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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프로크루스테스와 다양성 사회의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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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침로 나그네들을 안내하고 있는 프로크루스테스. 출처>구글 검색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그리스 아티카 지방에는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강도질을 일삼는 도둑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도둑의 집에는 철제 침대가 하나 있었는데 나그네가 그 집 앞을 지나가면 불러들여 침대에 눕힌 다음 나그네의 키가 침대 길이보다 길면 몸을 잘라서 죽이고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몸을 늘려서 죽였다고 한다. 이 도둑이 바로 그 유명한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란 말이 바로 여기서 유래됐는데 자기 생각에 맞추어 타인의 생각을 고치려 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이 말을 흔히 사용한다.


하지만 악명 높았던 도둑 프로크루스테스도 그리스 신화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그가 사람들에게 했던 똑같은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테세우스가 누구인가!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에 들어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이 아닌가! 그렇다면 테세우스와 프로쿠루스테스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장차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던 아이게우스 왕은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서 술을 조심하라는 신탁을 받게 된다. 이 신탁이 테세우스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아이게우스 왕은 신탁을 받고 돌아가던 중 트로이젠이라는 나라를 방문하게 되는데 여기서 술을 마시고 트로이젠의 공주 아이트라와 동침을 하게 된다. 아들의 탄생을 예견했던 것일까? 아이게우스 왕은 트로이젠을 떠나기 전 자신이 묵었던 방 앞의 섬돌 밑에 칼 한 자루와 가죽신을 넣어두고 아들이 태어나거든 섬돌 밑에 숨겨둔 칼과 가죽신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했다. 일종의 신표였던 것이다. 아마도 이 섬돌은 보통 사람은 들어올릴 수 없는 엄청난 무게였던 모양이다.

아이게우스 왕 예견대로 공주의 몸에서는 아들이 태어났다. 이 아들이 바로 테세우스(Theseus)다. 테세우스는 자라면서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 16살 되던 해 공주 아이트라가 시킨대로 섬돌을 들어올려 칼과 가죽신을 들고는 아이게우스왕을 찾아가게 된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재수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운명이었던 것일까? 하필 테세우스가 트로이젠에서 아버지를 찾아 아테나이로 가는 도중에 프로크루스테스를 만난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를 죽이고 아테나이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아이게우스왕의 후처인 메데이아 왕비로부터 독살의 위험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섬돌 밑에 숨겨두었던 신표로 인해 부자지간의 눈물겨운 상봉이 이루어지게 된다.


신화가 주는 매력은 악(惡)은 언젠가 선(善)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도 선한 영웅의 등장에 최후를 맞이했다. 결국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도 시쳇말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모여사는 집단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사는만큼 무수한 생각들이 얽히고 설켜있다. 얽히고 설킨 사회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관용과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다양성이 때로는 분열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도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과 이해일 것이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 이해하면서 좀 더 정답에 가까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역동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종교나 동성애, 낙태, 난민 문제 등에서 보이는 우리 사회의 갈등은 민주주의에서 한참 멀어진 느낌이다. 다름(차이)을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틀렸다고 단정해 버리는 모습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떠오르는 것은 조금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침대보다 길다고 해서 잘라내고, 짧다고 해서 억지로 늘리려는 프로크루스테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신화 시대 프로크루스테스가 아니라 21세기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깨어있는 시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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