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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세계명작단편소설

일회성 분노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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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뉴엔 녹 투안(Nguyen Ngoc Thuan, 1972~, 베트남)

 

작년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는 입주민의 폭언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 오던 70대 경비원이 분신 자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세상이 온통 떠들썩했다. 때마침 터져나온 '갑의 횡포'와 맞물려 그동안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원은 현직에서 은퇴한 고령으로 한 명의 노동자이자 이웃이고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가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잠을 설치며 하루 12시간 노동한 댓가는 고작 8~90만원으로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일 년도 지나지 않은 그저 해만 넘긴 것 뿐인데 지금 경비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은 정치도 언론도 관심 밖의 일이 되고 말았다. 비단 경비 노동자 문제뿐일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쉽게 끓어 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데 익숙해 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조종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점을 지키던 소년 경비원이 도둑과 맞서 싸우다 죽었다. 하지만 '오늘, 상점 앞에는 공석 중인 경비원 일자리를 알리는 쪽지 한 장이 달랑 매달려 있었다.' 세상은 소년 경비원의 죽음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저 새로운 상점 경비원이 필요할 뿐이다. 죽음이 이리도 허망할 수 있단 말인가! 소년 경비원은 인간을 믿었고 세상을 믿었건만 이 세계와 현실에게 소년은 잠깐 스쳐 지나간 먼지에 불과했던 것일까?

 

▲사진>구글 검색 

 

그러나 나는 소년과 내가 희망 없는 게임에 갇혀 있다고 가끔 생각했다.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우리는 텅 빈 건물이나 내부의 쥐, 또는 상점에 있는 상품의 유령을 지키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지킬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모순되는 법의 가장자리를 가볍게 날아다니는 무의미한 먼지에 불과하다. -<경비원> 중에서-

 

뉴엔 녹 투안의 소설 <경비원>에서 저자가 설정한 세상의 진짜 모습은 모기와 쥐만 사는 텅빈 상점이다. 상점 사장이 소년 경비원을 둔 것도 상점에 물건이 가득하다고 사람들을 믿게 만들려는 책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인간을 믿었고 누구보다 성실했고 책임감이 강했다. 마치 텅빈 상점에 보석이라도 가득 쌓여있는 것처럼 경비원으로서의 역할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다. 그렇다. 소년은 믿었을 것이다. 열심히 살면 성공하고, 땀을 흘리면 그만큼의 댓가를 받게 해 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하지만 어디 그런가. 열심히 살아도 좌절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땀의 댓가는 커녕 모욕과 멸시와 가난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현실 세계의 민낯이다. 그래서 저자는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모기와 쥐만 사는 텅빈 상점'과 '그 상점을 지키는 소년 경비원'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나처럼 운전사가 된다는 것은 도로 바닥에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다. 그처럼 경비원이 된다는 것은 무의미한 순찰에 자신을, 그리고 쥐와 모기만 사는 건물에 에너지와 청춘을 낭비하는 것이다. -<경비원> 중에서-

 

화자인 '나'와 소년 경비원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장기 게임을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사람이 장기 게임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는 상점을 노린 도둑이었다. 장기를 두는 동안 인간을 철저하게 믿었던 소년은 무장해제되었고 급기야 상점의 갖가지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급기야 도둑은 상점에 잠입했고 소년은 도둑과 사투를 벌이다 끝내 목숨을 잃고 만다. 텅빈 상점을 두고 긴박하게 벌어지는 이 사건을 두고 처음에는 실소가 터져나오지만 부조리한 세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에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소년의 죽음과 상관없이 상점 밖에는 다음 날 이런 쪽지가 붙었을 것이다.

 

"경비원 구함"

 

그러나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점차 이런 사건들 속에서 훨씬 더 큰 무의미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상점은 모기들로 가득했을 뿐이었고, 소년은 쥐들을 보호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왔던 것이었다. 비극이었다. 텅 빈 상점을 턴 사람과 텅 빈 공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소년. 상점에 겁먹은 쥐들만 넘쳐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경비원> 중에서-

 

벌써 일 년이다. 일 년 전 우리는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고 있었다. 그 배 안에는 수 백 명의 승객들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제대로 손 한 번 내밀지 못했고 그들은 차가운 물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비극이었다. 성장에만 몰두해 온 대한민국의 처참한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대통령은 사죄하는 듯 눈물을 흘렸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게 철저한 진상 규명과 대책을 약속했다. 벌써 일 년. 대통령이, 국가가 흘린 눈물은 악어의 그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국가는 국민과 유가족을 이간질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국가의 이간질이 성공했는지 사람들의 분노도 일 년 전만 못하다. 어쩌면 망각의 유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노하지 않으면 또 일 년 후에도 그리고 또 일 년 후에도 아니 영원히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회성 분노로는 절대 부조리와 모순으로 점철된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 모순과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 국민은 소년 경비원처럼 쥐와 모기만 가득한 '텅빈 상점'을 목숨을 바쳐 지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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