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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메소포타미아

영화 '엑소시스트'의 악마 파주주에 대한 고대인들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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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파주주(Pazuzu)는 기원전 1000년경에 가장 인기있었던 악마 신이었다. 그는 지하세계의 왕 한비(Hanbi)의 아들이었고 길가메시와 엔키두에게 살해당한 삼나무 숲을 지키는 괴물 훔바바(Humbaba)의 형제였다. 그는 서풍과 남서풍을 통제해 건기에는 가뭄을, 우기에는 폭풍을 일으키는 지하세계의 악마였다. 파주주는 파괴적인 바람 외에도 많은 위협적인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이집트 신 세트(Set)와 비슷한 방식으로 파주주에게 그의 파괴적인 특성을 좀 더 자비로운 보호의 목적으로 돌리기 위해 기원했다. 그가 해를 끼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파주주가 그가 제시한 바로 그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데도 동등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1973년에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주인공 소녀 리건 맥닐에게 깃든 악마가 바로 파주주였다.

 

 

그의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파주주는 고매 메소포타미아에서 초자연적인 존재 중 가장 자비로운 존재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는 확실히 사악한 악마였지만 그렇다고 사악한 악마의 화신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악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주 소환되었다. 특히 그는 태아와 갓 태어난 아기들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진 악마 여신 라마슈투(Lamashtu)로부터 임신한 여성들과 아이들을 보호하는데 강력한 힘이 있었다. 이렇듯 파주주에 대한 조금은 혼돈스러운 정의는 악마에 대한 현대인과 고대인의 인식 차이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대인들에게 악마는 단순히 ‘악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악마의 영어 단어 ‘데몬(Demon)’이 ‘영혼’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다이몬(Daimon)’에서 유래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즉 악마는 결과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었다. 고대 세계에서 악마는 죄를 벌하기 위해 또는 타인에 대한 공동체의 의무를 상기시키기 위해 신들이 보냈다. 파주주도 이런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악마 중 하나였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대홍수 서사시인 ‘아트라하시스 신화’에서 인간은 신들이 보기에 그 인구도 너무 많고 시끄러웠으며 그 번성 속도가 너무 빨랐다. 게다가 그들은 너무 오래 살아서 죽는 사람들보다 태어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인간들은 곧 대지를 덮었고 그들의 소음은 대기의 신 엔릴(Enlil)을 분노케 했다. 엔릴은 대홍수로 인간 세상을 파괴하기로 결심했고 곧 실행했다. 홍수가 지나간 후 지혜의 신 엔키(Enki)는 다른 신들에게 대지를 새로운 인간들로 채우자고 제안했다. 이에 신들은 매일매일 수명이 짧은 인간들을 창조해 대지를 채워갔다. 동시에 신들은 인간들을 위협할 각종 존재와 현상 등도 창조했다. 질병, 유산, 발기부전, 불임, 야생동물의 공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 악마들은 이 신성한 계획의 일부였고 악인들을 벌하기 위해 또 의인들을 시험하기 위해 보내졌다. 심지어 어떤 신은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으로 악마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특히 남녀의 결합과 출산을 방해하는 신들이 골칫거리였다. 용의 이빨과 독수리의 발톱 그리고 전갈의 꼬리를 가진 악마 사마나(Samana)는 끊임없는 위협이었고 그를 쫓기 위한 수메르인들의 주문(SAG.NIM.NIM TI.LA)은 그가 어떻게 어린 소녀의 생리, 젊은 남성들의 생식력, 궁녀와 매춘부의 역할 등을 방해하는지 열거하고 있다. 사마나는 농작물과 가축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유아와 매춘부에 대한 특별한 식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악의와 파괴적인 힘을 가진 악마는 신들에 의해 강력하게 억제되어야 했지만 사마나는 건강과 치유의 여신 굴라(Gula)의 수행신이었다. 분명한 것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언제든지 신이나 악마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인간의 성생활이 신이나 악마의 표적이 되었다. ‘아트라하시스 신화’에 따르면 성생활이 인류의 확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신과 악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똑같이 강력한 악마들 중에 개인과 신들의 분노 사이에서 방패 역할을 할 수 있는 수호신을 찾는 것이었다. 파주주는 이런 수호신들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이었다. 그는 주로 라마슈투가 태아나 갓 태어난 아기들을 잡아먹는 것을 막기 위해 소환되었지만 질병이나 불임, 죽은 사람들의 땅에서 불어오는 서풍과 남서풍의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소환되었다. 이 서풍과 남서풍은 파주주 그 자신이 통제할 수 있었다. 파주주는 개의 얼굴을 하고 몸에는 비늘이 돋아 있으며 뱀 머리 성기, 새 발톱 그리고 거대한 날개를 가진 모습으로 그려졌다. 파주주의 작은 조각상들이 발견된 적이 있지만 실물 크기의 조각상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사실 지하세계와 관련된 신과 악마에 대한 묘사는 드물다. 그런 묘사나 우상 제작 자체가 또 다른 악을 소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조각상들은 주로 아이들의 방이나 집의 대문, 창문 근처에 놓여졌다. 파주주의 조각상은 퇴마 목적으로 건물 문지방 아래에 묻는 반인반견의 악마 님루드(Nimrud)의 조각상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님루드는 굴라와 관련된 수호 동물로 여겨지는 실제 개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여겨졌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파주주의 조각상들은 악마의 본질을 이끌어냈고 동시에 안전을 보장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악마들은 위협적인 동물들의 묘사에서 위험과 죽음의 의인화에 이르기까지 수 천년을 통해 진화했다. 이 진화는 메소포타미아 역사의 헬레니즘 시대까지 계속되었고 기독교 시대로 이어졌다.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악마를 보호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 악마는 기독교의 지옥으로 밀려났다. 그 후 악마는 오직 악의 대리인으로만 간주되었고 더 이상 선한 악마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악마의 부정적 이미지에 대해 거의 2천년 동안의 학습을 통해 세뇌된 현대인들에게 영화 엑소시스트에서의 파주주 선택은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대인들에게 악마 파주주는 무서운 악마인 동시에 불행을 막아주는 방패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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