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서 레테Lethe는 지하세계인 하데스에 있는 다섯 개의 강 중 하나다. 고전 그리스어에서 ‘레테Lethe’는 ‘망각’, ‘건망증’, ‘은폐’ 등을 의미한다. 레테는 또 망각의 여신이기도 하다. 레테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딸이며 카리테스(삼미신三美神으로 에우프로쉬네, 탈리아, 아글라이아)의 어머니였다. ‘망각의 강’으로서 레테는 지하세계에서 잠의 신 힙노스의 동굴을 통해 흘러나온다. 힙노스 동굴 입구는 양귀비와 같은 최면 식물이 가득하다고 한다. 동굴에는 한 줄기 빛도 미량의 소음도 없었다. 레테는 필사자들이 불멸과 행복의 삶을 살기 위해 보내진 낙원 엘레시움과 접해 있다. 하데스에 있는 다섯 개의 강은 모두 죽음과 관련이 있다. 망각의 강 레테Lethe 외에도 증오의 강 스틱스Styx, 고통의 강 아케론Acheron, 통곡의 강 코키토스Cocytus, 불의 강 플레게톤Phlegethon 등이 있다.
레테 강물을 마신 사람들은 이승에서의 기억을 망각하게 되고 레테의 물소리는 졸음을 유발했다. 죽은 자의 영혼이 내세로 넘어 갈 때 그들은 과거의 삶을 잊고 환생할 준비를 하기 위해 레테 강물을 마셔야 했다.
에르 신화(플라톤이 쓴 <국가>의 마무리 전설)는 전투에서 죽은 한 남자의 사후 세계와 레테 강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포함하고 있다. 전투 10일 후 시체를 수습할 때 에르Er의 시체만은 썩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에르는 전투에서 죽은 다른 많은 영혼들과 함께 사후 세계로 여행했고 네 개의 신비한 구멍이 있는 신비한 장소를 발견했다. 하나는 하늘로 들어갔다 나오는 구멍이었고 다른 하나는 땅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구멍이었다. 저승의 심판관들은 부도덕한 영혼은 아래로, 덕이 있는 영혼은 하늘로 보냈다. 에르가 심판관들에게 다가갔을 때 그들은 에르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하늘 구멍에서 나온 영혼들은 행복하고 고양된 광경과 느낌을 얘기했고 아래 구멍에서 나온 영혼들은 절망과 악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7일 후 에르는 다른 영혼들과 함께 백열 무지개가 하늘을 지배하는 곳으로 여행했다. 여기에서 그들은 순서를 기다렸다. 순서가 되었을 때 그들은 다음 생애를 선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에르는 그들이 모두 전생과 정반대의 생애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다. 즉 전생이 선한 영혼은 악한 삶을, 동물이었던 영혼은 인간의 삶을 선택했다.
거기에서 에르와 그 동료들은 레테의 강이 흐르고 있는 망각의 평원을 여행했다. 각각의 영혼들은 망각의 물을 마셔야 했다. 이 때 에르만이 각 영혼들이 물을 마시고 전생을 잊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떠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에르는 대지로 되돌아간 기억은 없었지만 장례 장작더미 위에 누워 깨어났고 내세를 통해 그의 모든 여행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레테의 강물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여행했던 영혼들과 달리 전생의 기억을 망각하지 않았다.
망각의 강 레테도 아이탈리데스Aethalides의 기억만은 빼앗지 못했다. 아이탈리데스는 헤르메스의 인간 아들로 아르고나우타이(아르고 원정대)의 전령으로 활동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뛰어난 기억력을 물려 받았다. 그는 망각의 강물을 마시고 에우포르보스, 헤르모티오스, 피로스, 피타고라스 등으로 환생했지만 여전히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망자들의 세계에 살지는 않았으며 짧은 기간 동안 인간들과 살다가 지하 세계로 다시 내려가곤 했다고 한다. 즉 아이탈리데스는 레테조차도 정복할 수 없는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신비 종교인 오르페우스교(오르페우스를 시조로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밀교)에도 비슷한 개념이 존재했다. 오르페우스교는 신화적인 시인이자 음악가인 오르페우스의 가르침과 노래에 기초한 밀교였다. 오르페우스교의 가르침은 또 하나의 중요한 강 므네모시네Mnemosyne(기억)를 소개했다. 추종자들은 그들이 내세로 들어갈 때 마실 두 개의 강을 선택할 수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 레테의 강물이 아닌 므네모시네의 강물을 마셨다. 오르페우스 신자들은 인간 영혼의 신성과 영혼이 죽음과 육체로의 재생의 끝없는 순환에 갇혀 있는 방법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은 스스로 전지전능한 존재가 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금욕적인 삶을 통해 환생을 끝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죽으면 사후 지침이 적힌 금박 판자와 함께 매장되었다.
레테의 강은 철학자들 뿐만 아니라 단테, 키츠, 바이런, 실비아 플라트, 스테판 킹 등 시인이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과 포루투갈 사이에 있는 리미아 강은 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전설에 따라 레테의 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 전설은 기원전 138년까지 지속되었다. 로마 장군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알비누스(Decimus Junius Brutus Albinus, BC 81년~BC 43년)는 승리를 위한 전쟁을 벌였고 지역 신화가 그의 승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는 리미아 강을 건넌 후 병사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전설의 허구성을 증명했다고 한다. 스페인의 또 다른 강인 과달레테 강도 원래 그리스와 페니키아 출신의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레테의 강으로 불렸다. 양측은 전쟁 대신 이 강을 레테의 강으로 명명하고 이전의 전투를 잊음으로써 평화조약을 맺었다. 나중에 아랍인들이 이 지역을 정복했을 때 과달레테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달레테는 아랍어로 ‘레테의 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죽음과 환생의 신비를 해독하는 것은 고대 철학자들의 사유 주제였으며 많은 종교 교리의 기초를 형성했다. 레테(망각)의 강물을 마시지 않음으로써 영혼은 죽음, 망각, 환생의 순환에서 구원받을 수 있으며 종교적 각성 상태가 실현된다. 그러나 백지상태를 갈망하고 달콤한 무지의 길을 계속 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레테의 강은 기꺼이 기다림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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