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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천하는 아이와 함께 보는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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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욱 글, 박재현 그림의 <친일파가 싫어요>/2012년/맹&앵 출판사

 

"친일작가의 이름을 붙여놓은 문학관은 그 자체로서 친일작가를 기념하는 사업이 됨으로 문학관의 운영 내용을 떠나 친일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관 명칭은 근본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그의 친일작품이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 것은 기념사업이 빌미가 되긴 했지만 논쟁의 핵심은 친일행위가 명백한 친일작가에게 시민의 혈세로 그를 기념하고 기릴 수는 없으며 그런 일은 국가의 정체성에도 국민의 정서에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친일작가 이원수 기념사업 저지 창원시민대책위원회 성명 중에서-

 

작년부터 경상남도 창원에서는 한 동화작가의 문학관 건립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언론을 통해 바라본 이 논쟁이 씁쓸한 이유는 문학관 건립을 찬성하는 단체건 반대하는 단체건 그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지 못하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천박한 역사의식의 단면을 대변해주는 논쟁이 아닐 수 없다. 나치 부역자 색출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유럽인들의 역사인식을 안다면 부끄러운 논쟁이 아닐 수 없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작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은 동화작가 이원수(1911년~1981년)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고향의 봄>의 저자가 바로 이원수다. 1926년 소파 방정환이 펴낸 잡지 <어린이>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게 된 동시 <고향의 봄>은 후에 홍난파가 곡을 붙여 전국민이 부르는 동요가 되었다. 한편 이원수는 1942년 조선금융연합조직회의 기관지인 <반도의 빛>에 학도병 지원을 찬양하는 <지원병을 보내며>라는 시를 발표하는 등 친일행적이 드러나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친일작가로 등재된 인물이기도 하다.

 

이원수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문학관 건립을 주도하고 있는 이원수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도 인정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단 한 차례의 잘못도 용서될 수 없다는 극단적 역사논리보다는 한때 잘못된 판단으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만 그 뒤 치열하고 진지하게 뉘우치고 새롭고 올바른 삶을 통해 평생 사회와 국가에 더 큰 이바지를 했다면 그 삶도 가치있는 것이라고 가르치는게 현실적이고 올바른 교육이 아닌가 한다....우리는 이원수 선생이 과대 포장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원수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 성명 중에서-

 

또 이원수의 자녀 또한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다고 친일작가의 문학관 건립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용서를 빌고 그의 잘못된 과거행적을 용서한다는 것과 문학관 건립의 별개의 문제다. 특정인의 기념관이나 문학관은 상징성이 큰 문제로 한 국가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특히 이원수는 동화작가가 아닌가! 평생을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인물에 대한 발굴작업이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그 후손들 또한 정부의 무관심 속에 극심한 생활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친일작가 문학관 건립은 국가 정체성의 문제를 떠나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이원수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 성명대로 '이원수 선생이 과대포장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굳이 국민혈세를 들여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그들의 이원수에 대한 예우일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민족문제연구소 회보 「민족사랑」4월호를 받았다. 아무래도 책블로거의 본능인지 회보를 받을 때면 '새로 나온 책' 코너를 가장 먼저 펼치게 된다. 이번 호에는 임헌영의 <불확실 시대의 문학>, 김민철의 <기로에 선 촌락-식민권력과 농촌사회>, 주강현의 <유토피아의 탄생>, 이순우의 <손탁호텔>, 김삼웅의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 등이 소개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책은 고정욱 글, 박재현 그림의 동화 <친일파가 싫어요>이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친일문학가와 저항문학가의 작품을 동시에 배울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역사적 진실을 가르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된 과거는 청산돼야한다고 가르치면서 잘못된 과거를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하면서 호의호식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아무런 비판없이 읽고 배워야만 현실은 우리교육의 분명한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엄마와 아이가 또 아빠와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동화, 함께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일깨워주는 그런 동화가 아닌가 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작은 학교와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천용이와 석철이도 경천 초등학교에 다니며 풍족하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들 부모님의 얼굴에 깊은 시름이 깃들기 시작한다. 해방 이후 평화롭게 살아온 시골 마을이 친일파 송병준 후손들의 토지 반환 소송에 휘말린 것이다. 재판에 지면 마을 주민 대부분이 살 곳이 없어지고, 소작농인 천용이 아버지도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다. 한적한 마을은 대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알다시피 송병준은 강화도 조약 이후 '일진회'라는 친일단체를 창립하는 등 또 다른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용과 함께 1907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킨 뒤 일본과 정미7조약을 맺은 '정미7적'의 한 명이다. 최근 대표적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인 송병준의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토지 소유권 반환소송을 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법원이 국가의 손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해방 후 7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친일파가 버젓이 친일행위 댓가로 받은 땅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현실은 친일청산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주고 있다. 부끄러운 역사의 단면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의 지도층이 되기는커녕 김구, 여운형 선생처럼 친일파에 의해 암살당하기도 했고 가난, 무관심, 멸시 속에 굶어 죽은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고 어느 시인이 ‘독립운동가는 3대가 망하고, 친일파는 3대가 흥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방학진 추천사 중에서-

 

저자가 책 머리말에서 했다는 “친일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오래 전 일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라는 말은 친일의 댓가로 사회지도층이 된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자 친일청산에 대한 역사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는 우리에게 보내는 충고일 것이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애매모호한 교과서적인 가르침보다 정의가 억압받는 현실을 재미있는 동화로 읽어주는 게 더 효과적인 교육이지 싶다. 아이들에게는 무거운 주제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숨길 수도 숨겨서도 안되는 역사를 아이와 오손도손  얘기해 보는 것도 뜨거운 여름을 나는 또 하나의 피서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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