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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0주년에 읽는 詩 '화산도'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한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현직 대통령으로는 두 번째로 4.3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복권을 선언했다. 아픈 역사, 굴곡된 역사를 끊는데 70년. 사람이 나서 죽을 시간만큼의 세월 동안 아픈 역사를 치유해 ..
얼마나 달라졌을까? 詩 '휴일특근' 같이 일하는 형님이 침통한 얼굴을 하고 나를 불렀다. 한손에는 급여명세서가 들려 있었다. 올해 최저임금이 작년보다 10몇 퍼센트 올랐다는데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설마요?' 하면서 급여명세서 좀 볼 수 있냐고 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개별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선뜻 자신의 급여를 공개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한참 고민 끝에 보여준 급여명세서는 도통 알 수 없는 내용뿐이었다. 식비나 교통비, 직무 수당과 같은 각종 수당은 사라지고 급여총액과 공제금액뿐이었다. 아, 뉴스에서 보던 꼼수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각종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킨다더니 이런 식이었구나 싶었다. 그러니 작년 월급과 큰 차이가 없을 수밖에.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 중 90% 이상은 최저임금 노동자다..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이해인 지음/마음산책 펴냄 』은 올해 칠순, 수녀원 입회 50주년을 맞은 이해인 수녀가 신작 산문과 신작 시 100편,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꼼꼼히 기록한 생활 이야기 100편을 묶어 낸 책이다. 필 때 못지않게 질 때도 아름다운 동백꽃처럼 한결같은 삶을 꿈꾸는 이해인 수녀는 스스로 한 송이 꽃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해인 수녀가 1976년 펴냈던 첫 시집의 제목은 였다. 그로부터 38년 후, 봄의 민들레처럼 작고 여렸던 그는 2008년 암 수술 이후 몇 년간 투병하며 눈 속에서도 생생한 붉은빛을 뽐내는 동백꽃으로 다시 태어났다. 동백은 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흩날리지 않고 꽃송이가 조금도 시들지 않은 채 깨끗하게 툭 떨어져내리는 꽃이다. 우아한 동백의 일생을 그리..
봄여름가을겨울, 그리움의 또다른 이름 김소월 시집/김소월/범우사 펴냄 바람 자는 이 저녁 흰 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은…… 꿈이라도 꾸며는! 잠들면 만나련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 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 눈은 퍼부어라. -김소월의 '눈 오는 저녁' 중에서-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고들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춥고 배고픈 겨울보다야 발품이라도 팔면 배 곪을 일 없고, 별빛이 촘촘히 수놓인 밤하늘을 이불 삼아 어디에서고 누울 수 있는 계절이 여름이 아닌가! 겨울을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눈 오는 날 이층 베란다에서 바라본 폐지 줍는 노인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등이 굽어 몇 장 포갠 신문지 뭉치가 힘에 부쳐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콧노래 절로 나올 겨울..
안녕하지 못해 아슬아슬한 우리네 이야기 어쩜 이리도 희고 따스할까 눈처럼 세상을 응시하고 과거에서 흘러나온 꿈인 듯 커다랗게 부풀었구나 고구려나 신라 시대가 아니라서 알에서 사람이 태어나지 않지만 알은 매끈매끈한 사람의 피부야 이 무서운 세상에 그 얇은 껍질은 위험해 모피알 정도는 돼야 안 다치지 알 속의 시간들이 흩어지지 않게 내가 살살 굴릴게 살림이 늘고, 아는 사람이 느는데, 내 안의 생은 동굴처럼 적막해 알이라도 굴리지 않으면 안돼 내가 볼 수 있는 동안만 알이겠지 내가 사는 동안만 굴릴 수 있겠어 온몸으로 쏟아지는 밤빛 속에서 깊은 밤 도시를 굴리며 나는 간다 -신현림 시인의 '알을 굴리며 간다' 중에서- 출처> 창작과 비평 2013년 겨울호 *신현림: 1961년 경기도 의왕 출생.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 , , 등..
망실(亡失) 망실(亡失)/문태준/2013년 무덤 위에 풀이 돋으니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아요 오늘은 무덤가에 제비꽃이 피었어요 나뭇가지에서는 산새 소리가 서쪽 하늘로 휘우듬하게 휘어져나가요 양지의 이마가 더욱 빛나요 내게 당신은 점점 건조해져요 무덤 위에 풀이 해마다 새로이 돋고 나는 무덤 위에 돋은 당신의 구체적인 몸을 한 바구니 담아가니 이제 이 무덤에는 아마도 당신이 없을 거예요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 , , , 등이 있음. 송골매의 9집 앨범 중에 '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이란 노래가 있다. 갓 스무살로 접어들 즈음 아직 미치도록 사랑해도 모자랄 그 나이에 왜 이 노래를 흥얼거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냥 이별도 아니고 떠난 자..
XX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정상일까 다움/오 은/창작과 비평 2013년 가을호 파란색과 친숙해져야 해/바퀴 달린 것을 좋아해야 해/씩씩하되 씩씩거리면 안돼/친구를 먼저 때리면 안돼/대신, 맞으면 두배로 갚아줘야 해 인사를 잘해야 해/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해/받아쓰기는 백점 맞아야 해/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돼/밤에 혼자 있어도 울지 말아야 해/일기는 솔직하게 써야 해/대신, 집안 부끄러운 일은 쓰면 안돼/거짓말은 하면 안돼 꿈을 가져야 해/높고 멀되 아득하면 안돼/죽을 때까지 내 비밀을 지켜줘야 해/대신, 네 비밀도 하나 말해줘야 해 한국 팀을 응원해야 해/영어는 잘해야 해/사사건건 따지고 들면 안돼/필요할 때는 거짓말을 해도 돼/대신, 정말 필요할 때는 거짓말을 해야만 해/가족을 지켜야 해 학점을 잘 받아야 해/꿈을 잊으면 안돼/대신..
얼마나 서러우면 빗물이 다 울까, 설움의 덩이 설움의 덩이/김소월(1902~1934) 꿇어앉아 올리는 향로의 향불.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초닷새 달 그늘에 빗물이 운다. 내 가슴에 조그만 설움의 덩이. 꿇어앉아 향불을 피우는 행위가 마치 경건한 구도자의 모습같다. 설움의 크기도 계량화시킬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설움을 화자는 조그맣지만 '덩이'라고 표현했다. 가슴을 저미는 설움이 얼마나 컸으면 뭉치고 뭉쳐 '덩이'가 됐을까. 구도자의 자세로 설움을 삭히려는 화자의 모습은 종교보다도 더 숙연하고 진지하다. 빗물이 다 울 정도니 설움으로 화자가 받았을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화자는 가슴 한 구석을 채우고 있는 설움을 떨쳐낼 수 있을까. 화자에게 설움은 '향불'과 '빗물'로 상징화되지만 아쉽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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