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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로마

번개 신에서 지하세계 신으로, 숨마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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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에서 6월 20일은 로마의 가장 오래된 신들 중 한 명이자 밤하늘에 내리치는 번개를 상징하는 숨마누스Summanus 신전 건립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한 때 숨마누스는 유피테르(그리스의 제우스)보다 더 유명한 신이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Augustus, 기원전 63년 ~ 기원후 14년) 황제 시대에 숨마누스는 과거의 의미를 잃고 결국 지하세계의 신으로 전락해 거의 잊혀진 신이 되었다. 숨마누스 이름의 유래는 모호하다. 아마도 ‘울기 전’이라는 뜻의 명사 ‘마네Mane’와 결합된 전치사 ‘서브Sub’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 숨마누스가 밤하늘의 번개를 상징하므로 이 주장은 상당히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숨마누스. 출처>구글 검색

 

고대 로마 최초의 공공도서관장이자 백과전서가였던 마르쿠스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기원전 116년 ~ 기원전 27년)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로물루스 시대에 숨마누스를 로마의 신으로 받아들였다. 로마 왕과 그의 동맹인 사비니의 왕 티투스 타티우스는 각각 나름의 신들을 숭배했다. 로물루스가 유피테르를 숭배한 반면 타티우스는 옵스, 플로라, 베디오비스, 새턴, 태양, 달, 숨마누스 등 다양한 신들을 숭배했다. 뿐만 아니라 타티우스는 라린다, 테르미누스, 퀴리누스, 베르툼누스, 라레스, 디아나, 루키나 등도 숭배했다고 한다.

 

고대 로마 작가인 플리니(Gaius Plinius Secundus, 23년 ~ 79년)는 그의 저서 <자연의 역사>에서 에트루리아인들이 어떻게 숨마누스를 아홉 천둥의 신으로 인식했는지를 서술했다. 이는 숨마누스의 기원이 에트루리아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숨마누스는 여전히 아주 오래된 신일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에는 숨마누스 숭배와 관련된 산인 숨마노산이 있다. 에트리리아의 경계에 있는 숨마노산은 숨마누스의 지위가 에트리리아인들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받아들이기에 충분히 인상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5세기까지 숨마누스의 이름은 다른 지역과의 관계를 갖게 된다. 후기 라틴어 산문 작가인 마르티아누스 카펠라(Martianus Minneus Felix Capella, 360년 ~ 428년)는 숨마누스가 로마의 죽음의 신이자 지하세계의 신이었던 ‘최고의 마네Mane’라는 의미의 ‘숨무스 마니움Summus Manium’에서 유래했다고 믿었다. 이로 인해 숨마누스가 지하세계의 신인 플루토와 연관되었다. 그러나 원래 숨마누스는 로마 판테온의 다른 신들과 관련이 있었다. 플리니에 따르면 아홉 명의 에트루리아 번개 신들 중 로마인들은 숨마누스와 유피테르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로마에서 숨마누스 숭배에 대한 증거는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기원전 275년에서 278년 사이 6월 20일에 숨마누스 신전이 지어진 것으로 보아 그의 위상은 어느 정도 중요하게 평가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로마 제국의 가장 큰 전차 경기장인 키르쿠스 맥시무스 근처에 위치한 신전은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 장군인 피로스(Pyrrhus, ? ~ 기원전 272년)와의 전쟁 중에 세워졌다.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밤 번개로 인해 유피테르의 동상이 파괴되었다. 이 사건은 로마인들에게 숨마누스의 힘을 확신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숨마누스는 사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매년 6월 20일 마다 로마인들은 밀가루, 우유, 꿀로 만든 과자 등을 숨마누스에게 바치는 행사를 열었다.

 

만일 숨마누스가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면 그것은 유피테르의 부가적인 특성일 것이다. 후기 비문에서 숨마누스는 로마 번개 신의 밤 특성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숨마누스는 어두운 명성으로 역사에서 살아남았는데 어떤 시인은 그를 지옥과 연관시키기도 했다. 번개 신으로써의 숨마누스의 특성은 지하세계 신들과의 관계로 변이되었다. 원래 지하세계의 신들은 사악함이 본질이 아니라 삶의 순환의 일부를 상징한다. 즉 숨마누스의 특성이 지하세계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사악한 신이 되었다고 할 명분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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