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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우가리트

종교갈등의 제물이 된 신, 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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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리트 판테온의 최고신이자 폭풍의 신 바알(Baal). 출처>구글 검색

고대 가나안과 페니키아는 지중해 해변을 따라 지금의 이스라엘 북쪽,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을 망라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바알(Baal)은 고대 문화에서 풍요와 대지의 신이었다. 나중에 이집트로 전파되어 폭풍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셈 족 세계에서 바알은 ‘지배자’를 의미한다. 고대인들은 바알이 자연과 인간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믿었다. 바알은 우가리트 판테온의 최고신이자 그의 아버지인 엘(El)보다 더 우월한 신으로 여겨졌다.

 

바알에게 동물이나 심지어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쳤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더불어 셈 족 사람들은 바알과 아나트(Anath, 사랑과 전쟁의 여신, 바알의 여동생) 또는 바알과 아쉐라(Asherah, 바알의 어머니이자 엘의 아내)의 성적 결합이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공개적인 제의적 매춘 관행도 존재했다. 공동체의 여성은 아쉐라와 아나트를 상징했고, 남성 성직자는 보통 바알을 상징했다. 바알은 또한 성경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바알에 관한 대부분의 자료는 1929년 시리아 북부의 고대 도시 우가리트(Ugarit)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에서 비롯되었다. 신화에서 가나안은 생명과 풍요를 상징했고, 모트(Mot)는 죽음과 불임의 신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7년을 주기로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바알과 모트의 전쟁은 가뭄과 기근이 올지, 7년의 풍년이 올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바알은 또한 바다의 신 얌(Yam)과도 전쟁을 벌여 신들의 왕 지위를 차지했다.

 

바알의 아버지는 최초 신들의 왕 엘이었다. 그러나 바알은 아버지보다 더 강력했다. 그의 어머니 아쉐라는 최고의 여신이었으며 나중에는 바알의 정부가 되었다. 바알의 여동생 아나트도 훗날 그의 정부가 되었다고 한다.

 

바알은 샤판이라는 산에 있는 거대하고 부유한 궁전에서 살았다. 바알은 자기 궁전에 있는 구멍에서 땅에 물을 내렸다. 이집트 신 왕국 시대에도 바알을 중요한 신으로 여겼으나 그의 죽음과 소생에 대한 신화는 오시리스의 그것과는 결코 동등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리스-로마 시대 바알은 제우스나 주피터와 함께 팔레스타인 지역에 흡수되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40년 동안 도처를 떠돌다 바알이 최고신으로 있던 가나안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가나안의 이교도 신을 숭배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막을 방황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신이 옳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가나안 사람들이 풍요로운 땅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신념은 무너졌고 그들은 그들의 신과 바알 모두를 숭배하기로 결정했다.

 

히브리 신이 예언자 엘리야를 통해 자신만이 비를 통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을 때 그들의 우상 숭배는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히브리 신은 가뭄을 보내 3년 동안 지속되도록 했다. 페니키아의 제제벨 여왕은 그녀의 법정에 450명의 바알 예언자들을 보냈다. 엘리야는 카르멜 산 기슭에서 바알 예언자들을 만나 어떤 신의 보호를 받아야 할지를 결정했다. 먼저 바알 예언자들이 하늘의 증표로 번개를 소환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야가 그의 신에게 기도했을 때 하늘로부터 번개가 내리쳤다고 한다.

 

한편 바알 신전으로 알려진 시리아 팔미라의 고대 사원은 2015년 이슬람 국가(IS)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IS 조직원들은 고대 사원들과 보물들 중 일부를 이슬람 이전의 우상 숭배로 간주했으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유물들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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