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문(Amun)은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신들 중 하나였다. 아문은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태초부터 존재했던 남녀 4쌍의 8주신 즉 오그도아드(Ogdoad, 눈과 나우네트, 헤흐와 헤헤트, 케크와 케케트, 아문과 아마우네트) 일원으로 눈(Nun)이라는 혼돈으로부터 우주를 창조한 신 중 하나였다. 그는 종종 붉은 타조 깃털로 만든 두 개의 큰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쓴 수염을 기른 남자로 묘사된다. 그는 한 손에는 앵크(Ankh, 윗부분이 고리 모양으로 된 십자가)를 들고 다른 손에는 홀을 들고 왕좌에 앉아 있었다.
▲이집트의 태양신 아문(Amun). 출처>구글 검색
아문의 이름은 바람과 대기의 보이지 않는 신으로써의 역할을 암시하는 ‘숨겨진 자’라는 의미의 아몬(Amon), 아모운(Amoun), 암몬(Ammon), 아문(Amoon), 아멘(Amen)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헤르모폴리스(Hermopolis, 헤르메스의 도시라는 뜻) 숭배에서 그의 배우자는 아마우네트(Amaunet)였다. 기독교에서 기도가 끝날 때 하는 ‘아멘’이라는 말도 고대 이집트의 신 아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의 인간적인 형태와는 별개로 그는 다른 여러 표현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문은 거위의 형태를 취해서 ‘위대한 수다쟁이’라는 별칭을 얻곤 했다. 그는 가끔 개구리나 뱀, 또는 코브라 머리를 가진 남자로 그려지기도 한다. 뱀으로써 아문은 피부를 벗겨냄으로써 자신을 재생시킬 수 있었다. 아문은 또한 숫양 머리를 가진 남자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단순히 숫양 그 자체로 묘사된다. 어느 시점에서 아문이 풍요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왕좌에 웅크리고 있는 사자로 묘사되기도 하며 원숭이 심지어 악어로 묘사되기도 한다. 2세기 중엽의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아문은 네 개의 팔과 딱정벌레의 몸통을 가지고 매의 날개와 사람의 다리, 사자의 발을 가진 남자로 묘사되기도 했다.
아문은 스스로 창조된 신이라고 한다. 그의 배우자는 처음에 우스레트(Wosret)였으나 나중에 아마우네트(Amaunet), 무트(Mut)와 결혼했다. 아문은 무트와의 사이에서 콘수(Khonsu)라는 달의 신을 낳았다. 그는 원래 테베에서 창조적인 힘으로써의 지역 신이었다. 그는 또 다른 테베의 지역 신이자 이집트 열한 번째 왕조의 전쟁 신 몬투(Montu)와 동일시되면서 유명해졌다. 이집트 중왕조(BC 2040 ~ BC1782) 시대 아문은 비로소 국가적 신의 반열에 올랐다. 이집트 파라오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의 이름에 걸맞는 신전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특히 룩소르와 카르나크 신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아문 숭배는 이집트를 넘어 이웃 국가에까지 퍼졌는데 특히 누비아에서 아문 숭배가 활발했다. 아문-라는 이집트 25 왕조 시대에는 지금의 수단에 해당하는 고대 왕국 쿠시(BC 8세기~BC 6세기)의 수도 나파타(Napata)의 주요 신이 되기도 했다. 나파타 사람들은 아문을 그들이 신성시 했던 산 제벨 바르칼(Gebel Barkal)과 동일시했다. 이 때까지 아문은 고대 그리스의 최고신 제우스에 버금가는 신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오페트(Opet) 페스티발 때는 아문과 무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아문 석상이 나일강을 가로질러 룩소르에서 카르나크까지 옮겨지기도 했다. 이 축제 기간 동안에는 아문의 생식 능력이 특히 강조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아문과 오시리스는 신들의 왕으로 언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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