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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필멸의 공주 아리아드네에 관한 서로 다른 신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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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왕 미노스와 왕비 파시파에의 딸인 아리아드네(Ariadne)는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것을 도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테세우스에게 한 눈에 반해 그를 돕기로 마음먹었으며 테세우스와 함께 하기 위해 조국을 버리기도 했다. 의도적이건 우연이건 테세우스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에 낙소스 섬에 아리아드네를 버렸다. 아리아드네는 그곳에서 디오니소스와 결혼했고 죽어서는 북쪽 하늘 왕관자리가 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아리아드네가 미노스 문명(BC 3000년~BC 1100년)의 자연의 여신이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그녀는 키프로스의 낙소스와 그 외 지역에서 결혼, 죽음과 관련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리아드네는 여신이 아니라 크레타 섬의 필멸의 공주였다. 일부 자료는 그녀가 디오니소스 신과 결혼해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자료는 그녀가 다른 인간들처럼 노화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미궁에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건네는 아리아드네. 출처>구글 검색

 

테세우스가 낙소스에서 아리아드네를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존재한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변덕스러운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에게 지쳤거나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또 다른 자료는 테세우스가 실수로 그녀를 낙소스에 두고 떠났다고 한다. 물론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버린 것은 그녀가 디오니소스와 결혼할 수 있도록 신들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는 자료도 있다. 한 유명한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낙소스에 남겨진 아리아드네를 발견하고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의 신화적 배우자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일부 전통에서 신들은 그녀가 신성한 남편 옆에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아리아드네에게 불멸의 지위를 부여했다고 한다.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는 스타필로스, 오이노피온, 타오스 등 여러 아들을 낳았다. 혹자는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에게 황금 왕관을 선물로 주었고 나중에 별자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신화에 따르면 영웅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쳐질 제물 중 하나로 위장해 크레타로 갔다. 그러나 크레타 공주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가 괴물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의 미로 같은 미궁에 들어가기 전에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뭉치를 건넸다. 그녀는 그에게 미궁을 통과할 때 실을 풀고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다음 실을 따라 입구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에서 탈출한 후 아리아드네와 함께 고향 아테네로 항해를 떠났다. 그러나 도중에 테세우스는 낙소스 섬에서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떠나 버렸다. 섬에 남겨진 아리아드네는 나중에 디오니소스 신과 결혼했다.

 

크레타의 아름다운 공주 아리아드네의 주요 속성으로는 테세우스가 미궁을 탈출하는데 도움을 준 실뭉치와 디오니소스 신이 그녀에게 준 황금 왕관이었다. <일리아드>에 따르면 아리아드네는 위대한 발명가 다이달로스가 그녀를 위해 만든 댄스 플로어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전통에서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가 죽은 후 그녀의 왕관을 별자리로 하늘에 두어 그녀를 기리게 했다. 장인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 이 왕관은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희귀한 보석으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다른 전승에서 아리아드네는 신들로부터 결코 죽지 않는 불멸의 지위를 부여 받아 디오니소스의 아내로 올림포스에서 영원히 살았다고 한다. 또 일부 자료는 아리아드네가 올림포스가 아닌 지하세계에 살았다고 전하고 있다. 고대 로마의 신화작가 히기누스는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로 하여금 자신의 형제인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게 한 죄로 지하세계에서 죄 많은 여성으로 살았다고 주장했다.

 

테세우스에 의해 낙소스 섬에 버려진 아리아드네. 출처>구글 검색

 

