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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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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우연히 상경하여 내 그림을 보시게 된 백부님께서는 “지금 이 필법을 계속 다듬어서 니 것으로 만들어라” 하시면서 칭찬해 주셨는데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어쩌면 끊어졌을지도 모를 당신의 필맥(筆脈)이 조카에게 대물림되는 순간을 만끽하듯 흡족한 미소를 지우며 한참을 보고 계셨다.

공모전에 입선한 뒤끝이라 그림이란 것이 별것 아니구나 하는 안이하고 건방진 생각이 한동안 나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이렇게 미련하고 어리석은 착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천방지축 날뛰는 젊음 때문 이었을 것이다. -목포시민신문, 2012년 11월5일 인터넷 기사 중에서-

 

경험이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아가는데 소중한 삶의 지혜를 제공해준다. 경험은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자신을 내보이는 대표 가치가 되기도 하며, 상대를 평가하는 기초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여행을 하고, 책을 읽는 것도 이런 제한된 직접경험을 벌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내면의 나를 살찌우는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경험이 항상 긍정적인 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변절한 사람들은 자신의 오랜 경험으로 현재의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타인을 비난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하니 말이다. 반면 경험의 부재나 부족은 독단과 독선과 아집, 자기도취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다양한 경험만큼이나 그에 걸맞는 인격수양이 수반되지 않으면 경험은 아니 하니만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위 기사에서 보듯 이 속담은 경험이 적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멋도 모르고 함부로 덤비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속담으로 '미련한 송아지 백정을 모른다', '자가사리 용을 건드린다' 등이 있는 것처럼 정말 미천한 경험으로 세상을 다 아는 체 하는 사람의 행동을 빈정댈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자주 사용하면서도 이 속담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니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직 눈도 뜨지 못했을 '오늘 태어난 강아지'가 범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알 것이며, 그런 '하룻강아지'를 '경험이 미천한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비유한다는 게 지나친 비약이나 과장은 아닐까?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진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하룻강아지'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속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에서 '하룻강아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었던 '오늘 태어난 강아지', '갓 태어난 강아지'가 아니다. 옛 사람들이 지칭했던 '하룻강아지'는 본래 '하릅강아지'였다. '하릅'이 어떤 이유에선지 '하룻'으로 변해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은 속담이 돼버린 것이다. 즉 '하룻강아지'는 '하루'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이다. '하릅'과 '강아지'를 연결하다보니 보다 발음하기 쉽게 하기 위해 '하룻'이 된 것이다. 아니면 속담이 내려오는 과정에서 '릅'을 '룻'으로 잘못 들어 전달되었을 수도 있고.

 

'하릅'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가 '사회적 경험이 적고 얕은 지식을 가진 사람을 빈정댈 때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하릅'은 소나 말, 개 따위의 한 살된 것을 뜻하는 말이다. '하릅강아지'는 오늘 태어난 강아지'가 아니라 '한 살된 강아지'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한 살된 강아지라면 제법 짖기도 하고 까불기도 하므로 속담거리가 될 만도 하다. 그래서 '하룻강아지'는 사람으로 치면 아직 철이 덜 든 나이일 수도 있고, 경험이 미천한 사람을 빗댄 말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한 살, 두 살로 표현한 사람의 나이 대신 개나 소, 말 등의 가축 나이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아래 표에서 보듯 가축의 나이는 사람의 나이와 구별해서 '한 살'은 '하릅'으로 '두 살'은 '이듭', '세 살'은 '사릅', '네 살'은 '나릅' 등으로 불렀다. 나름 언어에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가축의 나이 표현법에서 특별한 규칙을 하나 발견했을지도 모르겠다. 날짜를 세는 순 우리말인 '하루, 이틀, 사흘, 나흘……여드레, 아흐레……' 등의 첫음과 같다는 것. 우리 조상들의 우리말 표현이 이리도 다양하고 아름다웠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가축의 나이를 표현할 때 표준어와는 다르게 소와 말을 구별해 사용했다는 점이 이채롭다. 같은 '한 살'인데도 소는 '금승쇠', 말은 '금승마'라고 불렀다고 하니 역시 말(마)이 많은 제주도만의 독특한 문화의 일면을 보는 듯 하다. 특이한 점은 소의 나이를 부를 때는 '금승쇠'를 제외하고는 날짜를 셀 때 쓰는 어근과 동일한 규칙을 보이는데 말은 숫자를 셀 때 쓰는 어근의 규칙성이 보인다는 것이다. 금승마, 이수매, 삼수매, 사수매……구수매, 십수매.

 

그렇다면 국어사전에도 이런 말들이 다 수록되어 있을까. 필자가 가지고 있는 1989년에 발행된 <동아 새국어 사전>을 뒤져보니 안타깝게도 몇 가지 말밖에 찾을 수 없었다. 속담 탓인지 '하릅'만이 '하릅(개·말·소 따위 가축의) 한 살 됨을 이르는 말'이라고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제주 방언은 말할 필요도 없고 당장 '두릅'만 해도 식물 이름으로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언어의 가장 큰 특징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생성과 소멸이 무한 반복되다는 것이겠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고 복원하는 것도 보다 풍성한 언어생활을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에서 '하룻강아지'는 '오늘 태어난 강아지'가 아니라 '한 살 된 강아지'로 '경험이 적어 일에 서투른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이다. 오랫만에 사전을 뒤지다보니 비유나 표현이 비슷한 속담이 있어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하룻망아지 서울 다녀오듯'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엇을 보거나 함'을 이르는 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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