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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아리송한 창조경제, 기본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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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박근혜 정부 첫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교육부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대학의 역할을 정립하고 구조개혁 및 지방대학, 전문대학 육성 등 주요 대학정책 방안 마련을 위한 민관 전문가로 대학발전기획단을 구성·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고용노동부 장관은 '창조경제로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방사청장도 '방위산업과 창조경제 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통령을 비롯해 각 부 장관은 물론 장관 후보자들까지 기계적으로 외치는 말이 바로 '창조경제'다. 작년 대통령 선거 당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처음 주장하면서 시작된 '창조경제'는 새정부 출범 한 달이 갓 넘었지만 어느덧 익숙한 경제용어가 되었다. 

 

문제는 귀에 낯설지 않다고 해서 이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창조경제가 도대체 뭐냐?'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후보자들이 진땀을 빼는 장면만 보일 뿐 누구 하나 명쾌하게 '창조경제'의 개념을 설명하지 못했다. 청와대 수석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어제 열린 당·정·청 회동에서는 '창조경제'의 개념이 너무도 추상적이라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한대도 집권당 사무총장은 최근의 '창조경제' 논란을 '새정부 흠집내기'로 규정했다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최초 입안자와 '창조경제'를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한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어 보인다.

 

 

전문가들도 설왕설래하는 '창조경제'의 개념을 일개 책쟁이가 불쑥 들고 나오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오게 생겼다. 새정부가 야심차게 구상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추천된 후보마저도 '창조경제'의 개념을 제대로 설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도덕 검증에 지레 겁을 먹고 사퇴한 마당에 말이다. 경제 문외한이 어느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창조경제'를 주제로 어설픈 글을 쓰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실체를 찾기 전에 '창조'의 개념을 이해하고 기본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신화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창조'라는 말이 그리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화의 첫 장은 늘 '창조'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이 주인공인 신화의 세계에서 '세계창조'니 '인간창조'니 하는 것들은 신들에게만 부여된 막강한 권위이자 신만이 누릴 수 있는 능력이자 특권이다. 신화 속에서 신들은 그 지역의 탄생과 발전의 주체자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 권력자의 무한권력에 대한 욕망이 내재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화 속 신들의 활동은 인류가 걸어온 길에 대한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신화 속에 늘 등장하는 '창조'란 어떤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창조'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인류의 조상들은 '창조'의 개념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세계 어느 곳에 존재한 신화 중에 '무無에서 유有로의 '창조'는 없기 때문이다. 신들도 이 세상과 함께 출현했고 신들의 활동도 이 세상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존재한 세상이지만 신화에서는 '창조'란 표현을 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신화에서 '창조'란 '무질서한 세상의 재구성 내지는 질서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신화에서 말하는 카오스(Chaos)는 '창조' 이전의 세상을 말한다. 이 말은 신들의 '창조' 활동 전에도 세상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다만 하늘과 땅이, 바다와 육지가 구분되지 않은 혼란한 상태였을 뿐이다. '창조'란 이 혼란스런 상황을 수습해서 질서을 부여하고 신과 인간이 평온하게 공존할 수 있는 정치적 안정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창조'의 기본은 '혼란한 상황을 수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창한 '창조'의 개념을 너무 폄하했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기본 체력이 다져진 후에 경주를 해도 이길 수 있는 법이다.

 

'창조경제가 도대체 뭐냐?'는 논란 속에 박근혜 정부는 역대 최저 지지율로 곤두박질 하면서 출범하고 말았다. 그깟 지지율이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권 초기 강력한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막강한 지지율이 그 동력이 되는 법인데 현 정부는 자칫 제대로 일도 못해보고 좌초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이 대통령의 인사 난맥상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일테고. 정권 초기 반대편에 섰던 국민들을 껴안아 대통합을 이루어야 하고 대선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었던 혼란을 수습해야 하는 마당에 수준 미달의 장관 후보자들을 추천해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으니 '창조경제'를 논하기 전에 신화 속 '창조'의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대통령의 인사 실패를 비서실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작성하고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하는 것은 코미디라기보다 대국민 모독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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