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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이집트

로마 시대까지 숭배된 태초의 어머니 여신, 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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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화에서 무트Mut(또는 마우트Maut)는 테베(와세트의 그리스 이름으로 상이집트의 네 번째 놈)의 어머니 여신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독수리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어머니로 여겼기 때문에 ‘독수리’라는 뜻의 단어 ‘무트Mwt’를 ‘어머니’라는 말로 사용하기도 했다. 무트는 날개를 가진 여성이나 왕족의 왕관을 쓴 독수리로 묘사되었다. 즉 그녀는 두 개의 이집트 왕관을 쓰고 있거나 신왕국(BC 1550년~BC 1077년) 시대 여왕들의 독수리 머리장식을 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때때로 그녀는 남성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일부에서는 그녀 스스로가 누구도 낳은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일부에서는 수컷 그리핀(사자 몸통에 독수리와 머리와 날개를 가진 신화적 존재)이 없다는 미신적인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독수리는 수컷과 암컷을 구별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후대에 무트는 다른 이집트 여신들의 속성을 이어받으면서 암사자, 소, 코브라 등의 머리를 가진 여성으로 묘사되었다.

 

무트. 출처>구글 검색

 

무트는 중왕국(BC 2055년~BC 1650년) 시대 아문의 초기 배우자 아마우네트를 대신했다. 무트는 원시 시대부터 존재했으며 태초의 물 눈과 함께 존재했다. 아마도 그녀가 8명의 원시 신들 집단인 오그도아드(나우네트와 누, 아마우네트와 아문, 카우케트와 케크, 하우에트와 헤) 중 한 명을 대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무트는 지역신으로 숭배되었지만 그녀의 남편인 아문이 신왕국 시대에 최고신이 되면서 신들의 여왕으로 위상이 격상되었다. 테베는 이집트의 수도가 되었고 테베의 신들은 국가의 신들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무트는 국가의 어머니인 여왕이나 왕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녀는 특히 이집트 제 18왕조(BC 1540년~BC 1304년)와 19왕조(BC 1304년~BC 1199년) 시대에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18왕조의 다섯 번째 파라오인 하트셉수트와 19왕조 세 번째 파라오 람세스 2세의 부인 중 한 명인 네페르타리가 무트를 열렬히 숭배했다고 한다.

 

남편 아문이 태양신 라와 통합되었을 때 무트는 ‘라의 눈’이라는 칭호를 물려받았다. 참고로 ‘라의 눈’과 관련된 신들로는 세크메트, 하토르, 테프누트, 와제트 등이 있었다. ‘라의 눈’은 태양의 맹렬한 열기를 형상화한 사자의 모습을 한 라의 딸이었다. 그러나 무트는 또한 ‘그가 떠오르는 태양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즉 무트는 태양신의 어머니와 딸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원래 전쟁의 신 몬투가 그들의 아들로 여겨졌지만 몬투는 달의 신 콘수로 대체되었다.

 

아문, 무트, 콘수로 이루어진 테베의 삼주신은 나일강 동쪽 연안에 위치한 아문의 룩소르 신전에서 숭배되었다. 무트의 숭배 중심지는 테베였지만 그녀는 또한 드자넷, 자우, 카르가와 다클라의 오아시스에서도 숭배되었다. 무트는 또 이시스, 누트와 같은 많은 다른 여신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여러 복합 신들의 일원으로 숭배되었다. 그녀는 이시스, 네크베트와 함께 ‘위대한 어머니와 숙녀, 무트-이시스-네크베트’라는 신을 형성했다. 무트-이시스-네크베트는 사자의 발, 곧추선 성기 그리고 세 개의 머리(민의 이중 깃털 머리 장식ㅇ르 한 암사자의 머리, 두 개의 이집트 왕관을 쓴 여자의 머리,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쓴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날개 달린 여신이었다. 바스트, 세크메트와 함께 그녀는 또 다른 세 개의 머리(깃털로 장식된 머리장식을 한 사자의 머리, 두 개의 왕관을 쓴 여자, 깃털로 장식된 머리 장식을 한 독수리 머리)를 가진 세크메트-바스트-라가 되었다. 이 형태로 그녀는 죽은 자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죽음의 서에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또한 무트-와제트-바스트, 무트-세크메트-바스트-멘헤트라는 이름으로도 숭배되었다.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가장 대중적인 축제 중 하나는 테베의 무트 페스티벌이었다. 이 때 사람들은 범선에 무트 여신상을 세우고 이쉐루(카르나크의 무트 신전에 있는 작은 초승달 모양의 신성한 호수) 주위를 항해했다. 신년 축제 동안 아문의 조각상이 무트를 방문하기 위해 룩소르에 있는 그의 사원에서 카르나크로 여행하는 행사도 있었다. 원래 이것은 다가오는 해의 풍요를 보장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다산의 여신 오페트(풍요의 여신 타웨레트의 한 측면)를 위한 행사였다.

 

‘무트의 영지’라는 뜻의 ‘후트-무트’ 신전은 위대한 아멘-라 신전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고 근처에 스핑크스의 길이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무트, 위대한 이쉐루의 여인, 하늘의 여인, 신들의 여왕’으로 숭배되었다. 이상하게도 이 사원에는 독수리 모습을 한 그녀의 모습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라의 눈’인 세크메트로 묘사한 많은 그림들이 있는데 그 중 다수는 서쪽 언덕에 있는 아멘호테프 3세의 장례식장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이 신전은 처음에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 3세가 건립했고 이후 세티 1세, 람세스 2세, 람세스 3세, 타르카 왕 등이 확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트는 그녀의 신전이 파괴된 로마 시대까지 숭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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