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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고향에는 슬픈 신작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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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고향>/1926년

 

우리네 길은 꼬불꼬불 지루함이 없다. 굽이돌아 해가 드는 모퉁이에는 느티나무를 그늘삼은 큼직한 돌멩이가 있어 나그네의 쉼터가 되었다. 불쑥 튀어나온 어릴 적 벗이 더없이 반가웠다. 모퉁이를 돌아 마주친 낯선 이와도 엷은 미소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런 길이 어느 날 논을 가로지른 아지랑이 너머로 끝이 가물가물한 지루한 길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길을 신작로라 불렀다.

 

누구나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고향에는 신작로 하나쯤은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신작로를 60,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생겨난 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신작로는 그 이전부터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수탈한 식량을 원활하고 신속하게 운송하기 위해 우리네 꼬불꼬불했던 길을 쭉 잡아 늘어뜨린 길이 신작로였다. 신작로에는 지루하게 펼쳐진 길이만큼이나 긴 아픈 역사가 묻어있다.

 

그동안 현진건의 신변소설만 읽어왔던 독자들에게 소설 『고향』은 기막힌 반전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고향이 주는 포근함은 어느새 피를 끓게 하는 단어가 되고 만다. 더더욱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것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으로 더 이상 찾아갈 고향이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현진건은 어머니의 또 다른 이름, 고향을 통해 무엇을 고발하고자 했을까?

 

먼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해 알아보자.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최고 식민통치기관이었다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조선의 토지를 수탈하기 위해 설립된 일본의 국책회사였다. 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은 조선 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수많은 조선의 토지를 매입하게 된다. 동척은 조선 소작인들에게 5할이나 되는 소작료를 받아내고 춘궁기에는 2할이 넘는 이자를 받아 그야말로 조선 농민들을 나락으로 빠지게 하는 괴물이었다. 결국 조선 농민들이 마지못해 선택한 곳이 만주와 연해주였다. 지금도 몇몇 항구도시에는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이 남아있어 아픈 역사를 기억해 내고 있다.
 

 

 

작가 현진건은 이런 시대적 아픔을 두고 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당시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그 설움보다도 더 크게 추락해 가는 조선민중의 피폐한 실상을 『고향』이라는 짧은 소설 속에 담아내고 있다. 그는 관찰자 입장에서 일제의 수탈로 참혹해져만 가는 조선민중들의 삶을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울행 기차에서 만난 30대로 보이는 사내(사실은 스물 넷이었다)도꼬마데 오이데 데쓰까(어디까지 가십니까)?”, “네쌍 나을취(어디까지 가십니까)?”하며 오지랖 넓게 일본인이며 중국인이게 연신 말을 걸어댄다. 사내의 옷입은 모양새가 은근히 슬픔을 자아낸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선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고향』 중에서-

 

사내의 오지랖에 말을 섞게 된 나는 그가 고향을 떠나 서울행 기차를 탄 사연을 듣게 된다. 사내는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가는 중이다. 사내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넉넉하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사내는 세상이 바뀌자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땅을 빼앗기고 소작인 신세가 되었단다. 동척에 바친 소작료도 모자라 중간 소작인이라는 것이 생겨나 사내에게 고향은 더 이상 사람사는 곳이 못되었다. 마지못해 선택한 간도 땅에서 사내는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잃었다.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어 중국과 일본을 떠돌아 다녔고 그새 사내는 방탕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찾은 고향은 더 이상 살 곳이 못되었다. 그가 없는 동안 동척과 지주의 수탈이 얼마나 심했던지 백 호가 넘던 집은 폐동이 되어 있었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놓은 것 같드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요? 백여 호 살든 동리가 십 년이 못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요? !” -『고향』 중에서-

 

사내의 눈물섞인 하소연을 들으며 나는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사내가 폐동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여인의 사연은 식민지 조선민중이 떨어질 수 있는 나락의 끝을 보여준다. 그 여인은 사내와 혼인말이 오갔으나 그 아비 되는 자가 이십원을 받고 대구 유곽에 팔아먹었단다. 어찌어찌하여 다시 고향 땅에서 마주친 그녀는 산 송장이 되어 있었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요? 그 숱 많든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드마. 눈은 폭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든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인 듯하드마.” -『고향』 중에서-

 

현진건은 사내의 말을 빌어 당시 조선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선이라는 설움의 나라를 사내가 떠나온 고향에 그대로 축소시켜 보여준다. 소설에서 나는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사내의 말만 듣고 있다. 당시 지식인이 겪었던 고뇌의 단면이다.

 

현진건은 1936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시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1년간 복역했던 적이 있다. 그가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한 작가는 아니었지만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일제의 강압에 허망하게 무릎을 꿇은 역사를 상기한다면 그의 소설들에서 보여준 식민지 조선의 생생한 기록들은 진정성을 갖고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하겠다.

 

고향,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리운 이름. 현진건이 그려냈던 고향이 외세의 침략으로 짓밟혔다면 지금의 고향은 어떠한가? 화려하게 변신중인 도시는 그 깊이로 고향의 추락을 보여주고 있다. 신작로를 대신해 운하가 기다리고 있다. 시원스런 신작로를 얻은 대신 황금빛 들녘을 내주었고 반듯한 뱃길을 뚫겠다며 푸르디푸른 야채밭을 내놓으라 하고 있다.

 

어느덧 고향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사내와 나는 기차 안에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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