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서 자그레우스(Zagreus)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 지하세계, 사냥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이었다. 제우스와 페르세포네의 아들인 자그레우스는 오르페우스 전통에서 디오니소스의 첫 번째 화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이야기에서는 그를 하데스의 아들 심지어 하데스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자그레우스에 대한 가장 초기의 언급은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기원전 6세기의 그리스 서사시 <알크메오니스>였다. <알크메오니스>에서 자그레우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함께 모든 신들 중에서 가장 높은 존재였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그가 지하세계의 모든 신들 중 가장 높은 존재였다고 주장한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Aeschylus. 기원전 525년경~기원전 456년경)의 작품에서 자그레우스를 하데스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내용을 근거로 한 주장이다.
오르페우스 전통에서 자그레우스는 디오니소스와 동일시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제우스와 페르세포네의 자식인 자그레우스는 티탄족에게 죽임을 당하고 먹히게 되었지만 아테나가 그의 심장을 발견하고 제우스에게 가져왔다. 이 심장으로 자그레우스는 디오니소스로 환생할 수 있었다. 제우스는 티탄족의 배신에 대한 처벌로 벼락을 쳐서 그들을 파괴했고 그들의 재에서 인류가 태어났다. 따라서 오르페우스 신도들은 인류가 이중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하나는 티탄족에게서 물려받은 신체의 본성이고 다른 하나는 티탄족이 자그레우스의 일부를 섭취한 후 물려받은 영혼 또는 신성한 불꽃의 본성이었다. 오르페우스 전통의 핵심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속죄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거나 끝없는 환생의 저주를 받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교의 특성 즉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의 고통, 죽음, 부활 그리고 원죄에 대한 구원의 개념은 기독교와 같은 후기 종교의 특성을 떠올리게 한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는 자그레우스를 낳기 위해 뱀으로 변신해 페르세포네와 결합했다. 제우스는 자그레우스가 자신의 뒤를 이어 세상을 다스리도록 정해 놓았다. 제우스는 헤라의 질투를 대비해 어린 자그레우스를 파르나소스 숲의 아폴론과 쿠레테스에게 맡겼다. 그러나 헤라는 그를 찾아냈고 티타네스를 시켜 납치했다. 자그레우스는 다양한 변신술을 피해 그들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그가 황소의 모습으로 변신했을 때 티타네스는 그를 갈기갈기 찢어 일부는 날로 먹고 일부는 익혀서 먹었다. 아폴론은 남은 유해를 수습해 델포이의 삼각대 근처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또 다른 신화에서 제우스는 아들에게 생명을 돌려주기로 했고 데메테르가 유해를 모았다고도 하고 아테나가 가져다 준 자그레우스의 심장을 세멜레에게 먹여 디오니소스를 낳게 했다고도 하고 제우스 자신이 직접 아들의 심장을 먹고 세멜레와 결합해 디오니소스를 낳았다고도 한다.
디오니소스와의 연관성 외에 자그레우스에 대해 알려진 것은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그리스 문학의 조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확실히 유명했는데 전해지지 않는 그리스 서사시 <알크메오니스>에 ‘대지의 여신 그리고 모든 신들 중에 가장 높은 자그레우스’에게 기도하는 내용이 있다. 대지 모신과 함께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그레우스가 높은 평가를 받았고 매우 강력하다고 여겨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학자들은 모든 신들 중 가장 높은 존재 자그레우스는 그가 올림포스 산에서 가장 위대한 신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지하세계의 가장 위대한 신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알크메오니스>의 영웅인 알크마온이 대지의 권능에 그의 아버지의 영혼이 안전하게 하늘로 옮겨지는 것을 보라고 요청하는 기도의 맥락에서 알 수 있다. 지하세계의 신으로서의 자그레우스의 지위는 아이스킬로스가 쓴 두 작품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기원전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이스킬로스의 전해지지 않는 희곡 <시시포스>는 자그레우스를 하데스의 아들로 묘사했다. 전해지지 않는 또 다른 아이스킬로스의 희곡 <이집트인>은 자그레우스를 하데스 그 자체로 언급했다. 어느 쪽이든 자그레우스는 강력한 지하세계의 신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하’ 또는 ‘지하세계’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다. 어떤 학자는 디오니소스와 자그레우스의 연관성에 대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아들인 자그레우스의 개별 신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제우스와 페르세포네의 아들인 오르페우스교의 디오니소스 신화와 결합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그레우스와 디오니소스가 원래 별개의 신이었든 아니었든 두 신이 시간이 지나면서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필로스에서 디오니소스의 사제 이름으로 등장하는 사케레우(Sakereu)에 주목하는 학자도 있다. 사케레우가 자그레우스로 번역될 수 있으며 디오니소스의 사제가 잠재적으로 신의 이름을 따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그레우스를 디오니소스 숭배에서 발견되는 의례적 사냥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그리스어에서 자그레우스(Zagreus)라는 단어가 동물을 산 채로 잡는 사냥꾼을 의미한 반면 이오니아어에서는 자그레(Zagre)가 살아있는 동물을 잡는 구덩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사냥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크레타에서 디오니소스 종교가 두드러졌다는 점과 술의 신에게 자그레우스라는 이름이 부여된 곳이 바로 그곳일 수 있다는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지하세계의 신이 생물을 산 채로 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디오니소스 종교 의식에서 추종자들은 특정 동물들을 산 채로 찢고 날 것으로 먹는다고 한다. 