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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메소포타미아

난나, 수메르인들에게 달은 태양보다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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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의 여신 닌갈(Ningal)과 달의 신 난나(Nanna). 출처>구글 검색

난나(Nanna)는 고대 근동 지역 신화에서 달의 신이었다. 난나는 고대 수메르 판테온에서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로 안, 엔릴, 엔키, 닌후르삭, 인안나, 우투와 함께 ‘수메르의 위대한 일곱 신’ 에 포함되었다. 바빌로니아 시대에는 난나를 수엔(Suen) 또는 신(Sin)이라고 불렀다. 또 앗시리아에서는 ‘지혜의 제왕’이라는 의미의 엔주(Enzu)로 불렸다. 난나와 신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난나의 이름과 숭배에 관한 초기 기록은 수메르 시대 고대 도시였던 우르와 우룩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난나의 상징은 황소였다.꽉 찬 초승달이 황소의 뿔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흐르는 수염과 초승달 상징을 가진 노인의 모습으로 원통 인장에 묘사되어 있다. 난나는 수메르 초기 왕조시대부터 매우 중요한 신이었다. 그의 이름은 하늘의 신 안(An), 바람의 신 엔릴(Enlil), 사랑의 여신 인안나(Inanna), 지혜의 신 엔키(Enki) 다음에 바로 등장한다.


발견된 원통 인장에서 앉아있는 사람은 우르 남무(Ur-Nammu, 기원전 2000년 경 수메르의 고대 도시 우르의 왕)일 것으로 추정된다. 난나가 우르 남무에게 왕권을 부여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수메르인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천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천체의 운행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수메르인들은 이미 5천년 전에 수성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글쓰기의 신 나부(Nabu)가 가끔 수성과 관련이 있었다. 바빌론 점성술에서도 나부는 수성과 동일시되었다. 고대 도시 니네베에서 발견된 5,500년 전 수메르 별자리는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소행성 충돌을 목격했음을 보여준다. 수메르인들은 또 자연스럽게 달의 주기를 관찰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달의 신 난나가 과학이나 천문학과 연결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다.


고대 문서에 따르면 달의 신 난나는 천체의 특징적인 용어로 자주 언급된다. 그는 빛나고 이글거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난나의 아내는 ‘위대한 여인’ 닌갈(Ningal)이었다. 수메르 신화에서 닌갈은 갈대의 여신으로 엔키(Enki/Ea, 지혜의 신)와 닌기쿠르가(Ningikurga, 습지와 갈대의 여신)의 딸이었다.


난나와 닌갈은 세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태양신 우투(Utu, 바빌로니아의 샤마쉬Shamash)였다. 우투는 진실과 정의와 치유의 신이기도 했다. 또 다른 자식은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인안나(Inanna, 바빌로니아의 이슈타르Ishtar)였고, 마지막 한 명은 지하세계의 신 에레쉬키갈(Ereshikigal)이었다. 참고로 인안나는 금성의 여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달의 신 난나와 그의 아들 태양신 우투는 법, 판결, 운명의 결정, 예언 등과도 관련이 있었다.


달의 신 신(난나의 바빌로니아 이름)을 숭배했던 하르 카르콤에 있는 성경 속 시나이 산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달의 신 난나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중요한 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성서 고고학자 엠마누엘 아나티에 따르면 성경 속 시나이 산은 이스라엘의 네게브에 있는 하르 카르콤이라고 알려진 곳에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아나티에 따르면 청동기 시대 초기 하르 카르콤에 살았던 사람들은 달의 신을 숭배했다고 한다. 또 그를 기리기 위해 많은 신전이 세워졌다.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 시대에도 달의 신 난나 숭배는 많은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사람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많은 신전을 지었다. 한편 기원전 2100년에서 2000년 사이 아카드 왕국이 무너진 뒤 우르에 세워진 수메르 왕조인 우르 제3왕조 시대에는 난나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신년 축제 아키투가 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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