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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설렁탕 한 그릇 못 먹고 떠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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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1924년

대학시절 학교와 자취집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늘 궁금하게 쳐다보던 안내표지판이 하나 있었다. 버스가 제기동을 지날 즘 언뜻언뜻 스치는 선농단’.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성격도 아닌 데 유독 선농단이 무엇인고 궁금했던 건 근처 식당을 한 번 들른 후였다. 무심히 설렁탕을 주문하고 차림표를 봤는데 설농탕만 있을 뿐 설렁탕은 없었다. 주인이 이르기를 같은 음식이라 했다. 그 집을 나오고 둘러보니 설농탕이라는 글자가 솔솔찮게 눈의 띄었다. 어째 선농단설농탕에는 깊은 인연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선농단은 조선 태조때부터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고대 중국인들에게 농사를 가르쳤다고 알려진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한다.이 때 임금은 손수 밭을 갈고 논에 모를 심는 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세종이 선농단에서 제를 지내고 있을 때 갑자기 비가 내려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소를 잡아 맹물에 넣고 끓여 먹었는데 이것이 설렁탕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설렁설렁 먹어 설렁탕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 유래만큼이나 가장 대표적인 서민음식이 설렁탕이다. 설렁탕만큼 서민들 애환이 담겨있는 음식이 있을까? 그러나 요즘에는 한 그릇 값이 2만원이 훌쩍 넘는 설렁탕도 있다니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서민들의 삶이 설렁탕 한 그릇에 그대로 녹아있는 듯 하다.


 

설렁탕 사다놓았는데 웨 먹지를 못하니, 웨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드니만…”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도 설렁탕은 서민을 상징하는 소재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설렁탕은 궁핍한 삶을 탈출해 보려는 주인공의 어렴풋한 희망이기도 하고 무뚝뚝한 사랑이기도 하다. 한편 서민들의 무너진 희망을 오롯이 담아내는 소재이기도 하다. 90년 전 설렁탕은 어땠을까 오늘날 설렁탕과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 하면서도 우리네 삶은 어제도 오늘도 늘 그 자리라는 현실이 소설의 감상을 더욱 짠하게 한다.

한국 사람치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1920년대 사실주의 소설의 대표작이라는 비평가들의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서민적인 소설이 『운수 좋은 날』인 것만은 틀림없다.

아픈 아내를 집에 남겨두고 삶의 현장으로 떠나야만 하는 인력거꾼 김첨지가 맞닥뜨린 것은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하필 비는 왜 추적추적 내렸을까? 그래서 더욱 애잔하고 슬프다. 집을 나설 때 들은 아내의 숨 모으는 소리가 일하는 내내 김첨지의 다리를 무겁게 한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그런 아내가 너무도 가여웠던지 양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망토까지 두른 여학생이 기생 퇴물처럼 보인다. 그래도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손님이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을 누구든 잡아주길 간절히 염원한다. 우연히 만난 친구 치삼이는 구세주다. 선술집에 들어선 김첨지는 연신 술만 마셔댄다. 다가올 불행을 애써 거부하려는 그의 주정이 안타까움을 더해 준다.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그러나 그는 돈을 원망한다. 아니 세상을 원망한다.

이 원수엣돈! 이 육시를 할 돈!”

마누라가 죽었다는 그의 술주정에는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지 못하겠다는 안쓰러운 의지가 담겨있다. 선술집을 나설 때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가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설렁탕 한 그릇 사는 것 뿐이었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이 먹고싶다 했다. 세상에 이보다 비싼 설렁탕이 있을쏘냐!

그 비싼(?) 설렁탕을 사왔건만 집에는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1920년대 현진건이 바라본 세상은 이러했다. 아내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냉혹한 현실로 내몰려야만 했고 육시를 할 돈이지만 돈의 노예가 되어야만 했다. 작가 현진건에게는 자본주의가 뿌려놓은 참담한 현실이 나라를 빼앗긴 설움만큼이나 강렬했던 것은 아닐까 
 

반어적으로 사용된 운수 좋은 날은 아내의 죽음 앞에서 비극적 현실을 극대화시켜 주는 작용을 한다. 작가 현진건은 주제의식을 뚜렷이 부각시키기 위해 이런 반어적 표현을 작품 전체에 두로 사용하고 있다. 인력거 수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운수가 좋으면 좋을수록 그가 감당해야 하는 기층 민중의 처절한 삶은 더욱 참혹하고 비통한 영상으로 다가온다.


1960
년대 설렁탕 가격은 80원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어림잡아도 5,000원 밑으로 팔리는 설렁탕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설렁탕을 파는 사람들에게 5,000원은 치솟는 물가에 비하면 팍팍한 가격이라고 한다. 어찌됐건 설렁탕 가격은 세월의 나이를 먹었다.
 

우리네 삶은 그나마 5000원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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