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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에게리아(Aegeria) 또는 에게리아(Egeria)는 숲, 출산, 물, 치유, 샘, 신성한 지식, 영감 등을 관장하는 고대 로마의 여신으로 디아나(그리스의 아르테미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래 에게리아는 치유와 출산의 여신 디아나의 한 측면이었을 수도 있다. 그녀는 로마 중심지와 도시 남동쪽 등 적어도 세 곳에서 숭배되었으며 각 장소에는 치유의 샘이 있었다. 에게리아는 또한 영감과 신성한 지혜의 여신으로 그녀의 연인이자 로마의 전설적인 2대왕인 누마(Numa Pompilius. 재위기간: 기원전 715년~672년)에게 많은 종교적 관행을 개혁하거나 제정하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에게리아의 이름은 ‘낳다’ 또는 ‘운반하다’라는 뜻의 ‘게로(gero)’와 유사하다. 이 동사의 한 형태는 임신을 의미하는 영어 ‘게스테이션(gestation)’으로 이어지지만 임신에 대한 실제 라틴어 단어는 게로(gero)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임신한 여성은 건강한 임신과 쉬운 출산을 위해 그녀에게 기도했고 에게리아의 이름은 때때로 ‘생명을 주는 자’로 해석되지만 ‘아이를 낳는 자’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녀는 또한 출산에 관심이 있는 예언의 님페 카메나이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숲의 님페이자 물의 님페이기도 한 에게리아.

 

샘의 여신인 에게리아는 또한 예언자였으며 그녀가 돌보는 신생아의 미래를 예언했다고 한다. 샘과 관련된 또 다른 측면은 그녀가 신성한 지혜와 신성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지에서 나오는 물인 샘은 마법과 꿈에 대한 잠재의식적 지식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을 상징한다. 플루타르코스(Plutarch. 46년~120년. 그리스 중세 플라톤 철학자이자 역사가)는 에게리아를 참나무 여신이라고 불렀는데 그리스 체계에 따르면 그녀는 나무의 님페인 드리아드(복수형은 드리아데스)가 된다. 이 참나무도 제우스에게 신성시되었던 도도나의 참나무와 마찬가지로 예언과 연결되어 있었다.

 

에게리아는 라티움의 아리키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네미 호수에서 디아나와 함께 숭배되었다. 이 호수는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약 27km 떨어진 사화산 분화구에 자리 잡고 있다. 에게리아는 분화구 안에 호수로 흘러 들어 여러 개의 폭포로 쏟아지는 유명한 샘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세 시대에 여러 개의 방앗간을 돌릴 만큼 강력했다. 디아나의 성소는 호수 북쪽의 작고 평평한 평야에 위치해 있었는데 더 얕은 두 번째 분화구의 잔해처럼 보이기도 했다. 디아나 성소는 기원전 4세기 이전에는 신전이나 다른 건물이 없었던 것 같지만 다른 발견물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고 그곳에서 그녀를 숭배한 것은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누마에게 지도하는 에게리아.

 

그곳의 디아나 숲은 고대 로마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였다고 한다. 네미의 디아나 네모렌시스(‘숲의 디아나’라는 뜻)라고 불리는 그녀의 사원 단지에는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욕조가 포함되어 있었고 에게리아의 샘물로 채워졌다. 치유가 필요한 신체 부위나 아이를 둔 어머니를 묘사한 많은 봉헌 제물상이 그곳에서 발견되었다. 어머니와 아이 인형은 아마도 아이를 임신하기를 바라거나 건강한 임신과 순산을 기원하는 기도로 바쳐졌을 것이다.

 

에게리아의 두 번째 샘은 로마 중심부에서 남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지금의 파르코 델라 카파렐라 공원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은 고대에 에게리아 밸리스 즉 에게리아 계곡으로 알려졌으며 로마의 티베르강과 합류하기 전에 알모강(지금의 알모네강)이 흐르는 계곡일 가능성이 높다. 에게리아에게 신성한 이 계곡에는 여전히 님파이움(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샘의 님페에게 봉헌된 기념물) 또는 샘물이 공급되는 작은 동굴이 있으며 기원후 2세기에 산비탈 음푹 들어간 부분에 에게리아의 동상이 있는 대리석으로 개조되었다. 이 샘의 물은 알모강으로 흘러 들기 전에 몇 개의 웅덩이를 우회했다. 첫 번째 웅덩이는 큰 직사각형 모양으로 라쿠스 살루타리스 또는 ‘건강을 주는 호수’라고 불렸으며 치유력이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에게리아의 세 번째 샘은 로마에 있는 포르타 카페나에 있었다. 포르타 카페나는 비아 아피아(고대 로마인들이 건설한 가장 오래된 도로)가 통과하는 도시 남쪽에 있는 세르비아누스 성벽(기원전 4세기초에 건설된 도시 방어용 성벽)의 문이다. 이 샘은 에게리아와 관련된 예언의 물의 여신 카메나이와 공유되었다. 이 물도 유익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에게리아가 카메나이와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지만 이 지역과 에게리아(그리고 그녀의 연인인 누마왕)의 관계는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포르타 카페나에서 약 0.8km 떨어진 곳에 에게리오 공원과 누마 폼필리오 광장이 있다.

