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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메소포타미아

원시의 물 압주와 메소포타미아 창조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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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주Abzu(또는 압수Apsu)는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그리고 아시리아에서 숭배되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물의 신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따르면 압주는 지하세계 아래에 존재하는 광대한 민물 바다를 의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압주는 담수의 신으로 숭배되었으며 고대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 <에누마 엘리시>에만 언급되었다. 1849년 영국의 고고학자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가 아슈르바니팔 왕립 도서관을 발견하기 전 고대 메소포나미아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은 고전적인 자료에서 나왔다. 이것들은 종종 신뢰할 수 없었고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회, 문화, 종교에 대한 불완전한 그림을 제공했다.

 

이라크 모술 근처에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이 발견된 것은 고고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이 발견으로 역사학자, 언어학자, 신화학자들은 고대 수메르, 아카드, 바빌론, 아시리아에서 사용된 설형문자로 새겨진 3만 여개의 점토판을 연구할 수 있었다. 점토판에 포함된 문헌들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시대의 문학 작품들과 법적 문서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바빌로니아 창조 신화의 본문이 담긴 점토판은 단편적인 형태로 회수되었고 그 후 연구를 위해 영국으로 옮겨졌다. 압주는 <에누마 엘리시>의 첫 여덟 줄에서 창조 이전에 존재했던 두 명의 원시 신들 중 하나로 언급된다. 티아마트Tiamat(염수의 신)와 압주라는 두 명의 원시적 존재 외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들은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묘사된다.

 

티아마트를 격파하는 마르둑. 사진>구글 검색

 

앞서 언급했듯이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압주는 대지 아래의 광대한 민물 바다였고 티아마트는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소금 바다를 상징했다. 압주는 티아마트와 섞였고 이 결합으로부터 최초의 신들이 생겨났다. 이 신들 중 첫번째는 라흐무Lahmu와 라하무Lahamu였고 이 둘의 결합으로 안샤르Anshar와 키샤르Kishar가 태어났다. 이어서 안샤르는 아누Anu를 낳았고 아누는 에아Ea를 낳았다. 그러나 곧 새로 창조된 신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났다. 이에 혐오감을 느낀 압주는 그들을 파괴할 것을 제안했지만 티아마트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후의 분쟁에서 압주는 그의 아들 엔키에 의해 살해당했고 엔키는 압주의 몸으로 그의 거처를 만들었다.

 

남편 압주의 죽음에 슬픔과 분노를 느낀 티아마트는 괴물 군대를 만들어 그들을 젊은 신들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그들 중에는 피 대신 독으로 가득 찬 용들도 있었다. 뱀 용과 다른 창조물들이 티아마트의 군대를 더욱 더 확장시켰다. 다가올 전투의 결과를 걱정한 엔키는 그의 할아버지인 안샤르에게 조언을 구했다. 안샤르는 젊은 신들이 티아마트에게 대항하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등장한 신이 바로 마르둑Marduk이었다.

 

마르둑은 엔키의 아들로 압주 신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르둑의 어머니는 담키나Damkina였다. 엔키와 담키나는 곧 그들의 아들이 다른 신들을 능가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따라서 안샤르는 마르둑을 티아마트에 대항하는 젊은 신들의 우두머리로 선택할 것을 제안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마르둑은 티아마트를 물리친 대가로 자신을 신들의 왕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정교한 무기를 바탕으로 마르둑은 티아마트를 격파하기 시작했다. 그는 네 개의 바람과 강력한 폭풍을 이용해 티아마트에 대항했다. 마르둑은 티아마트의 배에 바람을 집어넣었고 티아마트의 심장을 관통하는 화살을 쏘았다. 부풀어 오른 티아마트는 폭발해 죽었고 마르둑은 그녀의 시체를 이용해 하늘과 땅을 만들었고 밤과 낮, 천체, 별자리 등을 창조했다.

 

메소포타미아 신전 지구라트. 사진>구글 검색

 

토판은 마르둑이 어떻게 최초의 인간을 창조했는지를 설명한다. 처음에 그는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엔키는 티아마트의 부하인 킨구Kingu의 피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의식적인 숭배를 통해 신들을 섬기고 기리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한다. 이 창조 신화는 인간 창조와 함께 마르둑이 신들의 왕으로 추대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마르둑은 신들의 왕이자 인류의 수호자이며 치유, 정의 마법의 신이었다. 마르둑 숭배중심지는 엔키와 엔릴이 숭배되었던 바빌론이었다. 마르둑은 바빌론의 수호신이자 바빌론 제국의 국가신이었다. 후대에 그는 벨Bel 또는 단순하게 ‘하느님’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하늘과 뇌우와 관련된 신들의 왕으로서의 그의 위치는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서 제우스와 유피테르의 위치와 유사하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마르둑을 포함해 거의 천 개의 신들을 숭배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신들은 지역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메소포타미아 문화 자체가 획일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압주 신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압주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압주는 모든 샘, 강, 호수의 원천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압주라는 말은 때로 사원 뜰의 성수(성스러운 물)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참고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신전을 지구라트라고 불렀다. 지구라트는 거대한 계단식 피라미드로 지어졌고 보통 진흙 벽돌로 만들어졌다. 지구라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우룩, 바빌론, 니네베와 같은 큰 도시에는 여러 개의 지구라트가 포함된 신전 단지가 있었다. 사람들은 신전에서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신전을 신들의 지상 거주지로 보았다. 메소포타미아의 모든 도시는 수호신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집트에서처럼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종교적 숭배는 국가의 일과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왕들은 대제사장의 임무를 겸임했다.

 

바빌로니아의 종교와 창조 신화는 훨씬 더 초기인 수메르의 관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것은 수메르 창조 신화와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엘리시>만 봐도 알 수 있다. ‘압주Abzu’는 수메르어로 ‘남무Nammu’라고 했는데 남무는 공허를 메운 광활한 원시의 물을 의인화한 것이다. 남무는 각각 땅과 하늘을 의인화한 안An과 키Ki를 낳았다. 인류를 창조한 엔키(바빌로니아의 에아Ea)는 남무와 안의 아들이었다. 엔키는 메소포타미아 역사의 많은 부분에서 중요한 신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물고기로 채우는 일을 담당하는 담수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안과 키의 아들 엔릴Enlil은 바람과 공기와 폭풍의 신으로 아카드인, 바빌로니아인, 후르리인들이 숭배한 가장 중요한 수메르 신이었다. 그는 ‘위대한 산’, ‘이국의 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원시 물의 신 개념은 메소포타미아 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누Nu는 우주가 생겨난 원시적인 물의 심연을 상징했다. 누는 메소포타미아의 압주처럼 창조의 원천이었다. 요컨대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원시의 민물 바다인 압주와 그의 배우자인 티아마트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었다. 그들이 섞여서 다른 모든 신들이 창조되었다. 그러나 젊은 신들 중 하나인 엔키가 압주를 살해했고 이를 계기로 압주의 아내 티아마트와 젊은 신들 사이의 전쟁이 벌어졌다. 결국 그녀는 패했고 그녀의 몸에서 우주가 만들어졌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와 신화는 여전히 많은 학자들을 매료시키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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