엉 울도록 패 주었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고개를 내려오는 이 만무방 형제의 뒷모습에서 조선민중의 고단한 삶을 보게 된다.

 

쓰러진 아우를 일으키어 등에 업고 일어섰다. 언제나 철이 날는지 딱한 일이었다. 속 썩는 한숨을 후 하고 내뿜는다. 그리고 어청어청 고개를 묵묵히 내려온다. -『만무방』 중에서-

 

현정부 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과의 소통은 거부한 채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 했다는 노변정담을 모방해 매주 라디오 연설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라디오 연설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단어가 가난이다. 대통령 왈, 가난은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게 아니란다. 전파 낭비다. 고작 이런 감상적인 훈계나 하려고 공공재를 마음대로 유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신화인양 쏟아내는 대통령의 가난 극복기가 아니다. 가난을 벗어나게 해 줄 정책이다. 복지에 대한 요구를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으로 치부해 버리는 그들이 존재하는 한 생계형 범죄, ‘현대판 장발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만무방 형제, 응칠과 응오는 오늘도 장발장이 되어 어느 교회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대판 장발장’,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집은 책으로 채우고 화원은 꽃으로 메꾸어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