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화와 전설/그리스

아폴론을 거부하고 물의 님페가 된 인간 여성, 볼리나

반응형

그리스 신화에서 볼리나Bolina는 물의 님페 즉 나이아데스Naiades(단수형은 나이아드Naiad) 중 하나였다. <그리스 안내>를 쓴 2세기 경의 그리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볼리나는 한 때 아카이아의 치명적인 처녀였다. 그녀는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가 그녀에게 접근하자 도망쳐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신은 그녀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그녀가 바다에 빠진 자리는 고대 도시 볼리나가 되었다.

 

물의 요정 나이아데스. 볼리나도 죽어서 물의 요정이 되었다.

 

<그리스 안내>에 따르면 아폴론은 첫사랑에 빠진 여자가 나무로 변신하면서까지 자신을 거부하자 마음이 아팠다. 월계수가 된 다프네 이야기이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아폴론의 마음을 사로잡을 또 한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볼리나Bolina라고 불리는 인간 여성이었다. 그녀는 주변 모든 마을에서 온 남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만큼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이성이 아닌 바다였다. 볼리나는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며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누군가와 결혼함으로써 이 자유를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달리 그녀는 곧 미래의 남편을 찾아야만 할 나이가 되었다.

 

볼리나가 집을 떠난 날 오후 가족의 기대를 뒤로 한 채 아폴론은 그녀가 해안가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첫눈에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비록 그가 신이었고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아름다운 여성 인간들과 신들을 보아왔지만 볼리나에게는 더 특별한 뭔가가 있었다. 그녀를 한참 동안 지켜보던 아폴론은 볼리나를 쫓기로 결심했다. 아폴론은 그녀가 결혼에 대한 의무와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을 보고 그녀의 영혼을 돌보고 싶어졌다. 아폴론은 삶에 대한 볼리나의 열정이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믿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그의 관심을 끌었지만 볼리나가 스스로를 지켜낸 것은 그녀의 불같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

 

불행하게도 아폴론에게는 에로스가 다프네에게 내린 저주가 아직도 그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볼리나에게 사랑에 빠졌을 때 그녀는 아폴론을 거부하고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자 했다.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했던 것처럼 볼리나에게 구애하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볼리나는 바다를 향해 뛰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뛰었고 해안가에 도착해서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때서야 아폴론은 그녀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폴론은 늦었지만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녀가 사랑했던 것을 주기로 결심했다. 아폴론은 그 인간 여성을 불멸의 님페로 변신시켜 그에게서 그녀를 빼앗은 바다에 머물게 했다. 볼리나는 누구와 결혼하든 바다와 자유를 갈망했을 것이다. 아폴론은 볼리나를 자신의 가슴에 품은 대신 무한한 자유를 주었던 것이다. 뒤늦은 후회이긴 했지만.

 

볼리나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즉 그녀가 아폴론으로부터 도망쳐 바다에 몸을 던졌고 아폴론은 그녀를 님페로 변신시켰다. 파우사니아스의 <그리스 안내>에 소개된 내용도 이것 뿐이다. 하지만 신화를 읽는 재미의 하나는 누구든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볼리나가 그렇게 멋지다고 소문난 아폴론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그녀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이 짧은 이야기에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폴론 또한 비록 신이지만 자신의 일방적인 집착 요즘으로 치면 스토킹을 뒤늦게 깨닫고 그녀의 자유의지를 지켜줌으로써 신의 품격(?)을 지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 것이다. 시대를 관통한 자기만의 해석. 신화를 읽는 재미일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