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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나비'와 '영혼'의 고대 그리스어가 '프시케'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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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Psyche)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영혼의 여신이다. 인간 여성으로 태어난 프시케의 아름다움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의 베누스)에 필적했고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자 욕망의 신인 에로스(로마의 쿠피도)의 사랑을 불러일으켰다. 에로스와 함께 하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련의 과업을 끝낸 후 프시케는 불멸의 지위를 부여받고 여신이 되었다. 프시케와 에로스 이야기는 기원전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가장 유명하고 완전한 이야기는 기원전 2세기경 고대 로마의 작가 아풀레이우스(Apuleius, BC 124년~BC 170년, 북아프리카 마다우로스 출신의 로마 소설가)가 쓴 <황금 당나귀>(또는 <메타모르포세스>로 세계 최초의 소설로 알려짐)에서 찾을 수 있다.

 

프시케와 쿠피도. 출처>구글 검색

 

<황금 당나귀>에 따르면 이름없는 도시에 세 딸을 둔 왕과 왕비가 있었다. 언니 둘도 아름다웠지만 막내 프시케는 너무 완벽해서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프시케의 미모는 국경을 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그녀를 보기 위해 각국에서 낯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기존에 베누스 여신에게만 표했던 존경과 경의를 프시케에게 선물과 제물로 바쳤다. 많은 사람들이 프시케의 아름다움을 숭배하면서 베누스 여신의 신전과 제단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하찮은 필멸의 여인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이 가려지는 것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사랑의 여신은 크게 화를 냈다. 복수를 계획한 베누스는 아들 쿠피도를 불렀다. 교활한 장난꾸러기인 쿠피도는 종종 무작위로 겨눈 그의 화살을 맞은 사람들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단 황금 화살을 맞았을 때였다. 쿠피도의 납 화살을 맞으면 반대로 평생 상대를 증오했다. 인간은 물론 신까지도 쿠피도 화살의 위력을 피할 수 없었다. 어쨌든 베누스는 쿠피도에게 어떤 끔찍한 존재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라고 명령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한밤중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쿠피도는 화살을 챙겨 프시케의 침실로 갔다. 쿠피도는 자고 있는 프시케를 보는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프시케의 뒤척임에 자신의 화살로 자신을 찌르고 만 쿠피도는 프시케를 향한 헤어날 수 없는 사랑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한편 프시케를 보기 위한 구혼자들의 발길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언니는 모두 이웃 나라 왕자와 결혼했지만 프시케는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에 불과했다. 너무 아름다운 외모가 독이라면 독이었다. 왕과 왕비는 막내딸이 평생 혼자 살까 불안했고 혹시 그들이 신들을 화나게 해서 그럴까 싶어 아폴론 신탁소를 방문했다. 왕은 프시케가 누구와 결혼할지 물었고 신탁은 프시케가 장례식 복장을 하고 산꼭대기에 남겨져 남편을 만날 것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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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왕비는 당황했지만 신탁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프시케 또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장례식 복장으로 갈아입고 그녀의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 홀로 남겨질 산꼭대기로 갈 준비를 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서풍 제피로스가 불어와 그녀를 숲으로 데려갔고 그녀는 즉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프시케는 숲 근처에서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웅장한 궁전을 발견했다. 프시케가 궁전의 복도를 돌아다닐 때 형체없는 목소리가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그녀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프시케는 이 궁전에서 보이지 않는 목소리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이 목소리는 밤에만 찾아와 그녀와 사랑을 나눈 후 날이 밝기 전에 떠나곤 했다. 특히 이 목소리는 절대 자신을 쳐다봐서는 안된다는 경고까지 했다. 프시케는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점차 형체를 모르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과 사랑에 빠졌다. 밤마다 찾아오는 이 보이지 않는 자는 신탁이 말한 그녀의 남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밤을 기다리는 만큼 낮은 슬프고 외로웠다. 어느 날 프시케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두 언니를 부르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슬픔에 잠긴 프시케를 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러라고 했지만 언니들이 무슨 말을 하건 자신을 쳐다보지 말라고 거듭 경고했다. 만약 자신을 쳐다본다면 자신은 그녀를 영원히 떠날 것이라며. 프시케도 남편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제피로스는 프시케의 언니들을 궁전으로 데려왔고 프시케는 궁전을 안내하며 자신의 행복한 생활에 대해 얘기했다. 이에 언니들은 질투에 휩싸였고 동생의 남편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했다. 처음에 프시케는 자신의 남편은 산에서 사냥을 하는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말했지만 언니들의 집요한 질문에 결국 아직 누군지도 모르고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말았다. 언니들은 프시케에게 그녀가 끔찍한 짐승과 결혼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며 머리맡에 등과 칼을 준비해 남편이 잠들면 얼굴을 확인하고 괴물이면 바로 머리를 자르라고 조언했다. 프시케는 남편과의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된다고 거듭 마음 먹었지만 언니들이 떠난 후에도 그들의 조언이 머리 속을 빙빙 돌아 찜찜했다. 생각할수록 남편이 왜 자신의 얼굴을 숨기는지 궁금증이 커져갔다. 그날 밤 프시케는 남편이 잠든 후 등불을 켜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본 것은 괴물이 아닌 쿠피도 신이었다.