광란 속에서 살아있는 생물을 절단하고 먹는 이 행위는 디오니소스적 맥락에서 스파라그모스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종종 디오니소스와 연관되며 특히 디오니소스의 취함에 의해 종종 살인적인 광란에 빠지는 마이나드(‘열광하는 자들’이라는 뜻)로 알려진 디오니소스교 여성 추종자 무리와 연결된다. 자그레우스도 티탄족에게 산 채로 절단된 뒤 먹혔다는 신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서 자그레우스의 살아있는 동물을 잡는 행위와 죽은 자의 영역과의 이중적 연관성이 서로 화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의 추종자들이 살아있는 동물을 먹는 경향 때문에 이 신은 나중에 ‘날로 먹는 자’라는 뜻의 ‘오메스테스’와 ‘오마디오스’와 같은 별칭을 갖게 되었다.
오르페우스교의 중심인 디오니소스로서의 자그레우스에 관한 탄생, 죽음, 부활 신화는 <디오니시아카>에 실려 있다. <디오니시아카>는 5세기경 그리스 시인 논노스가 쓴 디오니소스의 삶을 다룬 서사시이다. <디오니시아카>의 자그레우스 이야기는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가 용(또는 뱀)의 형상을 한 제우스에게 유혹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페르세포네의 어머니 데메테르는 이전 예언에서 초대받지 않은 구혼자에 대해 경고를 받았고 페르세포네를 동굴에 숨겼다. 그러나 용의 형태로 페르세포네에게 나타난 제우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우스와 페르세포네의 관계로 자그레우스가 태어났고 제우스는 아기를 신성한 이다 산으로 데려갔다. 제우스는 그의 갓 태어난 아들을 유달리 좋아했고 자그레우스가 결국 우주의 왕으로서 자신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물론 이는 헤라의 질투를 불러일으켰고 헤라는 아기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헤라는 올림포스 신들의 오랜 원수인 티탄족과 공모했는데 티탄족은 제우스가 권력에서 몰아낸 존재였다. 이 이야기의 일부 버전에서는 티탄족이 장난감으로 아기 자그레우스의 주의를 돌렸고 다른 버전에서는 티탄족이 자그레우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주의를 빼앗긴 사이에 그에게 다가갔다. 어쨌든 티탄족은 얼굴을 하얗게 분장한 후 자그레우스를 공격해 죽인 후 훼손하고 먹어 치웠다. 신화에 따라 티탄족이 자그레우스의 살을 가마솥에 끓였다고도 하고 불에 구웠다고도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티탄족은 자그레우스의 심장을 먹지 않았는데 아테나가 그것을 발견하고 그녀의 아버지 제우스에게 가져갔다. 제우스는 세멜레가 임신하기 직전에 자그레우스의 심장을 삼켰고 이로 인해 디오니소스가 태어났다. 티탄족은 제우스의 번개로 파괴되었고 급기야 재가 되었다. 이 재에서 인간이 태어났다고 한다. 이 탄생에서 인간은 이중적 본성을 부여받았다. 티탄족에서 생겨난 사악하고 죄악적인 경향이 있는 육체와 티탄족이 먹은 작은 신의 몸 조각에서 비롯된 순수하고 신성한 영혼이 그것이다. 티탄족에서 인간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논노스의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르페우스교는 적어도 기원전 6세기에 시작되었으며 헬레니즘 세계의 그리스인과 트라키아인들이 만든 전통이었다. 오르페우스교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디오니소스교의 후기 개혁의 일환로 탄생했다. 초기 디오니소스 숭배는 자연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문화적 억제와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자아를 해방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만 오르페우스교는 죽음 특히 영혼의 구원에 더 중점을 두었다. 죽음과 지하세계에 대한 이러한 연관성 때문에 오르페우스라는 이름이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돌아온 오르페우스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로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음악적 능력으로 유명한 시인이었다.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그의 노래 실력과 리라 연주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노래로 바위와 나무를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지하세계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게 물려 죽었을 때 슬픔에 잠긴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따라 지하세계로 들어가 그녀를 되찾아 오려고 했다. 그는 지하세계의 지배자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찾아가 기적적인 음악으로 그들을 움직였다. 하데스는 그가 지하세계에서 안전하게 나올 때까지 어떤 조건에서도 따라가는 그녀를 뒤돌아 보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에우리디케를 살아있는 사람들의 땅으로 데려가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지상 입구에 거의 도달했을 때 오르페우스는 너무도 궁금해서 따라오는 아내를 몰래 뒤돌아 보았고 에우리디케는 영원히 하데스의 영역으로 끌려갔다. 오르페우스는 나중에 디오니소스의 마이나데스에게 갈기갈기 찢겨져 죽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헤로도토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작가들조차 그의 존재를 의심했지만 오르페우스 전통에 따르면 디오니소스의 신비를 쓴 이는 바로 오르페우스 자신이었다고 한다. 이것들은 디오니소스 숭배와 관련된 의식으로 참가자들은 술이나 음악, 춤을 통해 일종의 무아지경 상태를 유도했다. 미입문자는 집회 참여가 금지되었고 입문자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신비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의식 자체는 와인과 거친 그리스 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며 참가자들은 자신 안에서 디오니소스 신을 찾고 그의 정신과 힘으로 채워지기를 바랐다. 숭배 자체와 마찬가지로 신비는 그리스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기원전 200년경 고대 로마에서 바카날리아라는 축제가 열렸다.
