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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했던 사고 목격담] "무단횡단한 거 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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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은 늘 비몽사몽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동료 차를 타고 집 가까운 사거리에서 내렸다.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이른 시간이라 지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자꾸 꼬이는 걸음걸이가 창피해서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 한 병을 샀다. 한모금 마시고 나니 잠시 정신이 들었나 싶더니 몇걸음 못가 다시 졸음이 밀려온다.

동네 골목길을 접어드는 마지막 사거리 신호등 아래 멈췄다. 아침 6시 30분, 차도 별로 없고 해서 빨간 신호등인데도 그냥 건넜다. 횡단보도 끝자락에서 인도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뒤에서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번쩍 들어 뒤를 돌아보니 택시 앞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쓰러져 있었다. 그 여학생은 일어서려고 하는데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 그냥 앉아있었다.

급하게 그 여학생에게로 뛰어가 괜찬냐고 물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도 급히 다가와서는 일어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런 사고를 처음 본 탓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그 순간에 무엇을 먼저 해야할지 머리 속이 정리가 되질 않았다. 아주머니도 마찬가진 듯 했다. 잠시후 택시기사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수첩에 뭔가를 메모하면서 택시문을 열고 나왔다.

"뭐하세요?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야지."

나와 아주머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말부터 했다. 택시기사는 그 여학생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 뼈가 다쳐서 움직이면 안돼요. 119 부를테니까 우선 그냥 두세요."

아주머니가 한마디 했다.

"그래도 다쳤는데 병원부터 데려가야 되는 것 아니예요?"

택시기사는 어딘가로 전화해서 사고 위치를 알려줬다. 119인 듯 싶었다. 그때 사고 택시기사 말고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지금 움직이면 안된다니까요"

어느샌가 근처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가사며, 지나가던 택시기사들 대여섯이 사고현장을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 택시기사가 나와 아주머니를 향해 한마디 했다.

"무단횡단 하신 거 보셨죠?"

아주머니는

"못봤어요"하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나는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지금 사람이 다쳤는데 무슨 말씀 하시는 겁니까?"

택시기사는 "못봤다고요?"하면서 실실 쪼갠다.(비속어이긴 하지만 당시 택시기사의 태도를 달리 설명할 단어가 없다.). 그리고는 다른 택시기사들과 뭔가 얘기를 주고받는다.

나와 아주머니는 여전히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여학생에게 집전화번호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런데 여학생은 안된다며 목만 만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현장을 둘러싼 택시기사들은 "왜 아픈 사람에게 말을 시키냐"며 위압적인 말투로 한마디씩 했다. 그때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서더니 젊은 남녀 4명이 내렸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우선 집에 전화 먼저 하라며 여학생을 설득해 보지만 소용없었다.

그 때도 주위 택시기사들은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이러느냐"며 짜증들을 냈다. 갈수록 분위기가 음산해졌다. 아무리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었지만 택시기사들의 태도에 기가 늘린 듯 했다. 처음 나와 같이 있었던 아주머니도 조금 겁이 났던지 슬그머니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지나가며 혼자 하는 말이 내게 들렸다.

"사람이 다쳤는데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드디어 119 구급차가 왔다. 119 직원들은 여학생이 일어서려 하자 움직이지 말라며 조심스레 들 것에 눕혔다. 안심이 됐던지 그때서야 그 여학생도 집에 전화해야 된다며 전화번호를 불러주었다. 곧이어 경찰차도 왔다. 차에서 내린 경찰의 첫마디는 바로

"차 이동한 건 아니죠?"였다. 그리고는 앞뒤 바퀴 근처에 락카칠을 했다. 경찰은 여학생과 택시기사의 인적사항을 간단히 적었고 구급차는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그 사고상황도 종료가 되었다.

현장을 떠나면서 가슴 한 구석이 씁쓸했다. 그런 사고현장을 처음 본 터라 그 상황이 옳은 상황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나도 몰려든 택시기사들의 위압적인 태도에 눌렸던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차 이동한 건 아니죠?"라고 했던 경찰의 첫마디가 왠지 마음에 걸렸다. 사고택시기사와 몰려든 택시기사들이 그렇게 짜증스럽게 급기야는 위압적으로 말한 이유가 혹시 그들에겐 다친 여학생보다 그 여학생이 무단횡단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더디기만 했다.

지금은 그런 상황에 부딪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검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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