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시인의 마을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과 진보정당의 도전

반응형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에 스티브 블래스(Steve Blass, 1942년~)란 선수가 있었단다. 블래스는 10년 동안 1,597이닝을 소화하고 평균 자책점 3.63의 뛰어난 투수였다. 1960년 피츠버그에 입단한 블래스는 1964년 첫 데뷔전을 치렀고 1968년 시즌에는 18승에 평균 자책점도 2.12의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다. 1969년 시즌에도 16승을 기록하는 등 블래스는 1969년부터 1972년 사이에 무려 60승을 거뒀다. 특히 1972년에는 생애 최고승인 19승을 기록하고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다. 또 1971년에는 볼티모어를 상대로 한 월드 시리즈에서는 18이닝 동안 불과 7개의 안타만을 허용하고 2승을 거두는 맹활약을 하기도 했단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투수, 스티브 블래스를 소재로 한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2006년에는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기도 한 백상웅 시인의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란 시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하필 선거 하는 날,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는 왜 자꾸 내보내는 걸까.

볼넷, 볼넷, 볼넷, 밀어내기 볼넷.

딱딱 떨어지는 각운.

 

눈여겨본 상대에게 연애 걸 때처럼, 복권 긁을 때처럼, 해가 지고 밤이 막 오는 이런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확륙과 통계가 통용되지 않는다.

 

저 자는 무슨 자신감으로 등판하는 것일까.

저 자는 과연 이 지역을 점령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볼 때마다 팀이 진다.

이쯤에서 타자가 대충 스윙을 해줬으며 하는 바람.

팀이고 뭐고 저 투수를 위하여 아웃되어줬으면 하는 바람.

 

투수는 강판, 왜 이제야 바꿔! 복장이 터질 때 다른 채널에선 개표방송을 한다.

내가 찍은 자는 낙선, 내가 찍은 정당은 해체.

이게 요행이다.

 

나무는 마음 내킬 때 꽃 피웠으면 하고, 스트라이크 존은 쪼개서 좀 나눠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살았으면 한다.

이게 정치다.

 

-출처.『창작과 비평』156호, 2012년 여름-

 

스티브 블래스라는 빼어난 투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훗날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Steve Blass Syndrome)'이라는 오명이 그를 따라다녀야만 했을까.

 

앞서 설명한 대로 스티브 블래스는 뛰어난 실력으로 1971년 메이저리그에서 피츠버그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우완투수였다. 그런 그가 1973년 시즌부터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다고 한다. 1973년 84개의 볼넷에 3승, 평균자책점 9.81에 머물렀고 마이너리그를 전전했던 1974년 시즌에는 5이닝 동안 7개의 볼넷. 바로 앞 시즌에서 19승을 했던 투수의 기록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초라한 성적이었다. 결국 팀에서 방출되었고 1975년 야구를 접어야만 했다. 귀신에라도 홀린 것일까.

 

1973년과 1974년 시즌 스티브 블래스는 수차례의 정밀검사와 심리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스티브 블래스가 은퇴하고 두 달 후 미국의 작가 로저 앤젤은 그의 책 <뉴요커>에서 이런 스티브 블래스의 알 수 없는 성적 부진을 보고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처음 탄생시켰다고 한다. 뚜렷한 이유없이 성적이 부진한 투수를 빗대어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걸린 것 아니냐는 기사를 흔히 볼 수 있으니 그리 낯선 용어도 아니지 싶다.

 

백상웅의 시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진보정당의 현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라는 우스개소리도 있듯 뻔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후보를 낸다. 그렇다고 진보정당의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만큼 그렇게 비현실적이고 공허하단 말인가? 아니다. 기존 보수정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달픈 서민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줄 공약들로 꽉 차 있다. 말로만 외치는 보수정당의 친서민 구호와는 달리 실질적인 정책들과 민초들의 삶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공감한 정책들로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왜 국민들은 진보정당을 외면하는 것일까. 이러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비례대표 부정선거로 홍역을 치렀던 통합진보당 사태가 수습국면으로 접어든 것 같다. 심상정 의원이 원대대표로 선출된 데이어 강기갑 전의원이 통합진보당의 새 대표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늘 패전만 하던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라도 걸린 것 같았던 투수가 교체된 것이다. 한국 진보정당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인가. 진보정당의 큰형님 격인 통합진보당의 향후 행보는 한국 진보정당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서민들과 늘 함께 있으면서도 서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진보정당, 한국진보정당이 앓고 있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은 정말 그 이유가 없는 것일까. 강기갑 대표체제가 해야 할 첫번째는 왜 진보정당이 서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는지 그 원인을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찾아내고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도 분명 원인은 있을 것이다. 정치는 요행이 아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