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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세계명작단편소설

관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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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노와 콜랭/볼테르(Voltaire, 1694~1778, 프랑스)

 

우리나라에서는 '싸롱'이라는 이름으로 다방이나 양주집, 접대부가 있는 술집 정도로 위상이 낮아졌지만 원래 '살롱Salon' 문화는 프랑스 문화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살롱 문화는 귀족 부인들이 자기 집에 문화계 명사들을 불러 문학이나 도덕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을 벌였던 풍습으로 고전주의 문학의 바탕이 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소통과 공론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에 따르면 18세기 살롱은 문예와 정치 비판의 중심지였으며 부르주아 공론장의 맹아였다.

 

하지만 살롱 문화도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는데 예술의 교류라는 미명 하에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즉 문화 교류와 소통의 공간이 아닌 껍데기 뿐인 인간관계로 형성된 이해타산적인 사회로 변질되었다. 더 이상 계몽사상의 전달 공간이 아니었다. 살롱에 출입하기 위해 귀족의 작위도 돈으로 사고파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살롱에는 더 이상 진솔한 지성인들의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볼테르의 소설 <자노와 콜랭>은 이런 살롱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소설이다.

 

▲18세기 살롱의 모습. 구글 검색 

 

어린 후작님은 심미안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후작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예술가들이 할 일입니다. 그래서 고귀한 사람은, 다시 말해서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결국은 그분들이야말로 마음대로 부리고 또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자노와 콜랭> 중에서-

 

자노와 콜랭은 요즘 말로 절친’, ‘베프였다. 하지만 자노가 갑자기 돈을 벌어 후작의 지위를 산 부모 덕분에 고향을 떠나 프랑스 사교계에 진출하면서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리고 만다. 여기서 말하는 프랑스 사교계가 살롱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에 졸부가 된 자노와 부모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결국에는 빈털터리가 되고 만다. 하지만 콜랭은 달랐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성실하게 일한 덕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특히 졸부가 되면서 우정을 저버린 자노와 달리 콜랭은 친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결국 자노는 콜랭의 누이동생과 결혼했고 자노의 가족들도 허영이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사실 요즘도 몰락했던 살롱 문화의 몰인간적인 관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현대인을 대표했던 고독이라든지 소외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정도로 다양한 방식의 소통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공간이 SNS가 아닐까 싶다. SNS 상에서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만났던 과거의 소통과 비교한다면 피상적이고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때로는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고독소외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소통의 부족이 반목과 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권위주의 시대의 일방적인 소통 구조가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들의 과거 향수를 이용한 권력자들의 이런 권위주의적 행태들은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항의하고 분노하는 소통마저도 막강한 권력과 권력 주변을 맴도는 언론에 의해 매도 당하고 차단 당하는 게 요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세월호 사고가 여전히 역사적 교훈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이런 소통 부재 탓이 아닐까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글자 그대로 인간적이어야 한다. 소통의 방식이 다양한 이름으로 진화하고 진보하더라도 인간적인 관계가 배제된다면 과거의 그림자 아래서 괜한 체력 소모만 있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제자리 걸음이 반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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