기원전 7세기경 아리아드네는 실뭉치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 후 그녀는 일반적으로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또는 테세우스와 함께 크레타로 갔던 아테네 공물(1844년 발견된 프랑수아 꽃병에 묘사된 젊은이들)과 함께 표현되었다. 미술과 문학 모두에서 아리아드네는 때때로 그녀의 유명한 황금 왕관을 쓴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리아드네는 더 다양한 신화적 장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기원전 5세기 이후 디오니소스와의 결혼은 그리스와 로마 미술에서 인기있는 주제가 되었다.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기원전 5세기경에 활약했던 고대 그리스의 화가인 폴리그노토스의 네키아(고대 그리스의 숭배 관습으로 유령을 불러 미래에 대해 질문하는 의식)는 아리아드네가 여동생 파이드라와 함게 지하세계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가장 거룩한’이라는 뜻의 크레타어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일부 현대 학자들은 그 이름이 실제로는 그리스 이전 시대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아리아드네는 미노스와 파시파에의 딸로 아카칼리스, 안드로게우스, 데우칼리온, 파이드라, 글라우코스, 제노디케 등의 여자 형제들과 미노타우로스라는 이복 형제가 있었다. 아리아드네의 기원은 모호하지만 원래 여신으로 숭배되었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그녀가 미케네 시대(BC 1700년~BC 1050년)의 문서에 등장한 ‘미궁의 여인’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아리아드네를 둘러싼 신화와 의식은 아도니스, 헤메나이오스, 히아킨토스 등의 식물과 다산의 신들과 유사하다. 그녀에 관한 신화의 표준 버전은 아리아드네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크레타에 왔을 때 그를 사랑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인들이 정기적으로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제물로 보내져야 했던 14개의 공물(7명의 총각과 7명의 처녀) 중 하나였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겠다고 맹세했고 아리아드네는 그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아리아드네는 나중에 결혼한다는 조건으로 테세우스를 도왔다고 한다.

 

아리아드네는 미궁의 설계자인 다이달로스가 그녀에게 준 실뭉치를 테세우스에게 주었다. 그녀는 미노타우로스를 찾을 때까지 미로 같은 미궁을 통과하면서 테세우스에게 실을 풀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면 괴물을 죽인 후 실을 따라 입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지시에 따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그녀와 13명의 다른 아테네 공물과 함께 크레타를 탈출했다. 일부 자료는 그가 떠나기 전에 선체에 구멍을 뚫어 크레타 선박이 그들을 추격하는 것을 막았다고 덧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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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신화에는 몇가지 변형이 있다. 시칠리아으 디오도로스(Diodorus Siculus, BC 1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에 따르면 아리아드네는 단지 테세우스에게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방법을 조언했을 뿐이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테세우스가 어두운 미궁을 통과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디오니소스가 그녀에게 준 빛나는 왕관을 그에게 주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신화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아들 데우칼리온을 죽였고 그 후 아리아드네는 그가 아버지와 화해하도록 도왔다. 다른 신화에서 테세우스는 미노스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크레타에 왔다. 그가 왕의 수행원(왕비의 애인) 중 한 명인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것은 이 방문 때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사랑을 얻었다. 안타깝게도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와의 맹세를 지키지 못했다. 크레타를 탈출한 직후 그는 그녀를 에게 해의 낙소스 섬에 버렸다.

 

고대 학자들은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버린 이유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그녀에게 싫증이 났거나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스스로 그녀를 떠났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은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디오니소스가 그녀와 결혼하도록 한 것은 신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오래징낳아 아리아드네는 포도주와 도취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발견되었고 신은 아리아드네와 사랑에 빠졌다. 디오니소스는 그녀를 배우자로 삼아 빛나는 황금 왕관을 선물로 주었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아리아드네 신화는 많은 변형을 겪는데 아리아드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살해당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신화에서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의 관계는 그녀가 테세우스를 만나기 전 크레타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그녀가 테세우스의 연인이 되었을 때는 이미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아리아드네가 아르테미스에게 살해당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플루타르코스(Lucius Mestrius Plutarchus, 46년~119년)는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의 자식을 임신한 채로 낙소스가 아닌 키프로스에 왔다고 주장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와 아리아드네의 허약한 상태로 인해 테세우스는 그녀를 섬에 남겨두고 떠났고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죽은 후였다. 그녀는 나중에 아리아드네 아프로디테에게 헌정된 숲에 묻혔다. 일부 신화에는 두 명의 아리아드네가 등장하는데 디오니소스와 결혼해 스타필로스라는 아들을 낳은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에게 끌려가 버림받은 아리아드네였다. 그녀는 그녀의 유모 코르키네와 함께 낙소스에 왔고 결국 그곳에서 죽었다. 낙소스 사람들은 축제를 열어 두 아리아드네를 기렸다. 첫 번째 아리아드네를 위해서는 환희의 축제를, 두 번째 아리아드네를 위해서는 애도의 축제를 열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의 사제인 오이나로스와 함께 낙소스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 출처>구글 검색

