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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두 번 결혼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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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김유정의 『산골 나그네』/「제일선」11호(1933.3)/창비사 펴냄

몹쓸 병에 걸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남편과 그 남편 곁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병은 더욱 깊어가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약 한재 지어 먹일 수 없는 빠듯한 살림이었으니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어쩔 수 없이 아내는 남편을 데리고 이 동네 저 동네 찾아 다니며 걸식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동네 부잣집에서 마누라를 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도 씨받이가 아니었나 싶다. 아내는 그 부잣집을 찾아가 남편을 살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첩으로라도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 부잣집에서는 근처에 남편이 기거할 수 있는 움막을 지어 주고 아내를 첩으로 들였다. 아내는 부잣집에서 음식이며 옷가지를 가져다 남편을 먹이고 입히고 했다. 아내의 이런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결국 죽고 말았다고 한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 부잣집 첩으로 들어갔던 아내는 남편의 주검 옆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후에 사람들은 남편 옆에 아내를 묻어주고 아내 무덤 앞에 비석을 하나 세워주었다고 한다. 이 비석이 이부열녀비이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부열녀(二夫烈女) 민담은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다. 두 남편을 섬긴 여자, 게다가 이부열녀비까지 세워 주었다니 선뜻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일부종사라는 말의 남성우월적 지배논리가 수 천 년의 역사를 관통해 왔는데 두 남자를 섬긴 여자라니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배계급이 열녀비를 그들의 지배논리를 공고히 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면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열녀비를 통해 사람사는 세상의 참모습을 실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김유정의 소설 『산골 나그네』는 바로 이 이부열녀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부열녀설화의 대부분이 그렇듯 『산골 나그네』의 주인공도 생계를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사기결혼을 선택한다. 당시 농촌의 궁핍한 생활상을 이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투영시키려 했던 것일까 다소 충격적이지만 김유정이 이 부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다. 윤리와 도덕이 밥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김유정이 『동백꽃』이나 『봄봄』에서 보여주었던 해학과 익살은 『산골 나그네』에 이르러서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바뀌어 있다. 간결하면서도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원해 산골 마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산골에 대한 묘사가 서정적일수록 당시 농촌의 궁핍한 생활상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효과를 준다. ‘이부열녀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이 소설의 결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렇다고 사기결혼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한 이 여인에 대해 분노할 수만은 없었다. 산 저편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슬퍼보였기에….

 

어느 날 홀어머니와 덕돌이라는 아들이 사는 산골 주막에 나타난 나그네, 그는 여자였다.말수도 없는 이 여자는 바로 당시 농민들이요, 조선민중들이 아니었을지 싶다.

 

계집의 나이 열아홉이면 활짝 필 때이건만 버캐된 머리칼이며 야읜 얼굴이며 벌써부터 외양이 시들어간다. 아마 고생을 짓한 탓이리라가냘픈 몸이라 상혈이 되어 두 볼이 새빨갛게 색색거린다. 치마도 치마려니와 명주저고리는 어찌 삭았는지 어깨께가 손바닥만하게 척 나갔다. -『산골 나그네』 중에서-

 

이 집 주인은 여자가 맘에 든다. 뿐만 아니라 덕돌이도 어지간히 반했는 모양이다. 결국주인은 나그네에게 결혼 제안을 하고 나그네의 가타부타 말없는 침묵을 승낙으로 받아들이고 아들 덕돌이와 부부의 연을 맺어준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아내가 사라졌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아내를 찾아 산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지금은 인적이 끊긴 물방앗간에서는 서두르는 듯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여보 자우? 일어나게유 얼핀.”


인제 고만 떠날 테이야? 쿨록…”


옷이 너무 커, 좀 적었으면…”


잔말 말고 어여 갑시다 펄쩍…” -『산골 나그네』 중에서-

 

여인의 목소리는 분명 산골 나그네요, 술집 며느리의 목소리였다. 남자는 연신 신음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덕돌이와 결혼한 이유였다. 병든 남편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똥끝이 마르는 듯이 계집은 사내의 손목을 겁겁히 잡아끈다. 병든 몸이라 끌리는 대로 뒤뚝거리며 거지도 으슥한 산 저편으로 같이 사라진다. 수은빛 같은 물방울을 품으며 물결은 산벽에 부닥뜨린다. 어디선지 지정치 못할 늑대 소리는 이 산 저 산서 와글와글 굴러내린다. -『산골 나그네』 중에서-

 

또 하나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부부의 사랑이다. 병든 남편을 위해 자신의 몸까지 팔아야 할만큼 이 부부를 묶어준 그 무엇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왜 사기결혼까지 해가면서 언제 죽을지 모를 남편 곁을 지켜야만 했을까?

*집은 책으로 채우고 화원은 꽃으로 메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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