 

프시케와 쿠피도. 출처>구글 검색

 

프시케는 얼굴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기울였고 이 때 등에서 기름 한 방울이 쿠피도의 어깨에 떨어져 그를 깨웠다. 신은 말없이 날개를 펴고 아내를 남겨놓고는 창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프시케는 그를 따라가려고 창 밖으로 뛰어내렸지만 땅에 떨어져 쓰러졌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 그녀는 숲과 궁전이 사라지고 언니들이 사는 도시 근처의 들판에 홀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시케는 언니들을 찾아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했고 언니들은 슬퍼하는 척 하면서 쿠피도가 프시케를 버렸으니 다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다음 날 아침 두 언니는 산으로 올라가 서풍 제피로스가 그들을 궁전으로 데려다 줄 것을 믿으며 산 정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믿었던 제피로스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들은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프시케는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밤낮을 남편을 찾아 헤맸다. 프시케는 농업의 여신 케레스(그리스의 데메테르)에게 도움을 청했다. 케레스는 프시케에게 베누스를 찾아가 봉사를 하면 베누스의 용서를 받고 쿠피도와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베누스는 프시케와 아들의 비밀 결혼에 대해 알게 되었고 화상을 입은 아들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프시케가 베누스 앞에 도착했을 때 극도로 분노한 베누스는 시녀인 걱정과 슬픔을 시켜 프시케를 채찍질하고 때리고 조롱했다. 그런 다음 베누스는 프시케 앞에 밀, 보리, 기장, 퍼피 시드, 렌틸, 콩 등 곡물을 쏟아 부은 후 저녁 전에 모든 곡물을 분류하라고 명령했다. 베누스가 떠난 후 프시케는 이 불가능한 일 앞에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던 개미 한마리가 그녀를 불쌍히 여겼고 다른 개미들을 모아 모든 곡물을 깔끔하게 분류한 후 사라졌다. 일이 다 끝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돌아온 베누스는 예상 밖의 일에 놀라면서도 격분했다.

 

다음 날 아침 베누스는 프시케에게 또 다른 불가능한 과업을 부여했다. 강 건너편에서 풀을 뜯고 있는 폭력적인 숫양의 등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양털을 얻어오라고 했다. 프시케는 숫양에게 찔려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강둑으로 다가갔다. 이 때 강이 한낮의 태양과 강의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숫양들을 안정시킬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이윽고 숫양들이 순해졌고 프시케는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등에서 양털을 깎을 수 있었다. 한편 프시케의 세 번째 과업은 스틱스 강에서 검은 물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이 과업을 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를 불쌍히 여긴 신이 있었다. 바로 유피테르(그리스의 제우스)였다. 유피테르는 거대한 독수리를 보내 스틱스 강의 검은 물을 모두 모으게 했다. 그러나 베누스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프시케에게 네 번째 과업을 내렸다. 프시케는 지하세계의 여왕인 프로세르피나(그리스의 페르세포네)의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황금 상자를 들고 지하세계로 내려가야 했다.

 

프시케가 출발하고 얼마 안 있어 그녀는 높은 탑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지하세계의 입구와 프로세르피나를 안전하게 찾는 방법을 들었다. 프시케는 이 지시에 주의를 기울였고 곧 프로세르피나 궁전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탑의 경고에 따라 프시케는 편안한 자리와 풍성한 음식을 제공하는 여신의 제안을 거절하고 땅바닥에 앉아 빵 한 조각만 먹는 것으로 만족해 했다. 그녀는 베누스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프로세르피나는 그녀가 가져온 황금 상자에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득 채웠다. 프시케는 지하세계에서 무사히 나오자마자 상자의 내용물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상자를 열었고 상자 안에는 깊은 잠에 빠지는 어두운 구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프시케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한편 쿠피도는 부상에서 완전 회복되었고 아내가 너무 보고 싶어 어머니의 집을 나섰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프시케를 발견하고는 그녀를 깨우기 전에 상자를 닫았다. 쿠피도는 상자를 유피테르에게 가져가 프시케를 불멸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유피테르는 아름다운 여인이나 여신을 발견할 때마다 쿠피도가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유피테르는 또 베누스에게 더 이상 프시케를 괴롭히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런 다음 그는 프시케에게 신들의 음료인 암브로시아 잔을 건네며 ‘프시케여! 이 술을 마시고 불멸이 되어라’라고 말했다. 프시케는 영혼의 여신으로 변신해 공식적으로 쿠피도와 결혼했다. 이 결혼을 축하기 위한 성대한 연회도 열렸다. 프시케는 쿠피도와 함께 즐거움과 환희를 의인화한 불룹타스(그리스의 헤도네)라는 딸을 낳았다.

 

쿠피도와 프시케 이야기는 수 세기 동안 지속되어 오면서 많은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6세기 이전 작가들은 이 이야기를 인간 영혼에 대한 우화로 이해했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로마 성직자인 풀겐티우스(Fabius Claudius Gordianus Fulgentius, 465년~527년)은 이 이야기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프시케를 아담과 비교했다. 둘 다 죄 많은 호기심으로 낙원에서 추방당했다.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년~1375년)는 프시케와 쿠피도의 결혼을 인간과 신 사이의 유대에 비유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심리학적 해석과 페미니스트적 해석을 통해 이야기가 분석되고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로 유명한 토마스 불핀치(Thomas Bullfinch, 1796년~1867년)는 그의 책에서 또 다른 우화적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나비’와 ‘영혼’의 그리스어가 ‘프시케’라는 점에 주목했다. 불핀치는 나비보다 더 아름다운 영혼에 대한 예는 없다고 썼다. 불핀치는 인간의 영혼이 고통과 불행을 통해 정화되고 그런 후에야 비로소 참되고 순수한 행복을 향유할 준비가 되는 것이라고 썼다. 프시케 이야기는 호기심 때문에 애인에게 버림받고 그를 되찾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을 완수하고 그 과정을 통해 여신이 되는 인간 여성의 이야기이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듯이 인간의 영혼 또한 고통과 변화를 통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프시케 이야기의 메타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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