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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이집트

세트(Set)는 과연 악이었을까? 선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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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선이 존재한 반면 고통스럽고 해로운 악도 동시에 존재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사막과 어느 때고 나타나는 모래폭풍의 공포가 있었다. 그들에게 사막과 모래폭풍은 전쟁이나 외세의 침략보다 더 공포스런 경험이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이런 공포는 세트(Set, 오른쪽 그림)라는 신의 이름으로 상징화되었다. 세트는 의심의 여지없이 공포스런 신이었지만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꼭 존재해야만 하는 신이기도 했다.

 

세트는 혼돈과 폭력이라는 강력한 힘이었다. 그는 이집트의 평화를 위협하는 붉은 사막과 폭풍의 지배자였다. 그는 또한 하이집트의 지배자로 상이집트의 수호신이었던 호루스와 쌍벽을 이뤘다. 이것은 하이집트인들이 세트를 단순히 부정적이거나 불길한 신이 아닌 그들의 시혜자나 수호자로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트가 늘 악마 이미지만은 아니었다. 일정 부분 호루스와 동등한 이미지였을 것이다. 파라오는 세트와 호루스에 의해 옹립된 왕권이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세트는 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신이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상이집트에 의한 하이집트의 정복 즉 상이집트에 의한 이집트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세트를 호루스에 대항한 어두운 악마로 추락시켰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생각했던 세트의 실제 성격을 추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세트가 복잡한 특징을 가진 신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세트는 동물 머리를 한 인간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동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가 동물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머리가 ‘세트 동물’로 알려진 비인간적인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때때로 세트의 동물 머리를 태풍의 야수로 인식하기도 한다. 세트가 그리스의 폭풍의 신 티폰(Typhon)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짐승은 약간 자칼처럼 보이지만 꼬리가 뻣뻣하고 갈고리처럼 생겼다. 그 짐승의 코는 거의 개미핥기 수준으로 길다. 세트의 머리는 때때로 기린의 머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확실히 이와 같은 동물은 실제 지구상에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동물은 고대 이집트인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

 

세트는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의 아들이었다. 그는 오시리스, 이시스, 네프티스와 형제 지간이었다. 그의 배우자는 네프티스였다. 세트와 네프티스 사이에는 개 머리를 한 아누비스라는 유일한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신화에서는 오시리스가 아누비스의 아버지였다고도 하고 더 오래된 신화에 의하면 아누비스의 실제 아버지는 태양신 라였다고도 한다. 흥미롭게도 세트는 셈족의 하나인 우가리트의 사랑의 여신 아나트,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스타르테와 관련이 있었다.

 

세트(Set 또는 Seth)라는 이름은 미스터리한 장막에 가려져 있었고 그 의미 또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세트는 기원전 3790년 기록에 처음 등장하지만 그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세트에 관한 첫 기록은 기원전 3200년이다. 세트에 관한 가장 중요한 신화는 세트와 호루스 사이의 갈등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집트 신화에는 많은 모순되는 내용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특정 도시나 지역에 따라 각각의 신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신화를 누가 전달하느냐에 따라 신들의 부모, 배우자, 자녀들이 달라진다.

 

세트에 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해지는데 공통적인 것은 세트의 동생 오시리스가 항상 선한 이미지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즉 오시리스는 이집트의 왕이었고 이시스와 결혼했으며 고대 이집트에 평화와 문명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세트는 그런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매우 강했다. 세트의 오시리스에 관한 질투는 잔혹한 살인으로 끝이 났다. 세트는 오시리스를 죽인 후 시체를 14개 조각으로 잘라 세상 여기저기에 흩뜨려 놓았다. 드디어 그는 오시리스의 자리를 대신했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세트는 전혀 사악한 통치자가 아니었다. 세트는 이집트를 많은 적들로부터 보호했고 사람들은 그를 악의적인 통치자로 보지 않았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이시스는 세트에 의해 분리된 남편 오시리스의 신체 조각들을 모아 부활시켰다. 이시스와 오시리스는 호루스라는 아들을 낳았고, 호루스는 아버지를 죽인 세트의 라이벌이 되어 끊임없이 그의 이집트 통치권에 도전했다. 그들의 결투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신들은 태양신 라에게 심판을 맡겼는데 너무 연로한 라의 판단력은 오히려 갈등만 부추길 뿐이었다. 결국 오시리스에게 선택이 맡겨졌고 오시리스는 형제인 세트보다는 아들인 호루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시리스 살해 이야기를 제외하면 이집트 신화에서 세트는 그렇게 악한 신으로 그려지지는 않았다. 거대한 뱀 아페프와 달리 세트는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거부당하지 않고 판테온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그는 아페프에 맞서 태양신 라와 그의 태양 범선을 지킨 신으로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즉 외세에 의한 침략과 정복을 거치면서 세트는 악마화되었다. 이후 세트는 이방인들의 신으로 인식되었고 세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한편 <사자의 서>에서 세트는 폭풍우와 천둥을 관장하는 ‘북쪽 하늘의 주인’이었다. 특히 기원전 13세기 경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와의 조약에서 세트가 히타이트의 폭풍 신 테슈브와 결합되었음을 암시했다.

 

과연 세트는 적개심과 폭력으로 점철된 악한 신이었을까? 외부로부터 고대 이집트인들을 지켜준 선한 신이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이집트 신들에 관한 묘사는 지역에 따라 서로 모순되게 그려진다고 했다. 질곡의 역사 한 복판을 살았던 이들이 세트의 성격을 규정했다. 오늘날 세트의 정체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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