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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북유럽

호감과 호전 사이, 발드르(발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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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에서 발드르(Baldr)는 에시르 신족의 신이다. 발드르는 오딘(Odin)과 프리그(Frigg)의 아들로 배우자는 난나(Nanna)이고 포르세티(Forseti)의 아버지다. 그는 모든 신들뿐만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너무도 잘생기고 고상하고 활기차서 마치 몸에서 빛을 발산하는 듯 했다. 오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이었다.

 

호드르의 겨우살이 창에 찔리는 발드르. 출처>구글 검색

발드르라는 이름의 뜻과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며 학문적 토론의 주제가 되어왔다. 많은 가능성들이 제기되었다. ‘희다라는 뜻의 인도 게르만 공통 조어의 어근 ‘bhel-‘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을 의미하는 고대 노르웨이어 ‘bal’이 어원이라고도 한다. 여러 가설들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지 않고 정확해 보이는 설명은 발드르(Baldr)’가 고대 노르웨이어에서 용감하다라는 뜻의 ‘baldr’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이 설명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발드르에 대한 전사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한편 발드르는 고대 노르웨이 문학에서 묘사한 것처럼 순수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만은 아니다.

 

이런 문학의 원천은 중세 아이슬란드 학자인 스노리 스툴루손(Snorri Sturluson, 1179~1241) <신 에다>일 것이다. 신화와 시에 관한 이 논문이 우리가 발드르에 관해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 즉 발드르의 죽음과 부활 신화의 출처라고 할 수 있다. 스노리가 주장한 발드르에 관한 신화는 다음과 같다.

 

발드르가 그의 죽음을 예견하는 꿈을 꾸었을 때 어머니 프리그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아들 발드르를 해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들은 발드르를 보는 순간 무기를 비롯한 발드르를 해칠만한 모든 것들을 버렸기 때문에 발드르는 늘 아무 탈없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교활한 트릭스터였던 로키(Loki)만 없었다면 발드르의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로키는 프리그에게 발드르를 해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는 동안 어떤 것도 간과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프리그는 무심코 겨우살이가 너무 작고 무해한 것으로 생각해 굳이 그런 서약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로키는 곧장 겨우살이로 창을 만들어 맹인 신 호드르(Hodr)를 찾아가 설득해 겨우살이 창을 발드르에게 던지게 했다. 겨우살이 창은 발드르의 가슴에 꽂혔고 그는 쓰러져 죽고 말았다.

 

슬픔에 빠진 신들은 그들 중 한 명이 지하세계로 내려가 죽음의 여신 헬(Hel)의 손아귀에서 발드르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했다. 오딘의 또 다른 많은 아들 중 한 명인 헤르모드(Hermod)는 이 여행을 하기로 동의했고 오딘의 명마 슬레이프니르(Sleipnir)를 타고 세계 나무의 어둡고 축축한 뿌리에 내려갔다. 그곳에는 헬의 거처가 자리잡고 있었다. 헤르모드가 도착했을 때 그의 형 발드르가 창백하고 암울한 표정으로 헬 옆에 앉아 있었다. 헤르모드는 헬에게 발드르를 풀어달라고 간정했고 많은 설득 끝에 헬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발드르를 위해 운다면 다시 말해 발드르가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그를 포기하겠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오딘의 너그러운 아들(발드르)을 위해 울었다. 하지만 발드르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하나 있었다. 여자 거인 토크(Thokk, 고맙다는 뜻)로 로키가 변장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발드르의 지상으로의 귀환을 냉정하게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발드르는 헬과 함께 그녀의 기쁨 없는 영역에 남게 될 운명이었다.

 

이 전설은 하나의 출처에서 나온 반면 이야기의 조각들은 초기 노르웨이 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또 그 이야기의 많은 세부 사항들은 바이킹 시대 이전의 보석 등에 묘사되어 있다. 우리가 스노리가 전한 발드르 신화가 적어도 그것의 일반적인 윤곽에서는 의도적으로 추가하거나 삭제하지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무지의 발로건 발드르를 순교자로 묘사하고자 했던 욕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스노리는 발드르의 성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호전적인 기질은 생략했을 가능성이 높다. 발드르의 죽음에 관한 또 다른 문학적 설명이 있는데 바로 중세 덴마크의 역사가 삭소 그라마티쿠스(Saxo Grammaticus, 1151~1220)의 언급이다. 삭소는 스노리와 달리 발드르의 끊임없는 전쟁에 관한 열망을 묘사했다. 삭소에 따르면 발드르는 심지어 군벌의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것은 발드르의 이름을 일반적인 무기와 전쟁에 연결시켜 발드르가 훨씬 더 전투적이었다고 말한다.

 

삭소의 언급을 좀 더 자세히 여신 난나를 얻기 위해 발드르와 호드르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서 발드르는 마법의 무기에 의해 살해당했다. 발드르가 여러 죽은 전사들과 함께 헬이 다스리는 지하세계로 내려갔다는 것은 그가 큰 전투에서 죽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스노리와 삭소의 언급 말고는 발드르에 관한 자료가 그리 많지는 않다. 다만 발드르를 그리스도의 모방이라는 것을 드러내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완전히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또 메소포타미아의 두무지나 히타이트의 텔리피누, 이집트의 오시리스처럼 발드르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들과 연결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발드르가 헬의 왕국(지하세계)에서 귀환했다는 어떤 암시도 없기 때문이다.

 

호감이건 호전이건 우리가 발드르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기독교 이후에 쓰여진 기록이기 때문에 기독교 이전의 북유럽 신화에 대해서는 거의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드르가 바이킹을 비롯한 다른 게르만 민족들에게는 화려한 명성을 받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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