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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베트남

추동투가 아버지를 위해 모래 속에 몸을 숨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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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베트남의 축제 시즌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 신을 달래는 축제에 참가한다. 추동투 축제도 마찬가지다. 추동투Chu Dong Tu는 베트남 민속의 4대 불멸의 신들(손틴, 탄지옹, 추동투, 리에우 한)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추동투는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추동투와 그의 아버지는 단 한 개의 허리천 옷만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죽었을 때 추동투는 알몸으로 아버지를 묻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늪지에 아버지를 묻었다.

 

 

오래 전 반랑국(Van Lang,文郞, 베트남 건국신화에서 기원전 2,879년 훙 브엉이 건국한 베트남 최초의 국가)에 훙 브엉 18세이라는 왕이 살았다. 그의 딸 티엔둥Tien Dung은 자연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아버지 왕국의 수많은 경이로운 곳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티엔둥은 하인과 무사들을 데리고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 나섰다. 그들의 여정은 다트라크라는 마을에서 잠시 멈췄다. 공주는 목욕이 하고 싶었고 하녀들이 바닷가에 천막을 세웠다. 그렇게 몸을 씻던 공주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다. 공주가 자신의 몸에 물을 붓자 흘러내린 물이 모래를 씻어내면서 발 밑에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청년이 드러난 것이다. 이 청년이 바로 추동투였다.

 

추동투의 모습에 깜짝 놀란 티엔둥은 재빨리 자신의 몸을 가리고 용서를 구하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추동투는 죽은 아버지에게 옷을 입혀 주기 위해 단벌인 자신의 옷을 사용했고 알몸인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나 바다의 물고기들이 볼까 두려워 하고 있을 때 공주 일행이 오는 바람에 모래 속에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추동투의 딱한 사연을 들은 공주는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공주는 이미 추동투에게 마음을 뺏긴 후였다. 티엔둥은 하녀와 무사들을 시켜 추동투에게 옷을 입혔고 결혼식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티엔둥은 남편과 함께 이 마을에 정착했고 이웃 마을들과의 무역을 통해 생계를 꾸려 나갔다. 추동투와 티엔둥의 사업은 번성했고 덩달아 마을까지 유명해졌다. 이웃 국가들의 상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젊은 부부를 찾았다고 한다.

 

추동투와 티엔둥이 유명해진 것은 단순히 많은 부를 쌓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주는 마음 사람들에게 벼농사를 가르쳤고 약초를 이용해 마을 사람들의 질병을 고쳤다. 이런 공덕 때문에 부부가 죽은 후 마을 사람들은 신전을 지어 추모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추모 행사는 매년 2월 10일로 정례화되었다.

 

축제를 위해 참가자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다트라크와 다호아의 두 신전에 모여든다. 개막식이 끝나면 추동투의 전설과 삶을 형상화한 행렬이 이어진다. 이 행렬을 이끄는 것은 북 리듬에 맞춰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운전하는 풍성하게 장식된 두 마리의 용이다. 참가자들은 수십 대의 배에 앉아 강 한가운데로 노를 저으며 단지에 물을 담아 나중에 신전에 바친다. 이 축제 기간에는 다양한 운동 경기와 전통 춤 공연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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