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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화장실 글, 예술이 따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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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구된 휴지/이범선(1920~1981)/1972년

 

어릴 적 가로등 불빛도 들지 않는 후미진 골목 담벼락에는 꼭 이런 낙서(?)가 있었다.

···

이런 경고 문구까지 써야만 했던 담벼락 주인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냐마는 이런 낙서가 있는 담벼락은 공인(?)된 소변 장소였다. 최소한 바지춤을 꽉 잡고 헐레벌떡 뛰어다니던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곳이 바로 이런 낙서가 있는 담벼락 아래였다. 요즘이야 현대식 건물로 개·증축되었고 골목마다 가로등은 물론 CCTV까지 설치된 곳이 적지 않고 공중 화장실도 잘 갖춰져 있어 굳이 이런 낙서가 필요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대신 공중 화장실에서 발견되는 재치있는 글귀들이 오히려 더 화제가 되고 있다. 또 가정집 화장실에도 아름다운 글귀를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만끽하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범선의 소설 <표구된 휴지> 속 주인공 '나'의 집에도 그림 같기도 하고 글 같기도 한 액자가 하나 있다. 그저 걸어둔 이 액자가 이상하게도 차츰 '내' 화자실의 중심점이 되어 갔다. 은행원인 친구가 젊은 지게꾼 고객이 버린 구겨진 휴지를 가져와 글이 국보급이라며 '나'에게 가져와 표구를 부탁해서 액자로 만든 것이었는데 매일같이 보면서 중독 아닌 중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표구된 휴지 속에는 어떤 글이 씌여 있었을까?

 

▲화장실에는 명언 이외에도 이런 황당한 문구도 있다. 사진>매일경제 

 

니떠나고메칠안이서송아지낫다. 그너석눈도큰게잘자란다. 애비보다제에미를더달맛다고덜한다. 압논벼는전에만하다. 뒷방콩은전해만못하다. 병정갓던덕이돌아왔다. 니서울돈벌레갓다니까, 소우숨하더라.밥묵고배아프면소금한줌무그라하더라. 니무슨부주변에고기묵건나. 콩나물무거라. 참기름이나마니처서무그라.우물집할머니하루알고갔다. 모두잘갓다한다. 장손이장가갓다. 색씨는너머마을곰보영감딸이다. 구장네탄실이 시집간다. 신랑은읍의서기라더라. 압집순이가어제저녁감자살마치마에가려들고왔더라. 순이는시집안갈끼라하더라. 니는빨리장가안들어야건나. 돈조타. 그러나너거엄마는돈보다도너가더조타한다. 밤에는솟적다솟적다하며새는운다마는 -<표구된 휴지> 중에서-

 

띄어쓰기는 물론 맞춤법도 어디 한 군데 맞는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다만 자식의 안부를 묻는 부모의 애틋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밤에는솟적다솟적다하며새는운다마는' 다음에 무슨 글이 있을지 '나'는 궁금해진다. 수필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 이 짧은 소설을 통해 저자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오히려 우리 주변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글들을 떠올린다면 저자의 의도를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

 

'소변금지'니 '휴지를 버리지 마세요'라느니 '화장실 바닥에 껌을 뱉지 마세요' 등은 70,80년대나 볼 수 있었던 지극히 상투적인 화장실 글이다. 내가 일하는 직장 화장실에도 이런 상투적인 글이 적혀있다. '핸드타올을 변기에 버리지 마세요. 변기가 막히는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제발 담배는 자제해 주세요.' 어디 하나 관심을 끌만한 대목이 없다. 지극히 직설적인 안내문일 뿐이다. 한 때 공중 화장실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와 같은 글은 이제는 식상하다. 그렇다면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화장실 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기발하고 재치있는 글들이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화장실 글도 진화하는 모양이다.

 

'큰 일을 먼저 하라. 작은 일은 저절로 처리될 것이다'

'실패한 고통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깨닫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위 화장실 문구는 데일 카네기가 한 말이고, 아래는 앤드류 매튜스의 명언이란다. 단순히 명언이라서 화장실에 적어둔 글이 아니라는 것은 두 번만 읽어봐도 단번에 눈치채게 될 것이다. 본능적인 생리현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게 신기할 정도다. 또 변비의 고통은 어떤가. '실패한 고통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깨닫는 것이 더 고통'이라니 변비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듯 싶다. 

 

'많이 먹으면 토하는 것처럼 저(변기)도 많이 먹으면 토하니 조심하세요'

'당신이 저를 소중히 다루시면, 제가 본 것은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쉿! -변기 올림'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해 달라는 간곡함을 이렇게 재치와 유머가 듬뿍 담긴 말로 표현하다니 화장실 주인인지 관리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합시다.'라는 기존의 진부한 표현보다는 한 번 더 쳐다보고 한 번 더 주의를 기울일 것 같은 글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잡고 계십니다'

'당신이 갖고 계신 총이 장총이시면 제자리에서 쏘시고 한발짝 앞으로 다가가서 쏘십시오'

 

아무래도 이 글은 남자 화장실에서만 볼 수 있지 싶다. 조금은 야하다 싶기도 하지만 소변기 앞에 선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이만한 명언(?)이 또 어디 있을까. 설마 이 글귀를 보면서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담벼락 밑에서 많이 했던 오줌발을 자랑하는 남성들은 없겠지. 공중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글들의 대부분은 표현만 다를 뿐 사실은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해주길 바라는 간곡함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글들이 표현된 재치와 유머는 일상의 노곤함을 해소하는 공간인 화장실에서의 행복을 더 배가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자가 신변잡기에 불과할 것 같은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삼은 의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가 은행 쓰레기통에서 주은 구겨진 휴지를 '국보급'이라며 표구를 부탁한 데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버지의 편지 속에서 느끼는 감동 때문이었다. 모성애와는 다른 아버지의 사랑 표현에서 누구든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친구는 구겨진 휴지로 버려진 아버지의 편지에서 세상 어느 예술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느꼈던 것이다. 이런 감동은 주인공 '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미술 전시회 티켓이라도 건네주면 덥석 겁부터 나는 게 보통 사람들의 심정이다. 그만큼 예술이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표구된 휴지'는 다름아닌 예술 작품을 의미한다. 이런 평범한 편지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표구된 휴지>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예술은 이런 것이 아닐까? 대중이 예술가로 인정한 사람의 작품이나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만 예술이 아니라 독자가 보고 감동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 작품일 것이다.

 

평생 읽었던 글 중에서 가장 감명깊은 대목 몇 구절만이라도 자그마한 액자로 만들어 화장실에 걸어놓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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