 

에게리아에 대한 로마의 주요 전설은 로마의 전설적인 두 번째 왕인 누마 폼필리우스와 관련이 있었다. 누마는 사빈(로마 건국 이전 아니오 북쪽 라티움에 있던 왕국) 왕 티투스 타티우스의 딸인 그의 첫 번째 아내 타티아가 죽은 후 에게리아를 만났고 그녀의 지성과 신성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으며 에게리아 또한 그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온화한 태도에 감동해 둘은 곧 연인이 되었다. 누마는 수년 동안 밤에 숲 속의 샘에서 그녀를 만났고 그녀는 그에게 적절한 종교 의식과 관습을 가르쳤다. 에게리아가 전수한 신성에 대한 지식으로 누마는 많은 로마의 종교 관행을 확립하거나 개혁했다.

 

에게리아 님페이움은 고대 로마의 수로 시설이었다.

 

예를 들어 누마는 시작의 신 야누스를 위한 신전을 건립하고 신념의 여신 피데스와 경계의 신 테르미누스 숭배를 시작했다. 그는 대신관, 공적 및 사적 의식을 감독하는 로마의 대제사장, 로마 중심부에 있는 성화를 지키는 베스타 여신의 시중을 드는 처녀와 같은 여러 사제직을 제정했다. 그는 마르스, 유피테르, 퀴리누스(일명 신격화된 로물루스)를 위한 플라멘(고대 로마의 사제)을 설립했다. 그는 달력을 개혁하고 공휴일을 정했으며 적절한 장례 의식을 제정했다. 에게리아가 누마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능력은 나중에 카메나이가 그리스의 영감의 여신 뮤즈와 연관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에게리아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누마에게 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는 이러한 영예를 주지 않았다. 한 전설에서 누마는 어느 날 밤 몇몇 친구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누마는 왕이었지만 검소하고 단순한 습관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는 친구들에게 진흙으로 만든 접시에 맛있는 간단한 음식을, 나무 잔에 음료를 담아 제공했다. 그때 에게리아가 그들에게 왔고 다른 손님들은 그녀를 볼 수 없었지만 누마는 그녀가 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빛났기 때문이다. 간단한 음식은 은접시와 금잔으로 준비된 화려한 잔치가 되었다. 누마가 자신의 애인이 여신이라고 말했을 때 이를 믿지 않았을 친구들은 비로소 그의 말이 진실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누마는 로마 전설에서 평화롭고 신앙심이 깊은 것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조용하고 사려 깊었으며 마지못해 왕위를 수락했다. 그가 길고 평화로운 통치를 마치고 죽었을 때 에게리아는 상심하여 로마 근처의 그녀의 샘을 떠나 아리키아의 네미 호수에 있는 디아나 숲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에게리아는 애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너무 울었고 이를 지켜본 디아나 여신은 그녀를 샘으로 변신시켰다.

 

로마인들은 에게리아에 대한 역사적 숭배가 아리키아에서 로마로 전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초기 역사를 찬양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전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에게리아는 로마 여신일 뿐만 아니라 사빈 여신일 수도 있다. 전설 속의 누마는 초기 로마의 사빈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 로마의 작가인 바로(Marcus Terentius Varr. 기원전 116년~27년)에 따르면 디아나도 사빈족 출신이었다고 한다.

 

에게리아는 네미 호수의 아리키아로 돌아가서 디아나와 숲의 신 비르비우스와 함께 삼주신의 하나로 여겨졌다. 비르비우스는 원래 아르테미스(디아나)의 총애를 받은 히폴리토스로 죽었다가 신성한 치유사 아스클레피오스에 의해 부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신성한 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르테미스는 그를 아리키아로 데려가 이름을 비르비우스로 바꾸어 본래의 모습을 위장했다고 한다. 비르비우스가 아리키아에서 한 첫 번째 일은 네미 호수의 분화구에 디아나(아르테미스)를 위한 위대한 신전을 세우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에게리아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로마인들이 초기 역사를 더 화려하게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사례였다. 사실 비르비우스는 일찍부터 네미에서 디아나, 에게리아와 연관되어 온 로마의 토착 숲의 신이었다. 어떤 작품에서는 비르비우스를 디아나의 배우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에게리아에서 디아나의 초기 모습을 보았다. 둘 다 출산, 치유와 관련이 있었고 네미의 매우 오래된 숭배 장소와 관련이 있었으며 이야기에 따라 둘 다 비르비우스의 배우자로 여겨졌다. 일부 전통에 따르면 네미의 디아나 숭배는 에게리우스 바이비우스, 에게리우스 라에비우스, 마니우스 에게리우스 등의 별칭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에게리아가 샘의 님페가 아니라 디아나의 한 측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미의 디아나/에게리아는 지하세계의 여신과도 연결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시적 이름인 ‘디아나의 거울’ 외에도 네미 호수의 또 다른 이름은 달, 대지, 지하세계의 삼중 교차로 여신인 헤카테로서의 디아나의 한 형태인 ‘트리비아이의 호수’ 즉 트리비아이 라쿠스였다. 게다가 봄의 여신이 지하세계와 관련이 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샘물이 지하에서 직접 솟아올라 살아있는 자의 땅과 죽은 자의 땅 사이의 연결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네미에서 그녀를 숭배하는 장소는 말 그대로 화산 분화구 안에 있었다. 그리고 화산은 로마인의 생각 속에서 지하세계로 가는 입구와 연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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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