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콜롬비아, 1927~2014)/1955년
문학 용어 중에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라는 말이 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법칙이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를 의미한다. 즉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은 그런 상황을 아무런 의심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원래는 사실 표현을 뒤엎는 화가들을 일컬어 쓰던 용어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용어가 된 데는 196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로잘레스(Miguel Ángel Asturias Rosales, 1899~1974, 과테말라)가 자신의 소설들이 마술적 사실주의 양식을 사용한다고 말한 게 계기가 되었다. 특히 마술적 사실주의는 억압적이고 권위주의가 창궐한 사회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표현을 순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펠라요는 정오의 햇살이 너무 뜨거워 게들을 바닷물 속으로 던져 넣기가 무섭게 얼른 집으로 돌아와 버린 터라 자기 집 마당 한가운데서 뭔가가 꼬물거리며 힘겨운 소리를 토해 내는 걸 보고도 확인하는 것조차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바싹 다가가 그것이 무엇인지 볼 수밖에 없었다. 실체는 진흙탕 속에 코를 박고 누워 있는 나이 많은 노인이었다. 노인은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기를 썼지만 거대한 날개 때문에 도무지 일어서지 못했다. -<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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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95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은 마술적 사실주의를 표방한 마르케스 문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이나 부모의 말을 거역해 거미가 되었다는 여인의 등장은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현상이지만 등장인물 누구도 의심의 눈초리는커녕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며 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의 정체는 무엇이며 저자는 이런 마술적 사실주의 표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을 읽다보면 인간은 본디 슬픈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날개 잃은 천사도 아니고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노인의 운명에 감정이입 되는 순간 슬픈 인간의 자화상을 보는 듯 짠한 마음이 앞선다. 다 해진 옷에 머리털 한 올 남아있지 않고 이도 거의 빠졌으며 깃털도 듬성듬성 빠져 있는 날개마젇 온통 진흙투성이였으니 상상 속의 천사를 떠올리면 날개만 있다고 해서 천사라고 부르기에도 초라하기 그지 없다. 문득 그리스 신화의 달이달로스가 떠오른다. 인간 세상에 볼품없이 내려온 노인이나 자기가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비상하던 아들 이카루스가 태양의 열기에 날개를 잃고 바다로 추락해 버린 운명이 말이다. 그래도 명색이 천사인데 볼품없는 노인에게도 초자연적인 면이 하나쯤은 있지 않았을까?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몸짓이 분노 때문이 아니라 고통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 이후로 사람들은 천사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천사가 수동성을 드러내는 건 은둔해 버린 영웅의 수동성이 아니라 대변혁이 일어나기 전 휴지기에 보이는 수동성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 중에서-
그것은 바로 인내심이었다. 펠라요와 엘리센다 부부는 경외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낄 수 없었던 노인을 닭장 속에 가두고 말았다. 결국 초라한 천사는 부부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말았다. 갖가지 고통에 시달리고 있던 사람들이 노인을 천사로 믿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은 닭장 속에서의 생활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묵묵히 참아내고 있었다. 억압과 탄압에 내몰린 인간을 버티게 하는 힘이 바로 볼품없는 노인천사가 보여준 인내일 것이다. 인고의 끝에는 늘 희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날개를 가진 노인을 진짜 천사로 아니 어떤 이해관계도 가지지 않고 바라본 유일한 사람은 펠라요와 엘리센다 부부의 어린 아이였다. 구경거리로 치면 노인을 압도해 버린 거미 여인이나 천사 노인, 아이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진솔함과 순수함일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그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에너지일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다닐 무렵 그동안 내린 햇빛과 비로 닭장이 무너지고 노인은 거의 빈사 상태에 빠지지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허접한 날개를 마구 퍼덕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혹독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롬비아의 카리브해 연안 작은 마을인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줄곧 할머니와 보냈다고 한다. 그때 들었던 고향의 민속과 설화, 기담 등을 훗날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독특한 소설 양식으로 승화시켰다고 한다. 교육의 본질이 무엇이고 왜 우리나라 아이들만 유독 스스로를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까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마르케스라는 작가를 알고서 얻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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