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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북유럽

금요일의 어원이 된 여신, 프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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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에서 프리그(Frigg)는 때로 영어식으로 ‘프리가’로 표기하기도 한다. 프리그는 에시르 신족의 여신이며 최고신 오딘(Odin)의 아내이자 발드르(Baldur)의 어머니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여신으로써의 프리그에 대한 현존하는 자료 즉 프리그의 성격이나 행동, 특성에 관해서는 언급이 그리 많지 않다. 대신 바니르 신족의 풍요와 미의 여신 프레이야(Freya)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운명의 실을 짜고 있는 어머니 여신 프리그(Frigg). 출처>구글 검색


프리그와 프레이야는 초기 게르만 여신 프리야(Frija)로부터 발전했다. 두 여신은 신화가 기록되기 시작한 후기 바이킹 시대 이후부터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두 여신은 이름을 제외한 모든 특성이 같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프레이야처럼 프리그도 북유럽 신화의 주술의 일종인 세이드(Seidr)를 집행한 바이킹 시대의 여성 주술사인 볼바(Volva)였다.

세이드는 종종 상징적으로 새로운 사건을 존재로 엮음으로써 운명의 과정을 파악하고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운명의 구조 내에서 일하는 것을 포함했다. 이 힘은 잠재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어떤 필요에나 사용할 수 있으며 사실상 인간 상태의 전체 범위를 포괄하는 예는 옛날 노르웨이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옛날 노르웨이 시인 <로카센나(Lokasenna)>에서는 로키가 프리그를 비방한 후 프레이야는 로키에게 프리그가 모든 존재의 운명을 알고 있으며 프리그에게 세이드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경고했다. 프리그의 직조 활동은 그녀의 이런 역할에 대한 암시일 것이다. 프레이야에게는 매의 깃털이 있는데 프레이야와 다른 에시르 신들은 이 깃털을 이용해 새로 변신할 수 있었으며 프리그도 자신만의 매의 깃털로 새로 변신할 수 있었다.

바이킹 시대에 볼바는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니며 주술을 행한 대가로 숙식이나 음식 또는 그에 준하는 보상을 받았던 여성 예언자이자 마법사였다. 북부 유라시안 샤먼들과 달리 볼바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애매모호했다. 즉 볼바는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다.


바이킹 시대보다 앞선 민족 대이동 시기인 서기 400년에서 800년 사이 게르만 부족 사이에서 제도적으로 필요하고 대중적으로 찬사를 받았던 역할을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나중에 볼바가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사회적 제도의 핵심 중 하나는 일종의 용병으로 전쟁을 위해 소집된 워밴드(Warband)였는데 이 조직은 부족의 족장과 그 부인이 주재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 55?~120?)에 따르면 워밴드 지도자의 부인를 벨레다(Veleda)라고 불렀는데, 워밴드에서 그녀의 역할은 점을 쳐서 수립된 계획의 결과를 예언하는 것이었고 마법을 통해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워밴드의 주기적인 의식에서 세속적이나 종교적 힘의 상징이었던 특별한 물을 다루는 것이었다.

이런 여인에 관한 문학적 묘사는 <베어울프(Beowulf)>에 등장하는데 오늘날 덴마크로 알려진 땅의 워밴드와 흐로드가(Hrothgar)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흐로드가의 왕비는 웨알테오우(Wealhtheow)로 타키투스가 언급한 벨레다와 같은 인물로 추정되는데 벨레다와 동일한 행동으로 워밴드의 통합과 권력구조를 유지하는데 독립적인 역할을 했다. 이 벨레다와 웨알테오우가 프레이야와 프리그의 토대였다.

민족 대이동 시기 이후 프레이야 또는 프리그가 된 여신은 후에 오딘의 아내가 되었다. 다소 베일에 싸여 있기는 하지만 옛 노르웨이 문학에서는 그러하다. 프레이야의 남편은 오드르(Odr)였는데 이 이름은 오딘의 고 노르웨이 형태인 Odinn과 비슷하다. ‘오드르’는 ‘편안함, 영감, 분노’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드르는 고 노르웨이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지는 않는다. 다만 오드르가 먼 여행길에 떠나 있는 동안 프레이야가 붉은 황금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오딘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은 그가 아스가르드나 그 안의 세계가 아닌 다른 아홉 개 세계를 두루 여행한다는 것이다. 오딘의 많은 별명들이 그의 방랑과 여행 중에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썼던 이름들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프레이야의 남편을 오딘으로 보기도 한다.

프레이야와 프리그는 (명목상 공동의) 남편과 부정에 대해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다. 덴마크의 역사가 삭소 그라마티쿠스(Saxo Grammaticus, 1150?~1220?)는 프레이야의 부정한 행위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프리그가 적어도 한번은 노예와 잤다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옛 노르웨이 문학에 따르면 오딘이 아스가르드에서 추방당했을 때 그의 형제들인 빌리(Vili)와 베(Ve)가 아스가르드를 지배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오딘이 돌아올 때까지 프리그와 동침했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은 전자(프레이야의 노예와 동침)가 후자(프리그의 오딘 형제들과 동침)보다 더 문란하다고 주장함으로써 프레이야와 프리그를 구분하려고 시도했지만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영어에서 금요일을 뜻하는 ‘프라이데이(Friday)’는 프레이야와 프리그의 선모로 알려진 프리야(Frija)에서 유래했다. 북유럽인들은 프리야를 두 여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기 노르웨이 문학에서는 프레이야와 프리그를 구별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아니면 어느 출처에서 구분이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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