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김유정의 <동백꽃>에서 알싸한 그 냄새의 정체

반응형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

"그래!"

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누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중에서-

 

1936년 『조광』 5월호에 발표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산골을 배경으로 열일곱 살의 주인공 '나'와 점순이의 순박한 애정행각을 해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삶의 기반을 잃고 떠도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아마 국내에 발표된 소설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읽히고 있는 소설일 것이다. 한편 많은 독자들은 소설 <동백꽃>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노란 동백꽃'이란 표현 때문이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노란색의 동백꽃을 저자만 봤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잘못된 표기라고 치부하면 저자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 될 것이다. 범우사의 『책과 인생』11월호 '상식 바로잡기' 편에서 국어연구가 미승우는 농민과 고향을 발견하여 농민 의식과 농민 문학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고 했던 김유정을 위해서 우리는 그가 말했던 '동백꽃'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부터 소설 <동백꽃> 속 '노란 동백꽃'의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의 정체를 밝혀보고자 한다.

 

 

표준어로써 동백꽃은 늦겨울에 빨갛게 꽃이 피는 활엽상록수다

 

표준어로써 동백꽃은 대중가요에서도 나오 듯이 대개는 중부 이남의 바닷가나 섬에 자생하는 식물로 한자로는 冬柏 또는 冬栢이라고 쓴다. 옛날에는 棟栢이라고도 썼다. 늦겨울에 붉게 꽃이 피는 활엽상록수로 식물학적 명칭은 '동백나무'이고 그 동백나무의 꽃이 '동백꽃'이다. 필자가 어릴 적 살던 남쪽 섬에도 물이 빠지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작은 무인도에 겨울 끝자락이면 빨간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곤 했었다. 그 중에서 키 작은 놈으로 뽑아다 마당에 심는 것으로 지나가는 겨울의 아쉬움을 달랬고 다가오는 새 봄을 준비하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아열대성 식물인 동백나무는 대개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섬에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늦겨울이면 대표적인 관광코스가 되기도 한다. 동백나무 숲으로 유명한 곳은 여수 앞바다 오동도가 있으며 지리산 화엄사 경내에 있는 동백나무 숲은 내륙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큰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난류의 영향으로 서해안에도 동백나무가 분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동해에서는 울릉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36˚선 이남에 분포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동백꽃 씨로 기름을 짜서 여자들의 머릿기름이나 등잔용 기름으로 이용하기도 했고 한방에서는 약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동백꽃은 겨울에 피기 때문에 벌이나 나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동백꽃은 동박새의 도움으로 꽃가루받이를 하는 조매화(鳥媒花)다. 벌이나 나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충매화(蟲媒花)의 꽃들과 달리 곤충을 유인할 필요가 없는 동백꽃은 소설 속 묘사와 달리 그렇게 진한 향기를 풍기지는 않는다. 특히 작가 김유정이 강원도 춘천 출생으로 동백꽃을 흔하게 볼 수없었다는 점에서 '노란 동백꽃'의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는 더욱 더 궁금증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생강나무'다

 

김유정의 소설들이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이유는 삶의 체험을 그대로 문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이라. 실제로 소설 <동백꽃>의 배경이 된 김유정 문학촌 생가 맞은 편 산에는 봄이 되면 빨간색이 아닌 '노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김유정의 '노란 동백꽃'은 '생강나무'를 이르는 강원도 지역 사투리다. 즉 김유정의 '동백꽃'은 '생강나무'의 노란 꽃을 말한다. 소설 속 '동백꽃'의 표준어인 생강나무는 봄에 피는 산꽃 중에서 가장 먼저 핀다고 해서 영춘화(迎春花)라고도 부른다.

 

생강나무의 사투리에는 새양나무, 아구사리, 생나무, 황매목 등이 있는데 특히 황매목(黃梅木)은 글자 그대로 '노란 매화나무'라는 뜻으로 생강나무의 생김새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강나무는 이른 봄이 되면 노란 꽃술이 한데 몰려 피며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생강나무를 '개동백꽃'이라고도 하는데 동백기름이 귀했던 옛날에 동백나무가 없는 내륙 지방에서는 생강나무 씨로 기름을 짜서 머리에 발랐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드디어 소설 <동백꽃> 속 '노란 동백꽃'의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의 정체는 생강나무 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란 동백꽃'의 실체는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소설 중간에도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이 소복하니 깔리었다'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봐서 김유정은 자신이 살던 고향의 풍경을 소설 속에 그대로 옮겨놓았음을 알 수 있다. 미승우 교수는 노란 빛깔의 꽃잎 '요'를 깔고 전개되는 '실레' 마을의 정경은 '붉은 동백꽃'으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라며 소설 속 '노란 동백꽃'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생강나무 꽃을 보며 산수유나무 꽃과 헛갈릴지도 모르겠다.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아래 사진에서 보듯 생강나무 꽃과 달리 산수유나무 꽃은 꽃술이 한데 모여있는 밀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들은 생강나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필자도 어릴 적 생강나무를 본 듯 한데 그 생강나무를 우리 동네에서는 어떻게 불렀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필자도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를 헛갈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강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검색해 봤다. 김유정이 순박한 처녀 총각의 사랑을 은밀하게(?) 생강나무 꽃으로 지켜주었다면 정우영 시인의 시 '생강나무'에서는 생명과 자연의 소중한 연대를 절실한 심정으로 그리고 있다.

 

마흔여섯 해 걸어다닌 나보다/한곳에 서 있는 저 여린 생강나무가/훨씬 더 많은 지구의 기억을/시간의 그늘 곳곳에 켜켜이 새겨둔다. 

홀연 어느 날 내 길 끊기듯/땅 위를 걸어 다니는 것들 모든 자취 사라져도/생강나무는 노란 털눈 뜨고/여전히 느린 시간 걷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소설 속 '동백꽃(생강나무)'의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의 정체를 모르겠다면 김호진 시인의 '생강나무'를 읽어보면 좀 더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강나무 잎을 문지르면 생강냄새가 난다/이른 봄 산수유보다 한 뼘 먼저 꽃을 피운다/산수유보다 한 움큼 더 꽃피운다/지나가던 바람이 내 가슴을 문지른다/화근내 진동을 한다/지난 겨울 아궁이보다 한 겹 더 어두운/아니 한 길 더 깊은 그을음 냄새가 난다

 

요즘에는 사투리 경연대회니 하면서 사라져가는 방언들에 대한 복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잘못된 표준어 정책 때문에 아름다운 우리말, 방언을 업신여겨봤던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일 것이다. 표준어 정책이 국민통합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방언, 사투리에는 표준어가 담지 못하는 조상들 대에서 내려온 우리네 삶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다. 서민문화의 총체가 바로 방언은 아닐지...옛 문학들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김유정이 그린 당시 민초들의 애환은 결코 '붉은 동백꽃'으로는 표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란 동백꽃'이어야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것이 문화인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