 

대부분의 자료에서 아리아드네는 결국 죽었다. 즉 그녀는 필멸의 인간이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디오니소스는 슬픔에 빠졌고 그녀를 기리기 위해 하늘에 그녀의 왕관을 던져 별자리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은 출처에 따라 다르다. 5세기경에 활약한 로마 시대의 가장 유명한 그리스 서사시인이었던 논노스(Nonnus of Panopolis)의 디오니시아카(디오니소스의 생애, 디오니소스의 인도 원정과 귀환 등의 주제로 한 서사시)는 아리아드네의 죽음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제공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아리아드네는 페르세우스와의 전쟁(페르세우스의 도시인 아르고스가 디오니소스 숭배를 거부하면서 시작됨)에서 디오니소스를 동행했다. 전투 중에 페르세우스는 보는 사람은 누구나 돌로 변하게 만드는 메두사의 머리를 잘랐다. 이 전쟁 때 아리아드네는 메두사의 머리를 쳐다보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 결국 디오니소스와 페르세우스는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아르고스는 디오니소스 숭배를 채택하기로 동의했다. 일부 전통에서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가 아르고스에 묻힐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서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낙소스에서 그녀를 버린 후 낙소스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한다. 이 전통에 따르면 아리아드네와 디오니소스의 결혼은 아예 없는 사건이 된다. 그러나 모든 전통이 아리아드네의 죽음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와 결혼 후 그녀를 올림포스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크로노스의 아들 즉 제우스는 그녀를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아리아드네는 올림포스에서 그리스 신들과 영원히 살았다고 한다.

 

아리아드네는 크레타 신화에서 두드러진 인물이었지만 고대 크레타에서 그녀에 관한 숭배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아드네 숭배는 다른 여러 에게 해 섬에서는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낙소스에서는 두 명의 아리아드네를 기리는 축제가 열렸다. 하나는 디오니소스의 아내 아리아드네를 위한 흥겨운 축제였고 또 하나는 테세우스에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를 기리는 애도의 축제였다. 낙소스의 젊은 처녀들은 아리아드네를 기리기 위해 춤을 췄다. 반면 키프로스 사람들은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에 대한 그들만의 지역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섬에서 아리아드네는 아프로디테와 결합해 아리아드네 아프로디테라는 신성이 등장했다. 이 모습으로 그녀는 그녀의 무덤이 있는 신성한 숲을 가지고 있었다. 아리아드네를 기리기 위한 의식 중에는 젊은 청년이 땅에 누워 해산하는 여성의 절규를 흉내내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델로스 섬에서 아리아드네는 아폴로와 연결되었다. 아프로디테의 목조 신상 즉 크소아논은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로부터 받아 델로스 신전에 봉헌했다고 전해진다. 아리아드네는 크소아논을 위대한 발명가 다이달로스로부터 받았다. 아리아드네의 몇몇 성지는 그리스 본토에도 있었다. 아르고스에는 아폴로 크레시오스 즉 크레타인 아폴로 신전 안에 아리아드네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었다. 한 전통은 아리아드네가 또한 로크리스(고대 그리스의 중부 지방에 위치한 도시)에서도 숭배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확실치 않다.

 

아리드네는 아테네에서 매년 봄철 안테스테리아 축제 둘째 날인 코에스에 열린 ‘신성한 결혼’ 의식의 주요 배경이었을 것이다. 이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집정관 바실레우스는 의식의 일환으로 그의 아내를 디오니소스와 결혼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를 취할 수 있도록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포기했다는 신화의 재현이었을 것이다. 아리아드네는 에투루리아인들에게 아리아타, 아레아타, 아라타, 에시아 등의 이름으로 전승되었다. 에트루리아 예술에서 아리아드네는 푸플룬스(디오니소스의 에트루리아 이름)의 배우자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푸플룬스와 어느 정도 숭배를 받았는지는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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