여기에서 오르페우스교가 나왔는데 이는 각 개인 안에서 디오니소스의 신성한 불꽃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티탄족의 원죄로 인해 발생한 끝없는 환생의 순환에서 그 불꽃 또는 영혼을 구하고자 했다. 금욕적이고 순수한 생활 방식과 다양한 정화 의식으로 영적 오염을 피함으로써 이를 달성할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 노력에 실패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입문하지 못했다면 그들의 영혼은 환생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영혼의 정화를 달성했다면 그들은 내세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운동 자체와 마찬가지로 내세에 대한 오르페우스교의 견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투리, 히포니움, 테살리아, 크레타의 무덤에서 발견된 일부 금박 문서에는 죽은 사람이 따라야 할 지침이 남아 있다. 이 지침은 새로 죽은 사람에게 지하세계로 가는 길에 마주칠 장애물에 대해 경고하며 특히 망각의 강인 레테에서 물을 마시지 말고 기억의 웅덩이인 므네모시네에서 물을 마시라고 경고한다. 이 판에는 지하세계의 신에게 어떤 말(이미 당신은 죽었고 오늘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오 행복한 자여. 페르세포네에게 바쿠스 신이 당신을 풀어주었다고 말하세요)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도 남긴다. 이러한 석판과 데르베니 파피루스(기원전 340년경에 기원전 5세기 후반의 원본을 발췌한 두루마리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필사본)의 고고학적 발견을 제외하면 오르페우스 신앙을 논하는 문헌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2세기 또는 3세기에 편찬된 <오르페우스 찬가>에서는 특히 자그레우스의 혈통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언급하고 있다.
자그레우스 신화에서 발견되는 오르페우스 신앙 특히 디오니소스의 탄생과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세부 사항은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서와 같이 다른 그리스 문학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다. 오르페우스교에서 발견되는 부활과 영혼의 구원이라는 개념과 기독교의 동일한 주제 사이의 개념의 결합은 일부 학자들이 자그레우스 신화 심지어 오르페우스 신앙 전체가 기독교화된 렌즈를 통해 그러한 신화를 되돌아보고 분석하는 현대적인 학자들에 의해 잘못 해석되었다고 믿게 만들었다. 이 믿음은 자그레우스의 죽음과 재생에 대한 가장 자세한 설명을 기록한 논노스가 오르페우스 신앙의 핵심 부분인 티탄의 재에서 인류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개념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신화의 이 필수적인 부분은 6세기 올림피오도로스(Olympiodorus the Younger. 비잔틴 제국의 플라톤 철학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이 논쟁은 신화를 직접적으로 다시 말하지는 않더라도 신화에 대한 암시를 하는 핀다로스, 플라톤, 크세노크라테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자그레우스는 또한 고대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와 유사하다. 자그레우스와 마찬가지로 오시리스는 질투하는 친척에게 살해당하고 다시 살아난 지하세계의 신이었다.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 신화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기원전 1세기경의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에서 나왔는데 그는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의 절단 사건을 와인 생산과 비교하는 우화적 해석을 내놓았다. 자그레우스나 그를 둘러싼 신화, 컬트, 종교 의식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다. 아이스킬로스가 암시한 대로 그가 원래 하데스의 아들이었는지 아니면 하데스 자신의 다른 이름이었는지 아니면 오르페우스 신앙에서 발견되는 디오니소스의 첫 번째 화신이었는지는 그를 언급한 초기 문헌의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디오니소스와 오르페우스 의식이 비밀에 부쳐져 있기 때문에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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