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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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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자유, '봄봄'의 뒷이야기 만들기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유정의 『봄봄』/「조광」2호(1935.12)/창비사 펴냄 김유정표 해학과 익살을 대표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봄봄』을 꼽겠다. 맛깔스럽다.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유정이 당시 농민들이 사용하던 비속어와 강원도 사투리 등을 섞어가며 생생한 현장감을 더해주고 있는 소설이 『봄봄』이다. 소설 속 인물들간 갈등이 깊어갈수록 독자들의 입가에는 굵은 미소가 번져간다. 특히 머리 속에 그려지는 장면들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배꼽이 달아나도 모를 지경이 된다. 지나치게 웃다 보면 눈물이 난다. 어느덧 그 웃음은 즐거워서가 아니라 슬픔의 눈물로 변하여 간다. 김유정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위대한 까닭이다. 오늘은 그냥 웃어볼까 한다. 그 동안의 딱딱했던 교..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어'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논 이야기』/「협동」(1946.10)/창비사 펴냄 파출소 한 켠 긴 의자에는 늘 한 남자가 자고 있다. 넥타이는 반쯤 풀어져 있고 양복 윗도리는 의자에 걸쳐져 있으며 흰색 와이셔츠는 바지 밖으로 삐져나와 추레하기 짝이 없다. 신문지로 경찰서 아니 스튜디오의 환한 조명을 가리고 자고 있는 이 남자. 그도 평범한 늑대인지라 여우의 향기에 벌떡 일어나 방청객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낸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방청객들은 박수를 넘어 열광적인 환호로 이 술취한 남자의 등장을 맞이해 준다. 많은 논란 끝에 폐지되었던 KBS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서 박성광은 이렇게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방청객들과 시청자들은 묘한 카타르..
순수한 열일곱, 그들의 사랑이 슬픈 이유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유정의 『동백꽃』/「조광」7호(1936.5)/창비사 펴냄 김유정은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고골, 루쉰 등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짧은 생을 살다간 김유정이 왜 그토록 기층민중의 삶을 묘사하는 데 집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유정이 그려내는 소설들은 농민소설이라기보다 농촌소설에 가깝다. 김유정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농촌현실에 대한 냉혹한 비판보다는 그 농촌을 배경으로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의 순박한 삶이기 때문이다. 한편 유쾌한 해학이 곁들여진 김유정의 농촌에는 슬픔이 있다. 김유정의 소설은 잔잔한 미소, 때로는 박장대소 하고 읽다 보면 알 듯 모를 듯 식민지 농촌현실이 영화필름처럼 머리 속을 채우기 시작한다. 김유정표 해학이 주는 매력이다. 소설 『동..
도진개진 인생들의 도토리 키재기 [20세기 한국소설] 중 채만식의 『치숙』/「동아일보」(1938.3.7~14)/창비사 펴냄 ‘도진개진’이라는 말이 있다. 윷놀이에서 도가 나오나 개가 나오나 거기서 거기란 뜻일 게다. 표준어인지 사투리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 중 하나다. 한자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와 같은 말이다. 도토리가 제 아무리 크다 해도 재보면 다 고만고만하다는 뜻이다. 도진개진 인생들, 도토리들만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채만식의 『치숙(痴叔)』은 폼나는(?) 인생들이 너 잘났냐, 나 잘났다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채만식은 이들을 고만고만한 도토리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들이 채만식에게 밉보인 이유를 들어보자. 채만식의 풍자는 전방위적이다. 『치숙』에서는 등장인물 모두가 풍자의 대상이 된다. 등장인..
콩밭에서 로또대박을 꿈꾸는 사람들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개벽」속간 4호(1935.3)/창비사 펴냄 올 설은 어느 때보다 시장 바구니가 가벼웠다. 치솟는 물가, 쥐꼬리만큼 티도 안나게 부푼 월급봉투, 생색만 낸 최저임금. 경기회복을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는 정부의 장밋빛 발표와는 달리 서민들 생활은 날이 갈수록 팍팍해져만 간다.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민심이 무섭다느니, 민심이 천심이라느니 입에 발린 소리가 난무하고 있다. 어디에도 진정성 있는 자기반성은 없다. 희망을 잃은 서민들, 도대체 서민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지나온 터널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마주치는 건 또 다른 터널뿐이다. 팍팍한 삶의 대안은 대박뿐이다. 여기저기 대박을 쫓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대박을 쫓다 지치면 쪽박인 것을 여기까지 생각..
'레디메이드 인생'으로 본 청년실업의 진실 레디메이드 인생/채만식/1934년 청년실업이 날로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도 언론도 취업시즌에만 반짝 관심을 가질 뿐 강 건너 불구경이다. 200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 인구 중 비경제활동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56%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청년 고용률은 외환위기 당시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하는데도 진지한 공론의 장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의 눈높이를 낮추라느니, 중소기업에는 아직도 인력이 모자란다느니 하는 청년실업대책과 이를 받아쓰기에 급급한 언론의 태도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저렇게 취직만 하려고 애를 쓸게 아니야. 도회지에서 월급 생활을 하려고 할 것만이..
나는 평양석공조합 대표 박창호다 [20세기 한국소설] 중 송영의 『석공조합 대표』/「문예시대」2호(1927.1)/창비사 펴냄 현정부 초기 한국노동연구원 박기성 원장이 헌법에서 노동3권을 빼야 한다고 밝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합리적인 노동정책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책연구기관의 수장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망언이었다. 본인의 소신이었던지 아니면 집권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과욕이었던지 노동자를 바라보는 천박함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노동자의 권리이기 전에 약자가 강자에 대항하기 위한 아니면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다. 그나마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노동자를 바라보는 천박함은 비단 국책연구..
아내는 왜 밥그릇 뚜껑을 열어보았을까?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익상의 『어촌』/「생장」3호(1925.3)/창비사 펴냄 꽃 한 송이 피워 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 줄 지구도 없고 노루 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 중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 신석정의 중 일부다. 20세기 한국소설을 얘기하려다 밑도 끝도 없이 신석정의 시는 왜 인용했을까? 낯선 이름, 소설가 이익상을소개하자니 마땅히 내세울 친숙한 이력이 없어서다. 소설 『어촌』의 작가 이익상은 신석정의 사촌매부다. 또한 이익상은 신석정을 시인으로 이끈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익상이 카프 발기인으로 참여한 데는 일본 유학 시절 접한 사회주의 사상 때문이었다.주로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던 이익상은 그의 소설 『어촌』, 『번뇌의 밤』, 『젊은 교사』, 『위협의 채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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