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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히타이트

쿠마르비, 그리스 올림포스 왕권신화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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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 사이에는 이마 한 가운데 둥근 눈 하나만 가진 괴물 키클로페스 삼형제와 머리 50개와 팔 100개가 달린 거인 헤카톤케이레스 삼형제가 태어났다. 또 티탄족 12신이라고 부르는 열두 명의 신을 낳았다. 하지만 우라노스는 가이아가 낳은 자식들 중 키클로페스 삼형제와 헤카톤케이레스 삼형제를 타르타로스(지하세계 또는 지옥)에 가두어 버렸다. 분노한 가이아는 아들이자 남편인 우라노스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가이아의 복수계획에 동참한 유일한 아들이 바로 티탄족 12신 중 막내였던 크로노스였다. 크로노스는 거대한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잘라 거세시키고 우주의 지배자인 최고 신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아버지를 죽인 패륜은 다음 대에서도 똑같이 재현된다.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에게 그랬듯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새로운 우주의 지배자가 된 것이다. 즉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레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태어난 족족 집어삼키는 엽기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시간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는 신화의 메타포일 수도 있지만 실은 자신이 아버지 우라노스에게 그랬기 때문에 자기 자식들 또한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레아의 지혜로 살아남은 막내아들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제거하고 형제들을 모두 구한 다음 올림포스의 주인, 신 중의 신이 된다.

 ▲히타이트 제국. 사진>네이버 캐스트


누구나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 속 올림포스 시대의 탄생 과정이다. 하지만 이 신화의 원형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아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에게 해를 사이에 두고 그리스와 마주보고 있는 터키에 전해지는 신화에 올림포스 왕권신화의 원형이 있다고 한다. B.C 3,000년 경부터 터키 지역에 살기 시작했던 히타이트족 신화에 비슷한 내용이 전하는데 히타이트족은 B.C 8세기 경 멸망하기까지 강력한 제국을 형성해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싼 한 축이기도 했다.


히타이트 신화에 따르면 우주의 지배자는 알랄루라는 신이었다. 알랄루는 9년 동안 우주를 지배했다. 하지만 부하 신들의 반란이 일어나 알랄루가 물러나고 하늘의 신 아누(Anu)가 우주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아누는 알랄루처럼 9년 동안 우주를 지배했지만 다시 반란이 일어나 지배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 그 반란의 주인공이 바로 아들 쿠마르비(Kumarbi)였다. 여기서부터 그리스 올림포스 왕권신화의 원형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누가 알랄루를 이기고 9년 동안 무사히 우주를 지배했으나 또 다시 신들은 불안해 졌고 이번에는 아누의 아들 쿠마르비가 그 반란의 주역이 되었다. 쿠마르비는 아버지 아누의 성기를 물어뜯어 쓰러뜨리고 자신이 가장 강한 신임을 입증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쿠마르비가 아누의 성기를 물어뜯는 과정에서 정자를 삼키고 말았는데 그것을 뱉어내자 거기에서 한 무리의 신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정리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신화에서는 이 때 태어난 신들은 쿠마르비의 자식들이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폭풍우의 신 테슈브(Teshub)도 있었다. 짐작하겠지만 훗날 테슈브는 아버지 쿠마르비를 물리치고 다시 우주의 지배자가 된다.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의 삼대에 걸친 그리스 신화의 왕위쟁탈전은 히타이트 신화의 아누, 쿠마르비, 테슈브로 이어지는 삼대의 권력싸움을 모티브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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