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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뺏기지 않는 놈은 도적질할 권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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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명일』/「조광」12~14호(1936.10~12)/창비사 펴냄

만일 내일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무슨 색깔일까
? 노란색, 파란색, 흰색아마 검정색이나 회색으로 내일을 표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일을 의미하는 또 다른 한자인 명일의 명 자도 밝다()’라는 뜻이다. 새 날이 밝아온다는 직접적인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옛 사람들은 내일이 가지는 속성을 희망이고 꿈이고 기대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을지 어설픈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여기 내일을 온통 회색빛으로 채색하고 있는 지식인이 있다. 그는 소위 룸펜(Lumpen) 지식인이다. 그에게 내일은 명일(明日)이 아니라 명일(冥日)이다.

 

채만식의 소설 『명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발표된 『레디메이드 인생』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정책으로 마치 기성복 찍어내듯 양산된 지식인, 그 지식인이 『명일』에 와서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약함을 뛰어넘어 내일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 버린 자포자기한 지식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채만식 풍자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 남편에 그 아내

 

우선 채만식이 풍자 대상으로 삼은 범수라는 지식인이 어떻게 룸펜 신세가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소설에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다만 아내 영주와의 대화로 짐작컨대 당시로서는 선택받은 자라 할 수 있는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자긍심이 강한 지식인일 수도 있고 일제에 부역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실업자의 길을 택한 지식인일 수도 있다. 문제는 룸펜이 된 연유야 어찌됐건 현재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라 아예 교육 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현실 포기형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채만식의 풍자는 주인공 범수에게서 멈추지 않는다. 또 다른 지식인인 아내 영주도 풍자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한다. 이 부부의 유일한 수입이라곤 아내 영주가 삯바느질로 벌어오는 푼돈이 고작이다. 늘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대지만 그녀는 알게 모르게 지식인의 허세와 허영으로 가득 차 있다. 잡일이라도 할까 하는 남편에게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며 반대하는 그녀다. 또 그녀는 밀린 집세를 마련하기 위해 재봉틀 살 돈이 필요하다고 말을 꾸며야만 할 만큼 지식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얼핏 남편을 걱정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녀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당시 지식인일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편이 돈이나 변통하려고 시장한 것을 참여가며 더운 데 허덕허덕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그러면서라도 마음먹은 대로 돈이나 구처되었으면 신이 나서 돌아오려니와 모두 허탕만 치고 말면 얼마나 더 시장하며 낙심이 되랴 싶어 차라리 나가지 못하게 하니만 못했다고 뉘우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명일』 중에서-

 

뺏기지 않는 놈은 도적질할 권리도 없다

 

결국 남편 범수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해 버리는 극단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 것도 또 다른 현실 부적응 지식인 아내 영주의 지나치게 낭만적인 현실 인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범수의 극단적인 자기 비하는 그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불안한 심리상태와 아들 종석을 대하는 태도에서 여지없이 나타난다. 그는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 P의 지갑에서 돈을 훔칠까도 생각하고 금은방에서 금비녀와 가락지를 훔칠까도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훔치지 못한다. 보통학교부터 대학까지 십육 년이나 공부를 했으면서도 금비녀 한 개 감쪽같이 숨기는 기술 하나 배우지 못한 자신을 한탄한다. 그는 스스로 위안한다. 도적질은 나쁘고 악하고 무엇보다도 더럽고 치사하다고, 그리고는 뺏기지 않는 놈은 도적질할 권리도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시킨다.

 

그의 이러 태도는 아들 종석에게 정상적인 교육을 거부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느 날 두부를 훔친 큰 아들 종석을 흘겨보며 ! 이놈의 자식 승어부(勝於父)는 했구나.”라고 중얼거린다. 범수는 아들 종석이 지식을 배우지 않았기에 두부를 먹을 수 있었다고 결론지어 버린다. 네가 아버지보다 낫다

지식인을 바라보는 이들 부부의 엇갈린 판단은 영주가 작은 아들 종태는 보통학교에 보내고 범수가 큰 아들 종석을 써비스 공장에 보내는 것으로 결말을 맺게 된다. 이 두 아들의 명일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소신을 쌈 싸 먹은 지식인들

 

아마 채만식이 살아있다면 또 다른 지식인에 대한 풍자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지식인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의 지식인도 있다. 문득 대학 시절 어느 교수가 생각난다. 그의 수업은 꽤 인기가 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정의를 가르치고 현실에 타협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교수는 수구적인 국회의원의 모습을 하고 TV 화면에 등장했다. 대학 동기들은 한동안 그 교수를 입방에 올렸다. ‘그 교수 맞어?’, ‘이럴 사람이 아닌데..’

 

나는 왜 소신을 포기하고 권력을 쫓는 폴리페서(Polifessor, 정치지향 교수를 이르는 조어)보다 무기력한 지식인 범수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일까?

 

그 소신 다 쌈 싸 먹었나!!!

*집은 책으로 채우고 화원은 꽃으로 메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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